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읽기, 그 즐거움으로의 여정 : 정동희

 
 
제1회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독서감상문대회
대학일반부 대상 수상작
 

 
유년 시절에 대한 편린들 중 지금까지 가장 짙게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것은 시골 할머니댁에서 보낸 시간들이다. 삼백육십오일 거의 내내 도시라는 공간속에서 생활하던 내게 있어 여름방학 동안 부모님들과 잠시 할머니댁에 다니러 간다는 것은 어린 나에게 있어 하나의 해방감을 느끼게 하기에 족했다. 대구 근처 유난히 사과밭이 많은 영천을 향해 중 앙선을 타고 내려가는 약 6시간의 여정은 유토피아로의 여행이었다. 제천, 단양을 지나, 풍기, 영주, 안동을 거치는 동안 역사학을 전공하신 아버지는 사학도답게 열차가 지나는 고을의 내력이나 명소들을 계속 이야기해 주셨지만 , 나의 눈을 즐겁게 한 것은 인자하신 아버지의 얼굴이 아니라 차창 너머로 보이는 산과 강이었다. 여름의 한가운데 서있는 자연들은 푸르름 그 자체였고, 그 푸르름은 갇혀진 공간에서만의 가치들을 강요당하던 내게 있어 신비감을 느끼게 하였다. 열차가 역에 도착하면 뭐가 그리 좋았던지 끊임없이 조잘거렸고 1년에 한 번 밖에 못보는 손주를 보기 위해 열차 도착시간 몇 시간 전에 역에 나와 기다리시던 할머니는 아버지, 어머니는 안중에 없고 오직 나에게만 모든 사랑을 집중시키셨다. 일 주일 정도의 시골생활은 환상적이었다. 나를 감싸고 있던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아무런 생각없이 나는 철저히 자연 에 동화되었다. 숙부님들은 동네 어른들과의 대화에서 항상 자랑거리였다고 하는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 조카를 소 등에 태워 사과밭에 데려갔고 , 그 분들이 일하는 동안 나는 내가 타고온, 내 덩치의 3배 정도 되는 소를 지키고 풀을 먹 이곤 하였다. 그 녀석 눈에도 내가 귀엽게 보였던지내가 풀을 뜯어 먹여주면 내 손을 부드럽게 핥곤 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생활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거의 불가능하였다. 방학은 방학이 아니었고 명절 때도 부모님은 나만 집에 남겨두고 시골을 다녀오셨다. 입시라는 현실의 장벽은 보이지 않는 두터운 창살로 나를 감금하였던 것이다. 대학 에 진학하고서도 매 마찬가지 였다. 이젠 스스로 나를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하였다. 또한 고향의 환경도 나의 이러한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연로하신 할머니의 거의 거동을 못하시고 나와 단짝들이었던 사촌들도 모두 커서 각자의 삶을 찾아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고 , 마을 안까지 아스팔트가 깔려 있어 내가 생활하는 곳과의 차별성이 많이 사라져버려 과거의 추억을 되새김하기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댁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끊임없이 떠오르게 한 작은 사건이 내 생활속에서 우연히 일어났다. 겨울방학 을 무료하게 보내던 중, 중학교 구내서점을 종종 찾던 나는 우연히 입구에 붙어 있는 '임꺽정 독후감 모집'이라는 포스터 를 읽었고, 외국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우리문학에 대한 애정을 항시 품고 있던 터라 무언가 나의 느낌, 책을 읽은 후 텍스 트에 대한 분석과 해설의 글이 아닌 내 내면의 섬세한 감정을 기록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임꺽정』을 세 번 이나 읽으셨다는 아버지로부터 책 10권을 건네받은 뒤 그 장대한 분량에 어느 정도 기가 죽었다. '한 두서너 권으로 되 었겠지.'라는 간단한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고 영어 단어 하나, 전공책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는 극히 이기적 인 나의 태도가 『임꺽정』과의 독파를 주저시켰다. 며칠간을 그럭저럭 보내다 1월이 다 갈 무렵, 새벽까지 잠이 안 과 책상 옆에 밀쳐놓았던 1권을 집어들고 잠이 올 때 까 지 만 읽을 요량으로 몇 장을 뒤적였는데, 그 내용이 지난 학기 교양시간에 다루었던 중종반정과 조광조의 개혁에 관한 내용이어서 좀 흥미가 갔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김에 따라 처음 가졌던 역사적 맥락에서의 접근방식은 눈 녹듯 사르러 들고 이장곤과 봉단이의 사랑이야기에 흠뻑 도취되었다. 조선시대 가장 천한 계급이었던 백정의 딸인 봉단이가 남자 잘 만나 하루아침에 정경부인으로 오르는 내용은 이것이 사실일까, 아니면 작가의 의도적인 플롯의 배치일까라는 의문을 제 기하였다. 또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신데렐라 이야기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혼자 빙그레 웃어보았다. 2권에 접어들면서 소설은 본격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궤를 같이 한다. 폭군 연산을 축출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대의 개혁 드라이브 정책이 다루어지면서 수구세력과 개혁추진세력 간의 암투가 소설적 흥미를 더해 가면서 전개된다. 어느 사회 나 현상을 유지하려는 그룹이 있는 동시에 현실을 개혁하려는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역사는 현상유 지세력이 현실개혁세력과의 투쟁에서 이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혁세력이 사회를 영도하는 것은 주로 혁명이라는 극단 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조선의 역사 역시 이러한 역사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의 총 체적 부분에서 이미 그 한계를 노출하였던 고려왕조를 '역성혁명'을 통해 전복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 신진사대부들은 자신들이 현상을 유지하려는 훈구세력이 되면서 사회모순을 해결하려는 사림세력을 억압한다. 이 사림과 훈구의 갈등이 표출된 것이 '사화'이니, 사화를 통해 젊고 성리학에 출실하면서 올곧은 사상을 지니고 있던 사림들이 큰 희생을 치루었고 조선왕조는 바로 전 왕조인 고려사회가 지녔던 모순이 사회 전면으로 부상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임꺽정'이라는 비극적 인물은 위와 같은 사회적 모순 상황에서 태어났다. 힘은 장사이고 머리는 영민해도 조선조 봉건 사회체계는 이같은 인물이 결코 자기의 재능을 긍정적 측면에서 발휘하는 것을 구조적으로 억압하였고 , 이 상황에서 재 능 있는 피지배계급 인물들은 현 사회의 전복을 꿈꾸며 기존 사회질서로부터의 일탈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 『임 꺽정』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그리하여 기존사회로부터의 탈출과 전복을 도모하는 인물들의 집합체이다. 주인공 꺽 정이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험난한 시대를 헤쳐온 박유복, 이봉학, 꺽정의 처남인 황천황동이, 이들과의 인연으로 연결된 길막봉, 그들 삶의 시저에는 슬픔과 한과 저항정신이라는 공통분모가 놓여 있었다. 또한 이들은 비극성을 함유하는 동 시에 희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민족적 삶의 건강성에 다름아니다. 슬픔을 잊고 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는 슬픔과 한의 테두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슬픔을 변혁의 힘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자신의 삶을 건강하고 생산적 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태도야말로 추동력의 가장 강도 높은 촉매제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랑을 쟁취하 는 방식은 이러한 시점에서 바람볼 때 단순히 여자를 차지하는 의미를 떠나 소설 전체의 주제의식과 접맥된다. 백두산 에 갔다 여인을 만난 것이며, 제물로 바쳐진 여인을 차지한 것이며, 주인집 아들의 장난에 동참했다 그 여인을 아내로 맞 이한 것이며, 장기와 취재를 통해 어여쁜 아내를 차지하는 행위는 소설적 재미를 더해주는 동시에 이들 삶의 건강성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이제 단행본 10권으로 된 『임꺽정』의 세계를 유년시절 할머니댁에 가는 길에서 경험했던 호기심과 자유와 해방 의 심정으로 여행하였다. 활쏘기며 표창던지기며, 돌던지기 등 특유의 재능을 지닌 인물들이 벌이는 행각에 한동안 눈물 이 날 정도로 웃어가면서 쇠도리깨 장사인 곽오주의 비극에 안타까워했다. 사년 동안 수업시간을 통해 내 몸에 알게 모 르게 배어있던, 문학작품을 분석과 평가의 측면에서 파악하려는 태도는 여지있어 허물어져 버렸고, 오랜만에 독서가 주는 즐거움의 낙원에 파묻혀버렸다. 그러나 그 즐거움 속에는 간단치 않는 어려움이 내포되어 있었으니, 그것은 벽초 특유의 우리말에 대한 지식 때문이었다. 한 번이라도 글을 써본 사람은 경험해보았으리라,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문장의 훌 륭한 조합을 위해 짜내야 하는 단어들의 선택들 ! 이 작업은 하나의 고통이자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이 본질적으로 맞닥 뜨려야 하는 어려움이다. 그러나 벽초에게는 이러한 어려움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의 거의 통 달했다는 느낄 정도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물론 이거니와 사대부들의 언어로부터 최하층 빈민들의 언어까지 그는 자유 자재로 능란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조선 전 지역을 세세히 돌아다닌 것 같은 지형에 대한 안목은 어떻게 후대 평론가들 이 평가할 것인가?그저 벽초의 천재성에 존경과함께 두려움마저 느낀다. 인간의 지적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확장되어 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서...... 벽초가 창조해낸 드넓은 언어의 바다를 헤매면서도 결코 해맨다는 생각없이 비록 수월치는 않지만 그래도 앞으로 헤쳐 나가는 나의 독서행위는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제대를 하고 복학하기 전까지 나는 잠시 외국에 나가 있었다. 반년 동 안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오는 행기 속에서 난 지루한 여행을 잊고자 잠을 청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는 모른다. 깨어나서 조그마한 비행기 창으로 풍겨을 감상하던 나는 갑자기 뭉클한 심정이 들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 한 , 그렇지만 결코 본 적이 없는 풍경이 내 눈 밑에서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아! 한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 시 후 '곧 김포에 착륙하겠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언어학과 철학에서 흔히 직관 intuicion 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성적 능력의 범위를 넘어선 인간의 기본적인 감각상태를 가리키는 이 단어를 나는 난생 처음 서울로 오는 비행 기 속에서 느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벽초의 문학세계와 행복하게 만난다. 같은 핏줄이라는 공통성에 대한 인 식이야말로 내가 『임꺽정』을 진정 재미있는 소설로 읽게 한 가장 본원적인 요소일 것이다. 만일 외국인이 그 나라 말 로 번역된 『임꺽정』을 읽는다면 의미가 전달해주는 즐거움에만 머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의미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한줄 한줄 배면에 있는 나, 그리고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 그렇지만 설명 불가능한 무엇을 향유할 수가 있었다. 이것 은 오로지 '같은 민족'이라는 측면에서만 설명 가능한 그런 것이다. 이제 대장정은 끝났다. 청석골 형제들의 이야기에 히히덕거리며 웃기도 했고 , 그들의 슬픈 삶에 헛헛하며 목이 메이 기도 했고 , 관군과의 전투에서는 긴박감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커다란 감동의 안개가 온몸을 감싸고 있을 뿐이다. 이 안개는 청량하고 달콤한 수증기로 변하여 내 피부에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다. 다시 이 물방울은 피부를 뚫고들어와 혈관 속에 침투하여 내 육신을 회전한다. 언제 내가 이런 소설 읽기의 감동을 경험했던가?『임꺽정』은 구조주의니, 간 텍스트성이니, 독자수용미학과 같은 현란한 서구적 텍스트 접근방법으로는 그 맛을 느낄 수 없다. 단지 읽으면서 웃고, 슬퍼하고, 긴장하면 된다. 그러면 책을 덮은 후에는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우리 몸 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우리 그것을 느끼기만 하면된다. 아무말도 필요 없다. 그저 느낄 뿐이다. 그러나 그 느낌속에는 어떤 사상 이나 이념도 우리에게 가르칠수 없는 교훈이 용해되어 있다. 우린 그 교훈을 소설읽기라는 즐거운 작업을 통해 절로 간 취할 수 있었것이 훌륭한 소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힘이며 매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