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알아서 해가 떴습니다 _ 사소한 풍경이 들려주는 소리

사소한 풍경이 들려주는 소리

송미경(동화작가)
 
정연철 동시 속 아이들은 어른이 무심코 지나쳤던 흔한 풍경을 가만히 응시한다. 지금은 멈춰 있어 눈에 띄지 않는, 이제 곧 이야기가 시작될 배경을 본다. 동시 속 아이들은 사소한 투덜거림과 혼잣말을 솔직히 내뱉고, 아침 장독대 위에 쌓인 함박눈에서 생크림 케이크를 떠올리며 군침을 삼키고, 카메라를 갖다 대면 쪼르르 내빼는 청설모한테 공감하고,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무심히 양지꽃을 떼고 조팝나무 꽃가지를 당겨 꺾는 모습을 보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표현한다. 시골에서 올라와 도시의 아파트 베란다로 쫓겨난 뒤 날마다 한숨짓는 맷돌의 꿈을 듣고 고양이와 비둘기와 달팽이와 금붕어의 마음을 헤아린다.
멈춰 있는 것들, 우리 삶에 그 어떤 역동도 만들어 내지 않는 듯한 작은 존재들의 욕망과 꿈을 듣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소리를 듣는 아이로 자라난다.
 

인간과 자연, 공존의 의미

 
아이는 동네 공원 나무 의자에 앉아 비둘기의 소리를 듣는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비둘기에게 시선을 보냄으로써 인간만이 풍경의 주체가 아님을 말한다.
「무서운 소문」에서 아이들은 사람들 탓에 삶의 터전을 잃게 생긴 다람쥐들의 소곤거림을 듣는다. ‘뭐 그런 사람들이 있대?//쉿! 사람들 지나간다’는 장면에서 우리는 인간이 자연에 휘두른 폭력을 발견하고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이 세상의 평온은 다른 생명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정연철 시인의 시선은 의미 있어 보이는 목적과 행동뿐만 아니라 어린이가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 작은 웃음, 어른들이 보기에는 불안전하고 위험해 보이는 욕망까지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이 시선은 빛과 그림자를, 큰 것과 작은 것을, 분명한 소리와 희미한 소리를, 좋은 말과 나쁜 말을 나누지 않고 함께 품어 준다. 그래서 동시 속 아이들은 자신의 몸과 언어와 욕망과 삶의 자잘한 것들을 모두 소중히 여김으로써 세계를 긍정한다.
 

어린이의 작은 욕망에 귀 기울이다
어린이날에 피자 한 판만 사 준 엄마 아빠에게 아이는 대충 쓴 카드로 어버이날을 때우고(「신의 한 수」), 늦둥이 동생을 가진 엄마 아빠가 커피와 담배를 딱, 끊은 뒤 아이에게도 모범을 보이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아이는 ‘흥!/나한텐 안 통한다/게임은 딱,/끊을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니까’라고 단호히 말한다(「늦둥이 동생의 슈퍼 파워」). 철저히 아이들 편에 서서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동시의 즐거움이다.
정연철의 동시에는 칭찬받으려는 말도 없고 혼날까 봐 눈치 보는 말도 없다. 아이들끼리 공처럼 주고받는 일상의 언어가 그대로 통통 튄다. 아이들은 자신의 혼잣말을 입 밖으로 소리 내 보면서 자기 목소리를 찾는다. 어른에게 자세를 교정받지 않아도 아이는 공을 튀기며 스스로 몸의 근육을 키우고 균형을 잡아 간다.
「즐겨찾기」 속 아이는 ‘게임 하다가 늦잠 잔 날 아침엔/마우스 딸깍,/딸깍,/딸깍……, 했으면’ 하고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치장하지 않고 들려준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을 단풍이 드는 순간 우리는 먹고 자며 일상을 지속하는 아이가 어느새 훌쩍 자라난 모습을 발견한다. 이렇게 미묘한 변화를 포착하는 시선은 약자의 목소리, 소외된 자의 목소리를 듣는 태도로 이어진다.
「아이비는 방학이 두렵다」에서는 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모두 떠나자 교실 창가에 놓인 아이비가 비명을 지른다. ‘물!//물!//물!//목말라, 제발 물 좀……//와, 방학이다!//애들 함성에 아이비 목소리는/묻힌다’. 좀 더 약하고 힘없는 생명의 소리를 듣는 섬세함이 있다. 나의 작은 욕망을 발견하고 그 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어린이는 작은 것들의 욕망과 결핍을 발견할 마음을 얻는 것이다.
학교 비상계단 3층 천장 구석에 집을 짓고 있던 제비 부부는 ‘쉬는 시간마다 애들이 몰려와/쳐다보고, 사진 찍고, 떠드는 통에/깜짝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도저히 거기에 집을 짓고 알을 낳을 수는 없었죠/고민 끝에 딴 데로 이사 가요//이제 관심 좀 꺼 주세요/모르는 척하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제발 부탁드려요//제비 부부 드림’(「제비 부부의 하소연」)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어른들이 아이들의 삶에 가하는 통제와 감시, 지나친 관심과 보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어린이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잘난 척하는 어른들을 향한 어린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시도 있다. ‘사람밖에 없다고 배웠는데/아니다//고양이, 소파에 앉아 창밖을 골똘히 바라보는 거/비둘기, 종종 걸어가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거/달팽이, 느릿느릿 기어가다 멈추고 촉수 내미는 거/금붕어, 헤엄도 안 치고 멍하게 있는 거//분명 뭔가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사람들은 자기들만 생각한다고/잘난 척하지 말아야 한다’(「생각하는 동물」). 이처럼 아이는 자신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통해 자신을 응원한다. 스스로 자기 편에 서는 것이다.
 

다정한 시선
우리는 시를 읽으며 우리가 일상의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때로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물이 꾸는 꿈을 듣고, 작고 약한 동물들의 소리를 듣는 한 이 세계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밤하늘에 바나나가 떴다네
 
보름 뒤에 만두가 뜬다네
 
또 보름 뒤엔 왕만두라네
호떡이라네
피자라네
 
별사탕도 반짝거린다네
-「맛있는 밤」 전문

 
시인은 달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통해 늘 하늘에 떠있는 달의 고요한 변화를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우리를 둘러싼 풍경이 한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느린 속도로, 얼마나 다양한 서사를 품고 앞으로 나아가는지 깨닫게 한다. 어린이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와 꾸준한 성장을 든든하게 지켜보는 시인의 시선은 다정하다.
 
산타 할아버지! 저 장갑도 있고, 목도리도 있고, 모자도 있으니까요. 선물 주시려거든 털신으로 주세요. 네? 발이 너무 시리거든요
 
눈사람이 발을 꼼지락거린다. 어? 그런데 발이 없다
 
아, 맞다. 착각했어요, 히히. 털신 말고 털방석으로 주세요. 엉덩이가 시린 거였어요
-「눈사람이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낸 문자」 전문

 
산타 할아버지에게 눈사람이 보낸 문자는 짠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눈사람이 발이 시리다고 하다가 발이 없다는 걸 깨닫는 과정도 재미있다. 사소한 풍경을 오랫동안 바라본 시선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해와 온기가 느껴진다.
사랑하는 대상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작은 한숨이나 탄성을, 입가에 번지는 작은 웃음을, 눈물을 참고 있는 반짝이는 눈을 발견하게 된다. 경탄을 자아낼 만한 광대한 광경이나 놀랄 만한 큰 사건, 큰 소리는 누구나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세미한 소리와 미묘한 변화는 사랑할 때만 포착할 수 있다.
 

나만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
정연철의 동시에서 아이들의 자기 긍정은 단순히 자기애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 성찰로 연결된다. 아이는 잃어버린 줄 알았던 반지를 찾자 동생을 의심하며 울렸던 기억과 마주한다(「반지의 추억」). 자신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자신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도 담담히 들여다본다. 과거의 목소리를 듣는다. 지나간 일, 사라지고 없는 일을 외면하거나 잊지 않고 안타까워하며 발을 구른다. 이런 자기반성의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능청스러운 목소리도 생생하다.
엄마가 아끼던 잔을 깬 아이는 혼이 난 뒤에 ‘엄마에 대한 믿음이/짝,/깨졌다’고 한다. 엄마에게 미안해하기보다는 ‘나보다 잔이/더 소중한가’라고 되묻는데, 이 물음은 지극히 아이답고 정감 있다(「깨진 날」). 자신이 더 소중하다는 투정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받고 싶은 벌」에서는 아이들이 받고 싶은 벌의 목록을 늘어놓는다. ‘넌 지각 대장이니까/내일은 학교 오지 말고 집에서 쉬어!//새치기했구나?/오늘 급식 제일 먼저 먹어!//청소 안 하고 도망갔지?/당분간 청소 금지!’. 어른들이 말썽으로 여기고 통제하는 사이 아이들은 유머와 능청을 더하여 새로운 놀이를 만든다.
  

 
시인의 유머가 반짝이는 시이다. 주인공과 조연이 따로 없고, 벌을 주는 존재와 벌을 받는 존재가 따로 없으며, 잔소리를 하는 존재와 잔소리를 듣는 존재가 따로 없다. 조연은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고 벌을 받는 아이는 더 크고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통제받는 아이는 스스로 자유로운 놀이를 발견하며, 반 아이들은 서로에게 상을 준다. 게다가 후보 중 우열을 가리지 않고 ‘막상막하’라고 함으로써 이 사랑스러운 풍경의 주인이 우리 모두임을 말한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는 논리를 태연하게 구사한다. 아이들의 삶에 가까이 있으나 훈계하거나 간섭하지 않으며 아이들을 지켜보는 시인의 시선이 있어서 이 동시집은 어디든 아이들이 찾아들 구석이 많다. 결국 아이들은 시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는 거대한 사건을 통해서만 성장하지 않는다. 다음 날이면 까맣게 잊고 말 아주 흔한 우리 삶의 풍경들, 오늘 지나치고 나면 다시 만날 일 없는 공원의 비둘기와 작은 산짐승들, 언제 보아도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비 내리는 풍경을 보면서도 아이들은 자라난다. 큰 아픔이나 놀랄 만한 기쁨처럼 도드라진 감정뿐 아니라 사소한 감정들을 느끼고, 잊고, 느끼고, 잊으며 자라난다. 이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하루가 얼마나 놀라운지 깨달아 가면서.
이렇게 작은 것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어린이는 보이지 않을 만큼 고요하게, 하지만 강하게 자란다.

고들희 2018-07-31 18:01:10 0

이 책은 수시로 들쳐보는 재미난 시집. 나의 일상 아니 우리의 일상을 잘 꼬집어 낸 시집이랄까. 어른이라면 읽으면서 아이들의 시각에서 본 나의 생활이 뜨금, 아이들의 예리한 관찰력에 감탄 ㅎㅎㅎ 함께 하고 나눌 수 있어 좋은 시집. 우리의 일상의 얘기라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책,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