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를 달리는 방법』 이필원 작가 인터뷰


『코너를 달리는 방법』 이필원 작가 인터뷰
좋아하는 일을 후회 없이 좋아하려는 마음에 대하여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서 예기치 못한 코너와 마주한다. 이 코너의 끝이 어디쯤인지, 그 끝에서 과연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모두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코너를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부터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좋아하기 위한 방법까지. 좋아하는 일을 둘러싼 무수한 샛길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꼭 가야 하는 코스가 아닐까. 
청소년을 위한 짧은 소설, 독고독락 시리즈의 신간으로 나온 『코너를 달리는 방법』은 육상 선수인 주인공이 좋아하는 일을 후회 없이 좋아하려 애쓰는 과정을 보여 준다. 어떤 일을 좋아해서 더 잘하려다 도리어 그 마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주인공은 허깨비와의 레이스를 통해 잃어버렸던 자기만의 ‘달리는 마음’을 되찾아 가는데, 과연 이야기 저 안쪽에 숨겨진 작가 이필원만의 ‘좋아하는 마음’은 무엇인지 아래 인터뷰를 통해 살펴보자. 


Q. 내용은 완전히 다르지만, 작가님의 전작인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에 이어 새로 출간된 독고독락 시리즈 『코너를 달리는 방법』도 어떻게 보면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키워드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작가님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A.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는 경우는 의외로 드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 생기거나 그것에 관하여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한껏 들뜨곤 해요. 요즘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릴게요. 말랑한 복숭아, 방 문턱에 앉아서 눈이 마주치길 기다리는 고양이(조용히 ‘맘마’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구입한 아크릴 키링, 좋아하는 영화 캐릭터가 담긴 포토카드, 너무 맵지 않은 떡볶이, 작약꽃과 사과나무 향 등을 조합한 오일 향수…… 등을 아끼며 좋아하고 있습니다.

 

Q. 『코너를 달리는 방법』은 재난 상황을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허깨비가 출몰하는 상황’이라는 설정은 어떻게 하게 된 걸까요?  
A. 처음에는 ‘신체강탈자’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인간의 몸을 빌려 쓰는 미지의 존재가 등장하고, 다음에는 아직 몸을 빼앗기진 않았으나 언제든 강탈당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떠올렸어요. 저는 그런 상황에서도 일상을 영위하는 평범한 인간들이 존재할 거라 생각했고, 그 둘이 붙어 지내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마냥 암담하지만은 않게요.

Q. 작가님도 주인공처럼 인생에서 ‘코너’를 만난 적이 있나요?
A. 저는 요즘 남우와 우진이가 아닌 새로운 주인공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코너를 지나고 있는 중입니다. 달리지는 못하고 천천히 걷고 있는데, 무사히 코너를 잘 지나고 싶습니다. 가끔 제자리에 멈춰 서서 초콜릿과 떡을 먹으며 기력을 보충하고 있어요. 그래도 보충이 부족할 때는 저만의 코너를 지나는 방법을 쓰는데요. 바로 함께 사는 고양이에게 다가가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고양이의 기분을 거슬리게 하지 않는 선에서 콧잔등과 이마, 등허리를 쓰다듬으면서 힘을 받아요. 오래전부터 그 힘으로 코너를 걷거나 달리곤 합니다.

Q. 책에서 이런 대사가 나와요.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괴로워지는 거야.” 혹시 작가님도 이런 경험하신 적 있나요?
A. 저 대사는 육상 선수로 나오는 남우가 한 말인데요. 저는 남우와 우진이에게 달리기란 결국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우의 경우는 달리기를 그만두고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은 호승심이 불씨로나마 타오르고 있을 거예요. 저 역시 좋아하는 일을 오래 좋아하는 데에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서 조금쯤 미워하게 된 경험이 당연히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는 걸 그만두기는 또 싫어서 이 악물고 버티며 나아가는 중이에요. 그게 무엇인지는 비밀입니다.

 

Q. 이 소설에서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무엇일까요?
A. “마음을 비우고 기본기부터 다시 다진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내 땀을 흘리며 숨이 벅차 바닥에 대자로 누웠던 오후가 내 안에 한가득 쌓여 있다.”(62쪽)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명언이 항상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요즘은 틈틈이 공들여 온 시간이 마냥 헛된 게 아니라는 지지대가 필요한 나날을 지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가장 마음이 가는 문장을 골라 봤습니다.   

Q. 선우진에게 양팔을 쫙 벌리는 우남우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이 장면에 담긴 작가님만의 이야기가 있을까요?
A. 만약 각별한 누군가가 제 곁을 떠나려고 한다면, 아마도 저는 손을 잡거나 끌어안는 식으로 붙잡고 싶을 거예요. 적극적인 몸짓이 필요한 대목이었고, 때문에 남우의 자세와 대사를 박력 있게 그렸습니다. 독자님들도 그 장면을 주의 깊게 살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청소년 독자에게 십대를 먼저 지나온 선배 혹은 ‘좋아하려는 마음’이 담긴 책을 쓴 작가로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건 나이가 들어도 어려운 것 같아요. 섣불리 말을 얹기에는 저 역시 여전히 좋아하는 일 때문에 많은 순간 실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어느 때고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조금 진부한 얘기지만,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고 틈틈이 이어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정체돼 있는 것처럼 보여도 차근차근 나아지고 있으니까요. 때때로 좋아하는 일이 지겨워지거나 미워지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으면 절반의 확률로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하게 될 거라고 믿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