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를 길들이다, 세상을 길들이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다룬 문학 작품은 많다. 주로 인간과 가까운 동물인 개나 말 등을 등장시켜 인간과 소통하며 색다른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내 청춘, 시속370㎞』도 우연히 매잡이를 하게 된 소년 ‘동준’과 보라매 ‘보로’사이에 일어난 사연을 담은 청소년소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인간과 동물의 색다른 우정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소년과 매는 결국 동일한 존재를 은유하기 때문이다. 즉 인응일체(人鷹一體)다. 바이크를 타고 세상 끝까지 달리고 싶은 외로운 소년과 하늘 높이 멀리 나는 재주 하나만 가진 보라매 보로는 야성적 본성이 살아 숨 쉬는, 아직 길들지 않은 어리고 약한 존재들이란 점에서 서로를 몹시 닮았다.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눈매와 속도감을 지닌 날짐승이 소년에게 서서히 길드는데 그것은 소년이 보라매를 훈련시키며 세상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들은 서로를 길들이며 비로소 각자 세상 속에서 날개를 제대로 펴 마음껏 날고 다시 착륙하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여기에 가족을 돌보지 않고 오래도록 매잡이에 몰두한 소년의 아버지가 개입된다. 매를 길들이고 다시 떠나 보내는 일을 하는 아버지는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무책임한 가장에 무능력한 어른일 뿐이다. 그러나 바이크를 사고 싶은 욕심에 용돈벌이로 아버지의 매잡이 조수 노릇을 하게 된 아들은 그제야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아버지의 모든 행동을 수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여전히 아버지의 고집은 불편하며 자신만을 아는 이기주의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다만 어른이나 가장이라는 계급장을 뗀 부족한 인간이 일회의 삶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 뜨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아들은 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매와 소년이 함께하는 자리에 배경처럼 서서 아버지는 매와 소년을 길들이고 있다.
 
작품은 소년과 매, 아버지의 세 축을 돌며 세상에서 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소설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남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터프함이나 매잡이라는 강한 소재를 치열하게 묘사하는 까닭에도 있지만 그보다는 세상을 에둘러 살기보다는 정면으로 승부하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아늑한 곳, 따듯한 곳을 찾아 조심조심 머물러 있으라는 세속적 처세가 아닌 내가 가고 싶은 곳이 험한 곳이라면, 그곳을 내 땅으로 삼아 높이 비행하라는 외침이다. 세상에 길들고 싶지 않으면 세상을 길들이는 것이 어쩌면 가장 멋지게 사는 방법이다.
 
세상을 길들이는 법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성급한 몸짓이 아니라 차분한 기다림이다. 소년과 매가 서로에게 길드는 과정을 보면 언뜻 『어린 왕자』에서 왕자와 여우의 대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너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자 여우는 ‘인내심’이라고 답한다. 인내심이란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즉 시간을 길들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 존재들은 자신이 꿈꾸는 일이 현실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매를 키우며 소년은 비로소 기다림이야말로 멋지게 하늘을 날기 위한 전제 조건임을 깨닫는다. 매를 불러 왼팔에 앉히기까지 얼마나 조바심에 찬 순간순간을 보내야 하는지, 매사냥에서 매를 하늘로 날려 보내고 무사히 매가 먹이를 잡을 때까지 추운 겨울의 한복판에 얼마나 오래 서 있어야 하는지를 깨닫는 순간 소년은 성큼 어른이 된다. 소년이 그 동안 모은 용돈으로 바이크를 사러 갔다가 결국 사지 않고 돌아서는 장면은 단순히 이제 자신에게 바이크가 필요 없어졌음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그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소년이 어려운 집안 사정을 이해하게 된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소년의 날개가 이미 돋아났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년의 날개는 매를 길들이는 동안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며 서서히 자라났다. 따라서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선 가장 정통적이고 근본적인 성숙을 말하고자 한다.
 
한편 이 소설이 진지하게 무게 잡는 이야기인가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아버지와의 반목, 어머니의 힘겨운 삶을 피해 뛰쳐나가고 싶은 소년을 묶어 주는 든든한 친구 양꿍의 속사연과 그와 치고받는 다양한 우정의 퍼레이드, 까칠한 여자 친구 나예리와의 러브 라인은 작품 속 큰 재밋거리다. 요즘 청소년소설에서 나타나는 억지웃음이 아닌 제대로 된 본격 문학이라면 인물과 사건의 결합으로 응당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유머 또한 작품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작품의 결말에서 소년과 아버지는 매를 길들였다 떠나보낸다. 마찬가지로 작품은 소년들에게 넓은 세상 속으로 나아가라 외친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 나가더라도 좋은 일만 만나 위험을 요리조리 피해 가리라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믿음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혹시 위험을 만나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힘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세상이 아닌 존재에 대한 넉넉한 신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내가 읽은 청소년소설 중에 청소년을 가장 깊이 믿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글·오세란 (문학평론가)
 
 
1318북리뷰 201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