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을 꼭 써야 할까?』대담회 : 이 시대, 청소년들과 함께 폭력을 생각한다!

현장 스케치 │ 학교 폭력, 문제 해결의 주인공은 청소년
 
“평화를 지키고 싶다면 폭력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는 작은 폭력에 평화는 사그라진다. 평화는 경계하는 마음으로 지켜야 하는 작은 촛불이다.”
 
아늑한 조명이 비추는 작은 공간에 모여 앉은 사람들 사이로 윤혜린 학생(숙명여자고등학교)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인 이들 모두 진지한 눈빛으로 발표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폭력에 대한 성찰에서 나옴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학교 폭력 경험과 대처법나누기 대담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남석 저자는 가장 큰 폭력은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돌이켜 보며 『주먹을 꼭 써야할까?』를 쓰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모습이다.
 
 
2011년 10월 29일 토요일 오후 3시, 마포구청 역 근처의 문화 공간‘살롱 드 마랑’으로 중고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주먹을 꼭 써야 할까?』이남석 저자와 학생들의 특별한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는 조명등이 천장에서 길게 내려와 어두운 실내를 비춰 주고 있었다. 예정 시간이 되자 40여 석의 자리는 언제 비어 있었느냐는 듯이 금세 꽉 차 버렸다.
폭력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심리학자인 저자와 함께 나누기 위해 마련한 이 자리에는 숙명여자고등학교, 숙명여자중학교, 중동고등학교, 세종고등학교,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등에서 온 여러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했다.
대담회는 먼저 이남석 저자가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돌아보는 솔직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적절히 유머를 섞어 말하는 동안 몇 번의 웃음이 터졌다. 그렇지만 작가가 밝히는 자신의 과거는 밝은 내용만이 아니었다. 저자 또한 어려서 왕따를 당하거나 물리적 폭력을 당했고 커서는 성적, 돈, 성공 등 또다른 폭력에 휘둘렸다고 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주먹을 꼭 써야 할까?』를 쓰게 된 계기로 이어졌다.
이날 참여한 이찬미 사서교사(인천 부흥고등학교)는“작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이런 책을 쓰게 됐는지 고백하는데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어렸을 적 기억은 오래가는구나, 가슴에 맺힌 기억은 결국 말할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말했다.
작가의 이야기가 끝나고 여러 학교에서 온 청소년들이 책을 읽은 소감과 학교폭력에 대해 적어 온 글을 발표했다. 처음 나서는 발표자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쑥스러워했다. 그러나 모두들 진지한 눈빛으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의 말에 집중하자 처음의 어색함은 사라졌다. 이내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에 울려 퍼졌다.

“학교 폭력이 빈번하게 있었지만, 나는 늘 방관자였다. 방관자도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글을 읽으며 가슴이 뜨끔했다. 이제 방관자의 껍질을 벗고 적극적인 문제 해결자가 될 것이다. 변화를 전파하며 천천히 결실을 맺을 것이다.”
 
이상민 학생(세종고등학교)의 말이다.『 주먹을 꼭 써야 할까?』는 방관도 가해와 마찬가지로 나쁜 것이라고 지적하며 적극적인 태도를 가질 것을 주문한다. 대담회에서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방관자의 태도를 버려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둠은 빛이 있어야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비폭력, 평화, 인권이 살아 숨 쉬는 문화를 만들어야 폭력이 사라진다. 이 책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일상에서 조금씩 변화를 주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위대한 업적을 더 빨리 이루는 방법”(246쪽)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인 다짐을 말한 학생도 있다. 원종호 학생(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의 말이다.

“폭력을 미화하는 영화나 드라마도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보면서 폭력에 무뎌진다. 누군가 대신 해 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처럼 대담회에서는 폭력 문제 해결의 주인공으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함께 참석한 선생님들 역시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내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선생님들의 표정은 상당히 복잡해 보이기도 했다. 왜 그랬는지 앞의 학생의 말을 더 들어 보자.
 
 
책을 읽은 소감과 학교 폭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학생들과 진지하게 듣는 학생들의 모습
 

“학교는 폭력 문제에 대해 정말로 처리를 못하는 것 같다. 물론 학교에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애들 사이의 폭력을 잘 해결하는 분은 없다.”
 
이런 솔직한 발언에 분위기가 무거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들 또한 현실을 인정하고 거기서 고민을 시작했다. 그 자체로 이미 문제 해결의 출발점에 선 것이다.
학교 폭력은 어려운 문제이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평화를 위한 행동에 자신감을 비치기도 했다. 다음은 김희재 학생(중동고등학교)의 말이다.
 
“‘한 사람이라도 따뜻한 손길과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면 저 애들도 바뀔 텐데.’하는 생각을 매번 했는데, 이 책의 방과 후 교사를 보고서 마음이 뻥 뚫리는 것같았다. 나도 이제 관심 갖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이 책은 청소년들이 내면의 폭력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건강한 역할 모델 찾기’를 제안한다. 이는 좌절이 공격성을 낳는다는 좌절 공격 이론과 앨버트 밴듀라의 학습 이론에 기반을 둔다. 즉 좌절했을 때 공격성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관찰한 모델을 따라 성숙한 반응을 하게 된다는 이론에 기반한 제안이다. 숙명여자중학교 김승아 학생은 이 제안이 자신에게 변화의 단서를 제공했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담회가 끝나고 저자 사인회가 이어졌다. 응원의 메시지를 정성껏 적는 저자와 사인을 받고 좋아하는 학생들의 모습.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건강한 역할 모델 찾기’였다. 그것은 일상에서부터 폭력의 뿌리를 없애고 평화를 가꾸는 방법이다. 나는 이 책을 계기로 내가 따라야 할 모델을 정했다.”
 
이렇게 학생들은 각기 이 책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대담회는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되었다. 긴 시간에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모두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이 많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 의미 있었기 때문이리라.
대담회를 마치며 이남석 저자는“이 책의 주인공을 청소년으로 했는데, 폭력문제는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설 때 해결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학생들이 제대로 받아들인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덧붙여“폭력을 돌아보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며 문제를 외면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아마도 이날 참여자들의 마음속에는 각자 하나의 씨앗이 생겼을 테다. 폭력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평화롭게 만들 씨앗 말이다. 이 씨앗이 싹이 트고 크게 자라 우리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만들기를 기원해 본다.
 
 
글·서상일(사계절출판사 청소년교양팀)
 
 
대담회 후기 │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
 
학생 한 명과 함께『주먹을 꼭 써야 할까?』를 쓴 이남석 작가를 만나러 갔다. 많은 학생을 데리고 가지 못했어도 아쉽진 않다. 유독 이 책에 관심을 보인 학생이 “선생님,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해요.”라고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애는 순하고 목소리가 가느다란 남자다. 고등학교 1학년인데도 중학교 1학년 같다. 어느 날, 독서 토론을 하다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수시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주위에서 “여자”, “ 변태”라고 놀렸다. 늘 참기만 하다가 한번은 의자를 집어 던지고 책이 잔뜩 든 가방으로 상대방의 머리를 힘껏 때렸단다.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걱정을 하고 있던 그 애에게『주먹을 꼭 써야 할까?』는 마른땅에 내리는 단비 같은 책으로 다가갔다. 대담회에 참석한 여러 학생들도 자신이 겪은 경험과 속에 담아 둔 마음을 더듬더듬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했다. 이 책은 학교‘짱’과 방과 후 교사가 만나 폭력을 돌아보며 변화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그려 냈다. 특히 알맞은 심리학 지식을 소개해 폭력이 일어나는 원인을 따져 보는데, 이는 무척이나 유용하게 다가온다. 그날 발표한 학생들도 주인공의 심정을 따라가며 폭력적인 행동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고 했다.
이 책이 제공하는 통찰은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오랜만에 내가 학교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떠올렸다. 사실 나는 학교생활에서 피해자에 가까웠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 말투, 목소리……. 못 알아들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실제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내 기분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기도 했다. 나중에 몰려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을 나무라며 못마땅하게 여겼을 뿐이다. 나 역시 오랜 시간 방황했다. 지금도 나와 같은 학생들이 많아 보여 아찔하다. 만약 내가 그때 이 책이 알려 주는 지혜를 조금이나마 알았더라면 달랐을까?
이번 대담회에서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밝게 웃는 학생들을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가혹한 현실은 그대로일지라도 차츰차츰 앞날을 보듬는 치유의 능력이 생겼을 거라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라면 견딜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렇게 생각이 흘러가자, ‘이 책, 혼자 읽고 멈춰선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촘촘한 시간표에 숨이 턱턱 막히지만, 찾아보면 자투리 시간도 많다. 그냥 흘려보내는 자습, 방과 후, 야간 학습, 창의 재량뿐만 아니라 수업할 때 잠깐 동영상을 보여 주는 건 어떨까. 이 책에 소개된 심리학 실험이나 이론을 찾아보면 꽤 많으리라. 이참에 학교도서관에 그런 자료를 갖추면 좋을 것 같다.
아예 계획을 짜서 이 책을 읽고 폭력에 대해 고민을 나누면 어떨까. 책 전체가 아니더라도 부담 없이 한 챕터씩 읽고 느낀 점을 나눌 수 있겠다. 독후 활동으로 이 책이 제안하는 비폭력 대화 시도하기나 건강한 역할 모델 찾기 등 여러가지를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반별이든, 동아리든 모임 형태는 얼마든지 다양할 테다. 나는 도서부 애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마음 일기’를 썼으면 좋겠다. ‘마음 일기’란 게 별것 아니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크고 작은 폭력을 접한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때 내 마음이 이랬다.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적기만 해도 차분해진다. 적어도 자신을 알아 가고 무턱대고 분노의 화살을 겨누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나중에 서로 돌려봐도 좋으리라. “그랬구나.” 말 한마디, 글 한 줄 건네주며 공감하다 보면 쑥스럽지만,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와의 만남에서 내가 봤던 학생들의 미소처럼.
글·이찬미 (인천부흥고등학교 사서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