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아』 릴레이 인터뷰 1 | 채은랑 작가


제9회 한낙원과학소설상 대상
「사라지지 않아」 , 「하얀 파도」 채은랑 작가
 


Q. 「사라지지 않아」 속 ‘행성 꾸미기’ 게임의 플레이어라면, 작가님의 행성에는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요?
 
커다란 바다부터 하나 만들고 시작할래요. 지구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바다거든요. 바다를 보러 늘 먼 곳으로 떠나곤 하는데, 제 행성에 바다가 생긴다면 언제든 볼 수 있으니까요. 제가 만든 행성에서 파도가 치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아요.

 
Q. 누구도 가 보지 않은 행성과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는 행성. 어디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가요?
 
누구도 가 보지 않은 행성에 가 보고 싶어요. 가 보지 않았다는 건,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테니까요. 제가 소망하는 모든 것들을 꾹꾹 눌러 담아 매일 상상하고 행복해하다가, 그 끝에 그곳에 발을 딛고 싶어요. 그 행성에서 무엇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Q. 「사라지지 않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
 
“이제 정말 어디로 가야 좋을지 알 것 같았다.”
 
「사라지지 않아」에서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 문장이요. 저는 대체로 마지막 문장들을 좋아하는데요. 이 소설은 계속해서 막막한 항해를 이어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각자 목표하는 지점을 향해 나아가려 하고 있지만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혹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하죠. 목적지를 찾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비로소 자신의 다음 정박지를 예감하게 된 현지의 이 문장을 가장 좋아합니다.

 
Q. 「하얀 파도」 속 세계의 관리자들처럼 작가님에게도 이 세계의 무언가를 삭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무엇을 삭제할 건가요?
 
이거 정말 어렵네요. 저는 ‘상처’를 삭제하고 싶어요.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사라지면 조금 덜 아프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Q. 지금 작가님 노트북의 ‘휴지통’에서 되살리고 싶은 게 있다면?

사실 노트북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하얀 파도」를 쓸 때쯤 몰디브의 한적한 섬마을 ‘푸물라’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8년 동안 쓴 노트북이 망가져 버렸거든요. 게다가 저는 어떤 파일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맥시멀리스트라 아직 휴지통이 텅 비어 있네요. 이전 노트북을 복원할 수 있다면, 인도양에서 사라져 버린 제 「하얀 파도」 초고를 다시 꺼내 보고 싶습니다.
 

Q. 「하얀 파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과 그 이유
 
“그게 어떻게 그렇게 돼? 난 이 시리얼이 바삭했다가, 눅눅해졌다가, 내 입 속에서 아주 맛있게 먹혔다는 걸 아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null이 되는 건 아니지.”
 
「하얀 파도」에 등장하는 재아의 대사입니다. 누군가를 잃는 상실을 경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각자의 마음 한구석에 기억이나 사랑의 형태로 계속 남아 있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걸 재아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장면이라 좋았습니다.
 
 
Q. 2023년을 보내고 2024년으로 오며, 휴지통에 넣고 싶은 것과 저금통에 넣고 싶은 것
 
‘후회’를 2023년에 두고 싶어요. 조금 더 잘 해낼 수 있었을 텐데, 더 나은 방향이 있었을 텐데, 하는 것들이요. 연말이 되어 일 년을 돌아보면 늘 후회하는 것들이 생기곤 하는 것 같아요. 그 마음들을 23년에 두고 조용히 다음으로 건너가고 싶습니다.
대신 이 책, 『사라지지 않아』를 꼭 쥐고 24년으로 갈래요. 첫 책이 나왔을 때의 기쁨, 독자들이 즐겁게 읽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행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