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알 돌알』 벼레 작가 인터뷰

『쌀알 돌알』
2023 인터뷰: 벼레 작가 편





"돌알이 쌀알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쌀알들이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시련과 노력이 있을 것 같아요."


※ 벼레 작가가 직접 그린 작업 공간


『쌀알 돌알』을 맛으로 표현한다면? 
갓 지은 쌀밥 맛!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따끈따끈합니다. 쌀알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 쌀들로 밥을 지으면 쌀밥 맛이 날 거예요. (웃음)  

첫 더미를 완성했던 순간이 기억나세요?
첫 더미보다는 처음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시골에서 보내 준 쌀알들 사이에 돌알을 골라내고 있었는데, 빨간 대야 안에 빼곡히 들어 있는 하얀 쌀알들의 모습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색상이 주는 대비 때문에 시각적으로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흠집 있는 쌀알들까지 골라내다 ‘이걸 이야기로 만들어야지.’라고 결심한 날이어서, 그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쌀알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캐릭터들의 성격부터 생각해 봤어요. 사람마다 성격이 각기 다르듯 쌀알들에게도 극단적인 성격부터 무던한 성향까지, 겹치지 않게 개성을 부여하고 싶었어요. 걱정하는 캐릭터, 의심하는 캐릭터, 무관심한 캐릭터 등 지금의 다양한 쌀알 캐릭터들이 완성되었어요. 모든 캐릭터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몇몇 캐릭터는 외적인 이미지와 성격이 연결되는 친구들도 있어요. 금 간 쌀알은 행동파예요. 그래서 여기저기 깨진 곳이 많은 쌀알이 되었어요. 울퉁불퉁 쌀알은 항상 온몸을 덜덜 떨면서 살아가요. 겁이 많은 성격을 온몸으로 보여 주는 캐릭터로 설정했어요.

쌀알 세상에 돌알이 발견된 후 반응이 가지각색입니다. 작가님은 어떤 쌀알과 비슷한가요?
저는 묵은 쌀알과 비슷한 것 같아요. 묵은 쌀알은 집돌이예요. 집 안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가장 비슷해요. 하지만 돌알이 발견되고 불량 쌀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묵은 쌀알도 목욕탕에 줄을 서요.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세상 이야기도 듣고, 겸사겸사 목욕도 하면서 자기는 불량이 아닐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싶어 하니까요. 도망자 신세로 쫓길 때, 중도 포기하고 싶어 하는 모습도 너무 제 마음 같아서 비슷한 캐릭터인 것 같아요. 금 간 쌀알 같은 친구가 꼭 필요한 캐릭터죠.

쌀 씻을 때 쓰는 다시마, 식초를 쌀탕의 입욕제로 바꾼 것처럼 재미난 표현이 많아요. 공간을 묘사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있나요? 
처음 더미 작업 때는 쌀알 세상에 배경이라고 할 게 없었어요. 텅텅 빈 공간이었는데, 편집부와 이야기하던 중 배경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면서 쌀알 세상의 배경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어요. 쌀과 관련된 뉴스나 다큐, 밥 맛있게 짓는 법 등 쌀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벼를 거두고 도정하고, 쌀을 부엌으로 들고 와서 불리고 밥을 짓는 등 쌀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곳을 연관지어 쌀알 세상을 조금씩 쌓아 올렸어요. 그중 쌀알 세상과 가장 많이 연결된 부분은 부엌이에요. 쌀을 씻고 밥을 지으면서 사용되는 부엌 도구들이 쌀알 세상에서는 쌀알들의 생활공간이 되어요. 밥그릇은 산이 되고 숟가락과 포크는 나무가 되기도 하고 스케이트보드가 되기도 하고요. 최대한 쌀과 밀접한 것들로 쌀알 세상을 구성하려고 했어요.



그림책에 유머러스한 장면이 많아요. ‘이 장면은 내가 봐도 웃기다.’라고 추천한다면?
모든 쌀알이 우르르 다 떨어지고, 할머니가 못마땅한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장면이요. 할머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쌀알들의 상황이 고소하기도 한 장면 같아요. 쌀알들 입장에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상황일 테지만, 보는 제 입장에서는 ‘이놈들, 서로 추방하다가 잘 걸렸다!’ 싶은 장면이에요.



작가님에게 불량 쌀알이란?
불량 쌀알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누군가가 불량 쌀알일 수 있고, 저도 누군가에게 불량 쌀알 같은 존재도 될 수도 있고요. 불량의 기준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내일은 불량이 될 수 있어요. 이야기 속에서는 작아서 불량으로 의심받고 물에 불어 커져서 추방당하고, 눈에 걸리는 모든 흠집은 불량이 되죠. 하지만 모두가 쌀알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경찰차의 등장이 이야기에 긴장감을 줘요. 잘못된 소문이 재난같이 퍼지는 장면이 연상되고요.
안전 재난 문자가 오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이상 기후로 폭염이나 호우주의보 관련 안전재난 문자가 많이 왔어요. ‘그냥 어제보다 조금 더 더운 것 같기도 한데….’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폭염주의보 발효 중’이라는 문구를 보면 긴장감이 들어요. 알고 있지만 한 번 더 공식적으로 확인받는 것 같아서 별걱정이 없다가도 경각심을 가지게 돼요. 상황이나 분위기가 주는 불안도 있지만 단어로 명확하게 짚어 줄 때 느끼는 긴장감도 큰 것 같아요.

만화도 그리고, 영상도 만들고 재주가 많으신 것 같아요. 작업 안 할 때는 주로 뭐 하세요?
그때그때 다르지만 최근에는 유튜브로 세계 일주 중입니다. 여행 유튜브를 보며 대리 만족하고 있어요. 베트남 바구니 배를 타고 있다가, 5분 뒤에 멕시코에 가 있기도 합니다. 원하는 나라를 입맛대로 옮겨 다니며 여행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여권은 새것처럼 깨끗합니다. (웃음)

그림책에서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돌알 캐릭터인 것 같아요. 쌀알들은 모양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본질적으로 쌀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그런데 돌알은 아예 다른 존재이다 보니, 돌알이 쌀알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쌀알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시련과 노력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눈길이 가고 안쓰럽지만 가장 많은 응원을 보내고 싶은 캐릭터인 것 같아요.



표지 그림에 특별한 의미를 담았다고 들었어요. 
표지는 본문 이야기 이후의 세상을 담았어요. 쌀알만의 세상이 아닌 쌀알과 돌알이 함께 어울리는 세상이 된 거죠. 본문에서 추방당하고 추방시키던 쌀알들도 모두 새로운 삶을 살고 있어요. 집 안에서 지내는 게 최고로 행복한 묵은 쌀알은 왕겨 쌀알과 캠핑을 다니고요. 미용실 인턴 쌀알은 부원장 쌀알과 즐겁게 밥그릇 산을 등반하고, 돌알은 쌀알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요. 하지만 여전히 돌알을 보며 수군거리고 불량을 추방하자는 목소리를 내는 쌀알들도 존재해요. 큰 사건을 겪으면서 좋은 방향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거짓말처럼 완전히 달라질 수는 없는 현실도 슬쩍 끼워 넣었어요.

다음 작업 계획도 들려주세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움직이지 않는 꽃과 풀잎들이 곤충들이 운영하는 호텔로 직접 찾아와 ‘호캉스’를 즐기는 여행 이야기를 작업할 예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