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발표

제1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지금 여기, 아모르」

심사는 오정희(소설가), 김지은(문학평론가), 이송현(소설가, 제9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자), 탁경은(소설가, 제14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자) 선생님이 고생해 주셨습니다.

당선자에게는 개별 통보하였고, 작품은 2020년 8월 사계절1318문고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사계절문학상에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18회 사계절문학상 본심 심사평 


제18회 사계절문학상 본심에서는 총 여섯 편의 작품을 논의하였다. 학교와 집, 학원을 오가던 청소년 인물들의 동선이 과감하게 확장되고 공간적 배경이 다양해진 것이 특징이었다. 청소년이 비정규직으로서 노동하는 현장이 등장하기도 하고 몰래 배에 숨어 들어가서 국경을 건너가는 것 같은 상당한 무리가 따를 만한 모험의 설정도 작품에 활용되었다. 국내외 여러 도시가 작품들에서 언급되었고 인물들이 그 낯선 공간을 도전적으로 활용하는 경향도 높아졌다. 청소년들을 둘러싼 온오프라인의 세계가 넓어지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청소년들의 삶은 대부분 여전히 제한된 영역 안에 머물러 있지만 다양한 문화와 생활양식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응모된 작품 중에 퀴어 서사가 상당수 있었다. 그중 몇 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라왔다. 관계의 새로운 경향으로만 다루는 것 같았던 과거의 응모작들에 비하면 이야기의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 있었다. 일반문학과 함께 청소년문학도 인물과 서사에 변화가 오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보나의 신분』은 주인공의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가 우연에 우연을 만나면서 이어지고 있어 이야기의 개연성 측면에서 독자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고 느껴졌다. 인물들은 저마다 상대방을 도구로 여기고 청소년은 매우 계산적인 사람들로 그려진다. 연정의 성폭력 피해사실을 다루는 부분은 성인지 감수성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특히 피해자에 대한 부당한 편견이 자극적인 표현과 함께 드러나 있었다. 입시와 관련된 몇몇 부분에서 현재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학교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도 걸렸다.

『기억은 너부터 셀게』는 트럼프를 섞듯이 여러 기억 속의 사건들을 다시 돌아보는 작품이다. 문학적이고 섬세한 접근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배열이 특별한 의미로는 연결되지 않으면서 서사의 흐름을 끊는 데다 1인칭 서사의 장점보다는 한계가 더 많이 느껴져서 아쉬웠다. 대화가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심리의 궤적을 따라가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장편임에도 갑갑한 공간 안에서 이야기가 맴도는 것 같았다. 낱낱의 기억을 엮어 풍부한 상징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작가의 의욕은 높이 산다. 

『친구를 소개할게』는 서늘한 감각으로 공포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소설집이다. 설정이 앞서는 작품들 속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두 번째 에피소드인 ‘행운의 별’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상당한 구성의 힘이 느껴졌다. 그밖에도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단편들이었지만 이야기마다 마무리가 약하고 뒷부분에 실린 작품은 아직 좀 더 서사의 결을 정리해야 하는 글로 보였다. 작품 사이에 등장하는 소개의 말은 진지한 본 서사와 잘 어울리지 않는 불필요한 사족처럼 여겨졌다.  

『시속34킬로미터 소녀』는 육상선수인 여성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건강한 스포츠 서사로 나아갈 가능성이 보이는 작품이었다. 비둘기에 관한 설정도 초반부터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사건들은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고 인물이 그토록 멀리까지 힘겹게 이동해야 하는 근거가 미약하게 여겨졌다. 지금의 청소년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감수성이나 분위기들도 군데군데 옥의 티였다. 

『우리를 만나다』는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이 고심했던 작품이다. 청소년문학이 갖출 수 있는 예술성에 가까이 다가간 문체, 진실에 사려 깊게 다가가는 침착한 전개가 돋보였다. 특히 서사를 본격적 도입으로 이끄는 초반부의 설정은 독창적이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독자가 어렵게 퍼즐을 맞추어야 읽을 수 있는 대목이 많았고 그 부분에서 실체가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서사의 요소들도 있어서 그 점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이야기 속에 숨겨진 복선이나 비틀린 서사는 독자에게 관심과 재미를 안겨 주기도 하지만 독자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서사를 조금 더 간명하게 정리해 보시기를 바란다.

위의 작품들을 포함한 여섯 작품에 대한 종합적 논의를 거쳐 올해의 수상작으로는 『지금 여기, 아모르』를 선정하였다. 이 작품에는 무엇보다 생생한 청소년의 목소리가 있다. 사건은 매우 명쾌하고 문제는 새롭지만 오해의 거리를 남겨 두지 않고 과감하게 가까이에서 서술하는 작가의 스타일 덕분에 우리 곁에 있는 이야기처럼 여겨진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만큼 서로에게 우호적이고 각자의 시련을 지니고 있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환대의 느낌이 작위적이기보다는 이 음습한 세계에서 하나의 작은 이상향을 보여 주려는 작가의 판타지적 구상처럼 느껴진다. 작품의 중요한 배경이 런던인가 아닌가는 어쩌면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주인공들이 발견한 제3의 공간은 다정하고 든든하다. 조금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맑은 서사가 단지 해사함에 머무르지 않고 필연적인 아픔이나 골똘한 어둠을 머금었으면 하는 점이다. 그러면 인물들이 독자에게 좀 더 묵직하고 실체적인 존재로 다가설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심사위원들은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서사의 중량감을 줄이고 청소년들의 삶을 한껏 응원하고 싶었던 것이 작가의 방향일 수도 있다고 보았다. 특히 지금 우리 청소년들이 바라는 거침없는 단단함이 작품 안에 있다고 여겨져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지금 여기, 아모르』의 수상을 축하드리며 응모해 주신 모든 분의 노고와 열정에 감사드린다. 오늘날 청소년소설의 독자가 2000년 이후 출생한 사람들임을 기억하면서 그들에게 다가올 다음 세대의 서사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나갔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낯선 혹은 자연스러운 변화들은 우리가 멈추지 않고 이야기 나누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여운이 긴 작품으로 청소년문학의 장에서 다시 만나 뵐 수 있기를 바란다.    



 

오정희·김지은·이송현·탁경은 (제18회 사계절문학상 심사위원)
 -대표 집필 김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