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개의 코에 감지된 인간 냄새, 그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제목이 심상치 않다. ‘나’가‘개’냐고 묻고 있다니! 개에 비유된 인간은 과연 어떤 인간일까? 우리는 보통 행실이 형편없는 사람을 비속하게 부르거나 낮잡아 부를 때 인간을 개에 비유한다. 그런데 질문의 주체가‘나’다. 내가 나를 비속하게, 혹은 낮잡아 표현하고 있다. 생각할수록 흥미로운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제목을 보고 생긴 궁금증은 소설의 첫 문장인“나는개다.”를 읽고 말끔하게 사라진다. 주인공이 개인 것이다. 하지만 개가‘나는 누구인가’,‘ 과연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등의 실존적인 고민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문득, 어쩌다 가끔씩은 개도, 나무도, 아주 작은 사물도 그런 고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하필 작가가 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 이유는 무엇일까? 내용이 더욱 궁금해진다.
『나는 개입니까』는 지하 배수관 속에 살고 있던 토종개‘아젠’이 인간으로 변해 도시로 나오는 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젠은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간의 모습 속에서 개의 습성들을 보게 된다. 먹을 것 앞에서는 이성이 사라지고, 약자는 비열하게 괴롭히며 강자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며 물러서는 모습이 흡사 개와 같다. 이런 것이 인간이라면 아젠은 자신이 개인지 인간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작가의 주제 의식은 아젠이 입양된‘엄마의 집’에서, 그 집의 아이들인 후셩, 또즈, 샤오샤오와의 생활을 통해 드러난다.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집에서는 부모님이, 때로는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학창 시절 남들보다 조금 더 고생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돈을 많이 벌게 되고…… 그러면 행복해진다. 따라서 성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를 살고 있는 대부분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동 입력되어 있는 논리다. 이러한 생각 아래 아이들은 주입식 학원 교육을 받게 된다.
소설 속 상황도 마찬가지다. 입학시험에서 천재로 평가 받은 아젠은 이전과는 달라진 어머니의 태도가 의아하다. 입학식에서 선생님들도 앞다투어 아젠을 구경하러나온다. 그러나 기대를 잔뜩 받고 있던 아젠은 첫 시험에서 59명 중 58등을 하고 별거 아니라는 듯 크게 웃어 보인다.“ 하찮은 시험 따위를 두고 온 세상 사람들이 심각하게 구는 모습이 이상할 뿐”이라고 하면서.
 
이 책은 쉽고 재미있다. 게다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는 비판이 살아 있다. 무겁지 않은 비판에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꼼꼼하게 들어 있는 것이 이 소설의 묘미다.
중학교에 들어간 아젠은 수업 시간이 왜 45분이냐는 질문을 하고 수학 담당인 먀오즈 선생님은 그 질문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또 아젠은 수업 중에 쥐 죽은 듯 조용히 있기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호기심으로 가득한, 순수한 눈망울로“엄마, 이게 뭐야?”,“ 왜 그런 건데?”라고 묻는 아이에게 엄마는“시끄러워! 쓸데없는 건 묻지 마!”라고 큰소리로 대답하곤 한다. 이미 정해진 규칙에는 의문을 품지말아야 하며 정해진 틀을 벗어난 질문은 무시당한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 세 가지만 꼽으라면 그 안에 ‘음악’이 들어갈 수 있을까. 세 번째 안에 들기 힘들다면 몇 번째 안에는 들 수 있을까. 처음 아젠이 인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될 때 큰 몫을 하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아젠은 깨질 것 같은 두통을 낫게 해 준 음악을 다른 가족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 하나, 아름다운 음악은 순수함을 간직한 그에게만 들린다. 음악에 대한 아젠의 생각은 순수함이 사라져 버린 대표적인 어린 인간 주잉과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음악 따위는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말하는 주잉에게 바보라는 말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에서 말이다.
인간애 또한 아젠이 중시하는 가치이다. 수학 수업에 빠지고 체육 선생님의 병문안을 갔던 아젠에게 먀오즈선생님은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병문안이 아니라 시험을 잘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학 수업 한 시간과 인간적인 사랑의 경중을 비교나 할 수 있을까.
 
 
생각난 김에 먀오즈 선생님의 이야기 하나 더. 먀오즈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건너온 명품 향수를 뿌리고 다닌다. 1학년 12반 57명의 어린 인간들은 이 향수 냄새를 자연스럽게 느끼나 아젠과 연분홍 지렁이 류웨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아젠은 조화로 가득한 먀오즈 선생님 집에서 다시 한 번 이상 반응을 일으키며 뛰쳐나간다. 마치 꽃인 양 위장하고 있는 색색의 플라스틱, 향기 있는 인간인 양 위장하고 있는 선생님. 결국 아젠이 거부 반응을 일으킨 것은, 결코 향기롭지 않은 인간 세계의 냄새인 것이다.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면서도 인간 스스로를 비속하게 이를 때 사용하는 단어, 개. 이쯤에서 작가가 왜 개를 내세워 인간의 어두운 면을 보여 주려고 했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글ㆍ한 지 영 (부천 상동중학교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