나도 아름답다 : 김진희

제1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대회 청소년부 우수상
김진희
 
 
 
진정한 철학자 남선우 오빠에게
 
선우 오빠, 안녕하세요. 저는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진희라고 해요.

제가 이렇게 이름을 또박또박 밝히는 이유는 『나는 아름답다』라는 책과 저의 인연이 신통하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아마 놀라셨을 거예요. 김진희라는 이름. 선우 오빠의 어머니 이름이죠? 저도 책을 읽으면서 오빠가 어머니께 크리스마스 기념 카드를 보내는 부분을 읽다가 깜짝 놀랐어요.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니 오빠와 마음속으로 대화를 하는 동안 많은 걸 느꼈어요. 사실 선우 오빠와 저는 비슷한 점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읽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죠.

저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잃었어요. 하지만 돌아가신 건 아니에요. 저를 새어머니 집에 버리고 가셨어요. 하지만 저는 원망 따윈 안 해요. 오빠가 말했듯이 거친 곳에 내버려 두면, 거친 세상에 버려지면 더 강해진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누구보다도 독하게 살아요.

서울에서 살다가 울산으로 전학 오게 된 이유가 바로 새어머니 집에 버려 두고 가시려고 그런 거였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전의 기억은 모든 게 기억이 나요. 이럴 때 가슴이 사무쳤다고 하죠?

엄마, 아빠 그리고 언니, 동생과 함께 살 때 맡았던 향기가 느껴질 때면 길을 가다가도, 바쁜 와중에도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답니다. 멈출 수밖에 없어요.

오빠는 부두에 가서 고향에서 불어 오는 바람 냄새를 맡느라 한참씩 앉아 있곤 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저는 참 오빠가 부러워요. 언제든지 고향이 그리우면 오빠는 부두에 가서 고향 향기를 맡을 수 있잖아요.

오빠도 저한테 아마 ‘나도 네가 부러워.’라는 말을 할 것 같네요. 엄마가 살아 계신다는 거요.

과학과 의술의 발달이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는 말이 제 가슴속에 아프게 묻혔어요.

그리고 오빠는 그 이후로 세상이 싫어졌다고 했는데, 그래요, 어쩌면 세상이 점점 발달되고 과학이 발달되는 건 사람을 죽이는 것,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짓일 수도 있어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친구들이 시내에 있는 노래방에 가거나 쇼핑을 하러 가자고 해요. 하지만 저는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늘 가지 못했어요. 아니, 가지 않은 거죠.

엄마가 집을 나가기 전에는 그 동네에선 가장 부유했던 집이었어요. 하지만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서는 집안이 엉망이 되어 가기 시작했어요. 아빠는 건강이 악화되시고 거기에다 그때가 IMF가 닥친 해라서 일자리도 잃으셨어요. 언니는 외고 기숙사에서 엄마가 없다고 왕따를 당하고, 제 동생은 밤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보채곤 했었죠.

이 많은 걸 지켜보면서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밖에서 놀거나 웃으면서 지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죠.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아빠의 건강을 돌봐야 했고 학교 공부도 해야 했고 동생의 기저귀도 갈아 줘야 했어요. 그래서 놀거나 웃는 것은 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런 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죠. 오빠라면 제 심정을 깊이 헤아려 줄 거라고 생각해요. 오빠처럼 심사가 뒤틀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웃고 있는,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 아빠가 벌어 주신 돈으로 이것저것 사재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 이렇게 거짓말까지 하며 집에서 공부를 하고 집안일을 하는 제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왜 나는 저런 아이들처럼 웃으면서 지낼 수는 없는 걸까?’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나서 저런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힘들게 사는 걸까?’

어렸을 적에는 이런 생각을 하루에 수십 번씩 했지만 나중엔 그런 생각조차 시간 낭비, 힘 낭비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오빠의 어머니도 오빠의 얘기를 귀찮아하지 않고 잘 들어 주셨듯이 저도 엄마가 집을 나가기 전까지는 우리 집에서 제 별명은 참새였답니다. 하루 종일 짹짹거린다구요.

그만큼 엄마는 제 얘길 들어 주시고 함께 웃어 주시고 울어 주셨어요. 그런데 왜 그런 선택을 하셨던 건지 아직까지 궁금하네요.

중학생이 되자 제 머리는 한층 더 굵어지기 시작해서 더 많은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되었어요.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직접 하더라도 늘 심각하게 고민하며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하고는 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저에게 붙여 준 별명이 있어요.

바로 ‘생각하는 철학자’였어요. 독서와 시, 그리고 생각하는 걸 정말 좋아했거든요. 물론 글쓰기도 웬만큼 해서 상도 자주 타 오곤 했어요.

저는 엄마가 집을 나가신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게 제가 유일하게 살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사람들에게 인정을 많이 받으려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개똥 철학자가 아닌 생각하는 철학자라는 멋진 별명이 생긴 것 같아요.

물론 저는 친구들 앞에서는 힘들고 아픈 걸 전혀 드러내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 얼굴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는 없어지지 않는지 친구들과 선생님들께서는 자주 저에게 웃으면서 살라고 당부하곤 했어요.

오빠는 ‘이 세상 누구하나 나랑 뜻을 같이할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외롭다.’고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이에요. 왜냐하면 제가 있기 때문이에요. 세상에는 자기와 같은 가치관과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정당이 생겨나는 거잖아요. 정치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만든, 하지만 오빠도 뉴스를 봤으면 알 듯해요. 그런 정당이 부정부패로 물들어 있다는 걸. 그래요, 어쩌면 친구도, 뜻을 같이한 저라도 부정부패로 물들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세상에는 유일하게 변하지 않고 계속 존재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정의와 진실이죠. 그래서 그런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언젠가는 꼭 법에 따라 처벌을 당하곤 하죠.

그래서 제가 지금 꼭 말하고 싶은 건 저는 정의와 진실을 내걸고 부정부패에 찌든 정당에 속한 사람이, 오빠가 못미더워할 준수 같은 오빠는 아니라는 거죠.

세상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서 저도 살고 오빠도 존재하는 거잖아요. 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제게 신조가 하나 더 생겼어요.
‘한계 상황이 닥치면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미소를 지어라.’

제가 울보로 소문이 났었거든요. 몇 년 전에 학교에서 실장을 할 때요. 집안 사정도 좋지 않은데 실장의 의무도 해야 하고 집에서는 엄마의 노력도 해야 하는 제가 우리 반을 위해서 아무것도 제대로 해 주지 않자 몇몇 짓궂은 남자애들이 저를 자주 놀려서 울곤 했어요. 그 아이들은 그 말이 제겐 상처가 된다는 걸 까마득하게 잊은 것 같았어요.

저는 중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에요. 소설을 쓰는 것도 시를 쓰는 것도 엄청 좋아하긴 하지만 오빠처럼 커다란 재능을 가지고 자신감 있게 도전을 하기엔 제가 아직 너무 부족한 것 같아서요. 오빠는 시인이 된다고 했죠?

제가 보기엔 오빠의 시는 어떤 유명한 시인들의 시처럼 제 마음에 꼬옥 와 닿는 훌륭한 시들밖에 없는걸요. 제가 생각하기에 오빠는 아마 신문에도 날, 노벨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시를 써낼 사람이라고 믿어요. 왜냐하면 오빠처럼, 아니 저처럼 거친 곳에 버려진 사람은 강해지는 법이잖아요.

몇 달 전에 제가 좋아하던 남학생이 전학을 갔어요. 제가 살고 있는 울산과는 엄청 먼 서울로요.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사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빠가 미술 선생님의 결혼 소식을 들은 후처럼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이렇게 제 마음을 아프게 한 것들이 저를 더 강하게 해 준 것 같아요. 그리고 오빠를 만나고 이 책을 접하고 나서 더 다부진 마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오빠가 ‘나는 아름답다.’라는 말을 했잖아요. 아픈 것들을, 어두운 것들을 모두 헤치고서. 저도 오빠처럼 그렇게 저를 아끼며 저를 가장 많이 사랑하며 저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살 거예요.

진정한 시를 쓰는 오빠의 장래를 위해 편지를 마감할게요.
건강하시고, 항상 그 아름다운 마음 잊지 말고 잘 간직하세요.
나도 아름답다. 
 
- 진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