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미래에서 자신을 바라보자

내가 청소년일 때, 청소년을 향한 어른들의 좋은 말씀들을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고는 했다. 아이 졸려. 뻔하고도 뻔한 말이구나. 공자 왈 맹자 왈이구나. 국민윤리 교과서구나.
그런데 내가 서른네 살이 되어 이 뜻하지 않은 기회에, 푸르고도 푸른 벗들에게 뭔가 유익한 말마디나 해 볼 작정인데, 문제는 내 머릿속에 감도는 말들이 도무지 시답지 않다는 것이다. 나 역시 졸립고, 공자 왈 맹자 왈 같은, 국민윤리 교과서 같은, 뻔하고 뻔해서 뻔뻔하게 느껴지는 말들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사실 나는 청소년일 때, 내가 청소년이라는 게 지독히도 싫었다. 일단 어리다는 자체가 싫었다. 내가 아무리 똑똑한 척해 봐도 열몇 살이라는 나이의 한계,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 키가 작은 데서 기인한 열등감, 타고난 체질로 인한 미술 음악 체육 교련 등 예체능 시간과의 불화, 농사짓는 부모님에 대한 애증, 덕지덕지한 촌티, 여학생만 보면 껄떡거려지는 심장 등등. 그 모든 것들이 끔찍이도 싫었다.
늘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아 이놈의 청소년 시절만 벗어나면 저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거라고 두 손바닥에 참을 인 자를 하루에도 수십 개씩 써 가며 참고 또 참았다. 과연 스물이 되고 고등학교 교정을 벗어나니 행복하고도 행복하였다. 무엇보다도 청소년일 때 나를 둘러싼 모든 자율적 타율적 관습적 제도적 가정적 등등의 억압들이 해제되어 있었다.
물론 그 후 불알 두 쪽 믿고 풍진 세상을 헤쳐 가는 이십 대를 거치는 동안, 이십 대보다 안정된 대신 여러모로 짓눌린 삼십 대를 살면서, 그래도 청소년일 때가 참 좋았던 시절이구나, 한숨을 내쉴 때가 참 많았지만.
 
 
그런데 서른 즈음부터 나는 청소년들과 자주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학원 강사의 신분으로 족집게인 것처럼 설치기도 했고, 작가의 입장으로서 문학 소년들에게 설익은 문학론을 떠벌리기도 했다. 내가 만났던 청소년들은, 내가 청소년일 때 그러했듯이, 지독히도 경청을 안 했고, 틈만 나면 자기들끼리 떠들었고, 딴짓을 했고, 졸았다. 심약한 내가 야단을 쳐도, 좋은 발로 타박을 해도, 소 귀를 단 양 들은 체도 안했다. 나는 감탄하여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의 나랑 똑같구나! 나는 청소년들의 그 태연자약하고 방약무인한 행동을 견디다 못하여, 주제넘게 윽박지르기도 했다. 너희들, 그 따위로 살면 안돼. 나중에 잘 되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인생 선배의 말을 뼈에 새기듯 들어야 해! 청소년기는 잠깐이고 인생은 길단 말이다. 너희들이 살아갈 기나긴 세월 중에 겨우 몇 년을 못 참아서 안달복달이냐? 학교 다닐 때 엉덩이 무거운 애들, 인내와 끈기를 배운 아이들, 그 아이들이 결국 성공한다는 걸 왜 몰라! 그리고 왜들 그렇게 이기적이냐? 너희들이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친구들을 한 시간에 1분씩만 생각해도 그런 식으로는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제발, 너만 생각하지 말고 친구도 생각해라.
또 너희들은 왜들 그렇게 세계가 좁냐? 너희들보다 40여 년 전 일찍 고등학교를 다녔던 분들은 이 나라의 독재를 위해 항거하기도 했다. 이후에 쭉, 청소년은 이 나라의 양심을 대변하는 가장 순수한 피였다.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학업과 병행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 그런데 너희들은 공부할 때 빼고는 아무 생각이 없어 뵈는구나. 물론 안다. 너희들의 숨통을 옥죄는 21세기 입시 지옥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엿보면서 살자.
이런 식으로 한없이 떠벌리고는 했다. 귀갓길에 몹시 부끄러웠다. 쥐뿔도 잘난 것 없는 놈이 어쩌다 선생이라는 입장에 섰다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놈인 것처럼 말 나팔을 불어 대다니.
 
 
하지만 선배는 후배에게 뭔가 말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찌 선배이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지금 청소년으로 살고 있는 후배들도, 나처럼 선배가 되고 기회가 되면 역시나 후배들을 향해 어쭙잖은 말을 들려주기 위해 안달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 것인가? 어쩌면 그 미래의 날에 자신들이 후배들에게 들려줄 말이, 현재 청소년으로 살고 있는 지금 자기 자신에게 각오하고 당부하고 싶은 말일는지도 모른다.
푸른 벗들이여, 한 10년 후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 보자. 10년 뒤 미래에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자. 바라만 보지 말고 뭔가 살이 되고 뼈가 될 말들을 해 주자.
 
 

글 · 김종광 (소설가)
 
 
1318북리뷰 200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