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으로 힘든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지지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듯, 청소년기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다. 과민하고, 외로움에 취약하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스트레스에 약하고,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로 부모에게 반항하기도 하고, 이성을 향한 왕성한 호기심 때문에 나쁜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상담 전문가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정서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이고 청소년의 일탈 행동 이면에는 정서적 부적응 문제가 있다고 한다. 『열여섯 살 베이비시터』는 청소년기의 이러한 정서적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다.
 

열여섯 살 에밀리앵은 아버지 없이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와 단둘이 파리 교외에서 살고 있다. 이야기는 에밀리앵이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에밀리앵은 비디오 게임이 가지고 싶어서 엄마를 조르지만 빠듯한 생계를 이어 가느라 바쁜 엄마는 아들의 욕구나 감정을 이해해 줄 여유가 없다.
첫 장면에서 파악되는 에밀리앵의 문제는 무엇일까? 욕구 불만과 기대했던 엄마의 애정을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외로움이다. 컴퓨터, 휴대전화, 엠피스리 등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기기, 모자나 운동화 같은 메이커 패션 소품 등 갖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데 용돈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에밀리앵은 욕구 불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에밀리앵은 보통 대형 쇼핑몰에서 친구를 만나는데, 이 점은 우리 청소년들도 비슷할 것이다.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들은 욕구를 한껏 자극하지만 아이들은 물건 가격을 보면서 좌절을 느낀다. 에밀리앵은 자신의 욕구나 감정에 대해 엄마의 관심과 이해를 바라지만 엄마는 아이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첫 장면의 모자 간 대화를 보면 그 점이 잘 드러난다.
“그래, 너도 갖고 싶겠지!”하고 엄마가 먼저 아이의 욕구에 공감해 주는 말을 건넨다면 아이는 어쩌면 자신이 이해받는 데서 충족감을 느끼고 자진해서 욕구를 접는 의젓함을 보일지도 모를 일. 하지만 엄마는 아이의 정서적 안정에 필요한 지지와 공감을 해 줄 줄 모른다. 아버지도 형제도 없는 에밀리앵에게 엄마는 정서적 지지를 줄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지만, 엄마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 때문일까, 엄마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그리고 어쩌면 성격 탓일까, 엄마는 아이의 외로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에밀리앵에게는 사랑을 느낄 때, 자신의 감정을 얘기할 누군가가 없고, 바보같이 별을 보고 울 때 말려 줄 누군가가 없다. 감정의 동요가 심해서 냉장고로 달려가 음식을 몽땅 꺼내 폭식을 할 때, 따듯한 위로를 건넬 사람도 없다.
이처럼 일상에서 욕구 불만과 외로움을 느끼는 에밀리앵한테서 많은 청소년들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마음 깊이 공감할 것이다. 에밀리앵과 비슷한 환경의 청소년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 청소년의 이야기지만 우리 청소년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물론 에밀리앵이 끼니마다 냉동식품을 먹는 대신 라면에 햇반을 말아 먹고, 베이비시터 대신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알바를 한다면 우리 청소년들은 에밀리앵을 더욱 친근하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어, 독자들은 에밀리앵이 겪는 정서적 어려움이 바로 자신들의 어려움임을 발견하게 된다.
마리 오드 뮈라이 작품의 특징은 프랑스 청소년의 일상을 유머로 들려주는 데 있고, 그러한 특징은 번역으로 전달되기 쉽지 않은데도 여러 나라 청소년들이 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고 깊이 공감한다. 작품의 이런 흡인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소설의 사건과 심리를 연결하는 자연스런 개연성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요새 쏟아져 나오는 청소년소설을 읽으면서 개연성 면에서 아쉬웠던 적이 종종 있었는데 이 소설은 무척 만족스럽다.
에밀리앵에게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과장해서 보여 주는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있다. 에밀리앵은 자신의 농담 취미에 대해 애정 결핍에서 나온 것임을 통찰하는데, 독자는 에밀리앵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애정이 결핍된 아이로서 타인의 관심과 인정에 집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밀리앵은 토끼 이야기를 지어내서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데, 그 토끼는 아빠에게 버림받고 형제도 없는 외톨이 토끼다. 외톨이 토끼 얘기를 들은 꼬마들이 “엉아, 슬퍼?”라고 묻는 대목에서 독자는 외톨이 토끼가 에밀리앵 자신을 투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작품에 부여하는 섬세한 개연성 덕분에 독자는 에밀리앵의 습관성 거짓말이 외로운 아이의 심리적 보상 행위라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다.
소설 끝 부분에서 에밀리앵은 갑자기 물건을 훔치는 또 다른 문제 행동을 저지르는데, 작품을 꼼꼼히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떤 심리적 동기에서 그러한 행동이 발생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주인공의 문제적인 행동과 심리를 이어 주는 이러한 개연성에서 청소년의 심리 파악에 뛰어난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그 덕분에 에밀리앵이 겪는 정서적 어려움들이 하나하나 진실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시종일관 ‘웃음’ 코드로 작품을 풀어 가지만 에밀리앵의 이야기는 실은 우울한 이야기다. 환경은 불우한 편이고, 자라면서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한 에밀리앵의 내면에는 버림받았다는 슬픔, 외로움이 강하게 자리한다. 그러나 에밀리앵에게는 자신의 어려움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집안 사정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엄마의 고단한 현실을 이해하는 의젓함이 있다. 그래서 에밀리앵은 사랑스럽다.
에밀리앵은 컴퓨터를 사기 위해 베이비시터로 일하기 시작하는데, 거기서 뜻밖의 경험을 한다. 에밀리앵은 아이들을 돌보는 게 좋고, 가족이 생긴 것 같아 행복하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한 에밀리앵은 자신의 진로도 그 방향으로 정하고 나중에 아이를 많이 낳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외로움이 깊은 에밀리앵에게는 사랑을 나누는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만큼 절실한 것이 없을 것이다. 베이비시터로 일하면서 에밀리앵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한 셈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육아 관련 책을 찾아 읽는 등 열심히 적극적으로 일해서 유능한 베이비시터로 인정받으며, 나아가 자신의 존재 가치도 깨닫게 된다. 돈을 벌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아르바이트는 에밀리앵에게 소중한 체험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는 심리적 좌절을 안겨 주기도 한다. 애정을 쏟았던 안토니가 부모를 따라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에밀리앵은 슬픔과 외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다른 심리적 스트레스들이 겹친다. 아망딘느의 유혹에 넘어가는 바람에 결혼까지 꿈꾸던 여자 친구 마르틴느 마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급기야 헤어지게 된다. 경영난으로 엄마가 가게를 닫는 지경에 이르자 에밀리앵은 우울해지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우울한 기분은 계속된다. 결국 마르틴느 마리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던 에밀리앵은 향수를 훔치다 경비원에게 붙잡힌다.
 

아망딘느의 도벽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에밀리앵은 왜 갑자기 물건을 훔치게 되었을까? 도벽이 있는 주변 아이들을 모방하는 심리가 작용할 수도 있지만 에밀리앵의 비행에는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청소년기에 갑자기 나타나는 문제 행동들을 살펴보면 정서적인 문제가 행동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비교적 모범적이고 행동을 잘 통제하다가, 상실?좌절?실망 등의 감정을 경험한 뒤에 비행을 보이는 경우에 그럴 가능성이 크다.
에밀리앵은 아망딘느의 도벽에 대해, “훔치는 사람들은 자기 감정을 달리 표현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통찰은 바로 본인의 비행에도 적용된다. 훔친 향수의 이름 ‘폭풍 치는 하늘’처럼 에밀리앵은 심리적 좌절을 주는 사건들을 겪으면서 우울이라는 정서적 위기를 맞고, 그러한 정서적 위기가 문제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다. 청소년의 우울증은 이처럼 위장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비행은 정서적 어려움에 놓인 청소년이 보내는 일종의 SOS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에밀리앵이 정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가 외로움에 취약하고 최근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준 사건들이 친밀한 관계의 손상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에밀리앵이 필요로 하는 애정, 즉 정서적 지지를 주는 관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소설은 에밀리앵의 엄마가 마리틴느 마리에게 전화를 걸어 에밀리앵에게 바꿔 주는 것으로 끝난다. 에밀리앵의 엄마는 드디어 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가족이나 또래의 정서적 지지는 에밀리앵이 가장 바라는 것이고, 에밀리앵의 정서를 안정시킬 수 있는 묘약이기 때문이다. 에밀리앵을 위한 처방은 불안?우울 등 정서적 문제를 겪고 있는 모든 청소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책을 매개로 독자의 성장을 돕는 독서치료 전문가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은 청소년들과 다양한 정서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욕구 불만이 있는 청소년, 가족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청소년,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있는 청소년, 특히 심리적인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청소년에게 권하고싶다.
또한 이 책은 욕구 불만과 애정 결핍 등 정서적으로 취약한 주인공이 심리적 좌절을 겪으면서 울적한 기분이 되고, 우울이 문제 행동으로 표출되는 과정을 웃기면서도 진지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우울한 독자라면 책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통찰하고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밀리앵에게서 따뜻한 에너지를 받고 어려움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여유를 배우게 될 것이다.
 
 

글 · 김주열 (번역가, 독서치료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