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덩이뿌리, 편견과 마주하다

나는 왜 놀란 걸까? 왜 자꾸 그 말이 생각날까…….『나는 즐겁다』를 읽고 머릿속에서 뱅뱅 돌던 질문이다. 나는 그런 내 반응이 당황스러웠고, 마침내 그 답을 찾았을 때 적잖이 놀라고 부끄러웠다. 처음엔 그냥 장난스럽게 자문자답을 했다. 뜻밖이라 그런 거지. 다 내가 무식해서야! 재밌잖아. 열여섯 살 란이 캐릭터라면 그런 말 할 수도 있지, 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찜찜했다. 느껴졌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게. 덩이뿌리처럼 내 안의 어딘가에 깊이 뿌리내린 편견 덩어리가.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소설의 어떤 부분이 내게 그런 질문을 던졌고, 어떤 경로로 내 안의 편견 덩어리와 만나게 됐는지 얘기해 보려고 한다. 그러면 작품 속 란이의 친구로 등장하는 여유미의 말대로 그 덩어리가 “고백하면 좀 가벼워질” 것도 같아서다.
 
그 전에 먼저 『나는 즐겁다』의 내용을 살펴보자. (그래야 그 고백의 밑그림이 보일 것 같다.) 이 소설은 중학교 3학년 여학생 이란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된다. 첫 장에서 란이는 자신이 보컬을 맡고 있는 밴드 멤버를 소개한다. 밴드 공연 도중 간주 부분에서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각각의 연주자들에게 차례차례 돌아가듯 한 명 한 명의 면면이 공개된다. ‘영양실조’라는 밴드 이름만큼이나 부실해 보이는 멤버들과 그들에 대한 란이의 코멘트는 발랄하고 경쾌하며 코믹하다. 그래서 코믹 발랄 밴드 이야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세 번째 장에 이르면 밴드 이야기와는 다른 흐름이 느껴진다.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할까. 란이 엄마의 기일을 배경으로 평범하지만 따뜻한 가족의 일상이 그려진다. 여동생의 생리대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 란이의 오빠 이락의 캐릭터나 아내를 먼저 보내고 엄마처럼 두 아이를 돌보는 아빠의 모습은 읽는 이로 하여금 슬며시 웃음 짓게 한다. 이런 가족이라면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비가 그친 뒤 처마 밑에서 빗방울 하나가 톡 하고 떨어지듯, 락이의 한마디가 이어진다. “저, 게이인 거 같아요.” 비장하지도 처절하지도 않은, 어떻게 생각하면 무심하게조차 들리는 고백. 하지만 분명한 커밍아웃이다. 누구의 강요도 누구의 재촉도 없는, 자의적인 선언. 그리고 그 선언은 란이와 아빠를 갑작스런 혼란에 빠뜨린다. 란이는 “오빠, 게이 안 하면 안 돼? 그거 꼭 해야 돼?”라는 반응을 보이고, 아빠는 오랜 외면 끝에 정상으로 돌아오게 도와주겠다며 락이에게 병원행을 제의한다. 그렇다면 락이는? 게이가 무슨 대통령이나 선생님이라도 되느냐며 란이의 투정을 받아주고, 병원에 가자는 아빠에게 “……저 죽을힘을 다해 악착같이 노력했어요. 정말 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행복해지고 싶어요, 아빠.” 하고 서럽게 대답한다. 그리고 락이는 조용하지만 꿋꿋하게 ‘게이’로서의 자신을 그가 속한 사회(학교)에 드러낸다. 그곳에서는 그를 쫓아내려 하지만, 락이는 도망치거나 숨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는 두 개의 흐름이 존재한다. 란이의 밴드 이야기와 락이의 커밍아웃 후의 이야기. 란이는 어쩌다 우연히 밴드에 들어갔지만 자신이 음(音)으로 일상을 느끼고, 음악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다. 악기 소리 외에도 세상의 모든 것에서 음정을 찾아낼 수 있다는, “오빠가 합 하고 기합 넣는 소리는 미, 아빠가 방귀 뀌는 소리는 파 플랫, 우리 집 초인종 소리는 솔미솔미”라고 말하는 란이는 어쩌면 타고난 음악적 재능이 있는 아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란이는 음악으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꾸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내 인생이 흘러가든, 그곳에는 늘 음악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 그래서 좋았다. 음악이 성공의 수단이 아니라 함께하고 싶은 것이 되어서.
 
그렇다면 락이의 이야기는? 일단 그 이야기의 시작점이 새롭게 느껴졌다. 만약 락이가 내 소설의 주인공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커밍아웃 전까지의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갈등과 방황이 넘쳐나는. 심각하고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렇다. 내 안에 뿌리내린 그것이 나에게 그 뒤를 그려 보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게이는…… 그런 거니까.

 
이제 된 것 같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사실 그것은 놀라움에서 비롯됐다. 내가 어디서, 소설의 어느 대목에서 놀랐는지 밝히면 여러분 중 누군가는 “아니, 그것도 몰랐어!” 라거나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고백하기로 한 이상 그 정도 질타는 각오하고 있으니까. 혹시 락이가 엄마 제삿날 ‘게이’라고 커밍아웃하는 부분에서 놀랐을 거라고 짐작했다면, 아니다.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구나, 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럼 어디냐고? 락이의 친구 정지민의 한마디를 듣고 나서다. “게이(gay)는 ‘즐겁다’는 뜻이야.” 그 때문이었다. ‘즐겁다’라는 그 말이 정말 뜻밖이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gay’를 검색해 보기까지 했다.
 
게이(gay)라는 말은 영어이며‘즐거운, 유쾌한, 기쁜, 행복한’ 등의 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후닥닥 검색창을 닫았다. 왜 그랬을까. ‘게이’와 ‘즐겁다’는 어딘지 어색하고 이질적인 조합 같았다. 나에게 ‘게이’라는 단어의 느낌은 극단적으로 말해 ‘우울한, 이상한, 부끄러운, 괴로운’ 나아가 ‘비극적인’에 가까웠다는 걸 몰랐었다. 몇 번이나 “게이는……즐겁다?!?!”라는 침묵의 문장이 내 머릿속으로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저항감. 무언가 꿈틀거리며 그 문장을 잡아채고 있었다. 그건 그쪽에 있는 게 아니야, ‘괴롭다, 슬프다’라면 몰라도. 그러니까 나는, 나라는 사람은 그때까지 게이가 즐거울 수 있다는 걸, 게이가 ‘즐겁다’ 쪽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때 자꾸 생각난다고 했던 그 말, 란이의 그 말이 왜 자꾸 떠올랐는지 퍼뜩 깨달았다. “오빠, 그러니까 게이 안 하면 안 돼? 그거 꼭 해야 돼? 관두면 되잖아. 그러면 속상해할 필요도 없잖아.” 란이의 그 말이 내 안에 꽁꽁 숨어 있는 편견 덩어리를 건드려서다. 사실은 말이야,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즐거운 게이’는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잖니, 하고 맞장구치고 싶어서다. 놀랍고 부끄럽게도.
 
 
 
글 · 신여랑 (소설가)
 
 
 
 
1318북리뷰 201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