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의 교환』 편집자 후기


 
1년에 한 권 정도는 하게 되는 중앙유라시아사 책. 어마어마한 고유명사의 행렬에 할 때마다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이젠 제법 익숙해져 대강의 그림은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김호동 교수님의 소개로 제자 분의 번역을 받아 진행한 건이라 어떤 드라마틱한 후기는 없고, 오역을 최소화하고 잘 읽히는 책으로 만들기 위해 원고를 거듭 매만졌다는 정도만 적어두고 싶다.
미국의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스비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상륙하면서 신대륙과 구대륙의 동물, 식물, 사상, 문화, 기술, 병원균 등이 상호 전파되어 급격한 사회 변화를 초래한 것을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이라고 표현했다. 이 책의 저자 티모시 메이는 이를 차용해 몽골의 정복이 세계사에 초래한 획기적인 전환을 ‘칭기스의 교환Chinggis Exchange’이라고 부른다.
몽골이 유라시아 대륙의 양극단을 연결하면서 인간은 처음으로 통합된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몽골이 구축한 안전한 교역로를 따라 유럽의 상인과 선교사들이 대칸의 제국으로 향하고, 페르시아와 중국 사이에 학문 교류가 이루어지고, 이른바 세계 종교들이 대륙을 가로질러 널리 확산되고, 몽골의 전술과 무기가 전 세계 전쟁의 양상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 통합된 세계에 대한 경험은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다른 삶의 조건을 마련했다. 먹는 음식, 입는 옷, 믿는 신은 물론 삶의 반경과 타자에 대한 인식도 확연히 달라졌다. 질병의 전파 속도도 더 빨라져 흑사병의 대유행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거의 모든 지역이 초토화되는 압도적인 경험을 하기도 했다. “먼지가 가라앉은 이후 세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고, 결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생활 반경이 좁아지다 보니 사람과 물자, 사상과 종교, 기술과 예술, 그리고 질병의 거대한 이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내 몸은 비록 작은 책상에 묶여 있지만, 생각은 몇 세기에 걸쳐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남북을 오가던 수많은 사람들의 싸움과 교류, 혼돈과 융합의 현장으로 넓게 확장되었다. 특히나 흑사병 이후 세계 각지의 경제 구조가 바뀌고, 의학이 발전하고, 교육과 신앙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모습은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가 맞닥뜨린 충격과 변화의 흐름과 상당히 흡사해 역사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새삼 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보도자료의 한 꼭지로 '언택트 시대에 읽는 최초의 연결된 세계사'라는 테마를 다루었다.
저자 티모시 메이는 몽골 제국사 분야의 고전인 <몽골족의 역사>를 쓴 데이비드 모건의 제자로, 본인도 이미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로 자리 잡은 인물이다. 학술 저작과 교양 역사서 양쪽 모두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이 책도 수 세기에 걸쳐 방대한 지역에서 벌어진 일을 간명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서술로 잘 전달하고 있다. 게다가 곳곳에 뜻밖의 유머가 숨어 있어 읽는 동안 꽤 여러 곳에서 웃음이 터진다(나도 그랬고, 크로스교를 봐준 동료 편집자도 그랬으니 믿어도 됨). 김호동 교수님의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가 한 주제당 두 페이지라는 압축적인 형식 때문에 다소 어렵게 느껴졌던 분들이라면 이 책으로 몽골 제국사 전반을 쭉 한번 훑고 나서 세부 주제로 진입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편집자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