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작가 취재 노트2

② 슬픔을 견디기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취재 노트 2
찬란한 슬픔, 요코하마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이대로 더는 못 쓸 것 같았다. 2015년 3월, 나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일본 요코하마로 떠났다. 요코하마가 실제 무대로 많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그곳은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 준페이의 고향이다. 무엇보다 항구에 있다는 여객선을 보고 싶었다. 당연히 장소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걸 더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공항에 내려 리무진과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일본 지하철을 갈아타고 호텔이 있는 동네에 도착했다. 역 밖으로 나가자 바람이 몰아닥쳤다. 항구 근처이니 바닷바람일 것이다. 준페이의 옷자락을 날리던 바람이기도 하다. 호텔에 도착해 가방을 들여놓고 밖으로 나갔다. 도로에 핀 홍매화가 빨간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여행 철이 아니라 그런지 부둣가인데도 조용하고 한적했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비는 그쳤지만 먹구름이 낀 하늘과 세찬 바람 때문에 을씨년스럽고 추웠다. 집을 향해 발걸음을 서두르는 사람들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 있노라니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라도 된 양 쓸쓸함이 밀려왔다. 며칠이나 됐다고.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라 준페이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내 안의 준페이가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요코하마는 대지진을 겪은 도시다. 1923년 9월 1일, 도쿄와 지바, 요코하마 등 일본 동부 지역 도시들은 지진으로 인한 화염에 휩싸였다. 지진과 화재로 사망자와 실종자가 14만 명에 이르렀고 수백만 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발생했다. 국사 시간에 배웠듯이 간토 대지진은 일본만의 아픈 역사가 아니다. 일본 당국은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일본인을 죽인다’거나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사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조선인을 이용한 것이다. 분노한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만들어 아무 죄 없는 6,000명 이상의 조선인과 수백 명의 중국인을 처참하게 학살했다. 소설 속 준페이는 어린 나이에 그 참상을 모두 지켜 본 인물이다.

준페이는 영원히 받쳐 주리라 믿었던 땅이 순식간에 갈라져 지옥 구덩이 같은 아가리를 벌린 채 사람과 가축, 집과 나무 들을 집어삼키는 것을 보았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현실 같지 않았다. 준페이는 본능적으로 불길과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해들을 헤치며 뛰었다. 여섯 식구 중에서 네 식구가 죽고 어머니와 준페이, 둘만 남았다.
(… …)
아이들은 떼 지어 자경단원을 따라다녔다. 준페이는 부둣가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던 아이의 시체를 보았다. 조센징이라고 따돌린 적이 더 많았지만 가끔은 어울려 놀기도 했다. 그 아이의 배에서 창자가 뭉글뭉글 쏟아지는 것을 보며 준페이는 헛구역질을 해 댔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1』, 「떠나는 사람들 1」 중에서
20세기 초반 요코하마 항구

 

 

히카와마루 일등실 내부

뒤척이며 첫 밤을 보낸 뒤 다음날 제일 먼저 항구에 정박해 있는 호화 여객선 히카와마루(永川丸)를 보러 갔다. 1930년대부터 태평양을 오가며 승객을 실어 나르던 배를 그대로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비행기가 상용화되기 전인 20세기 중반까지 여객선은 주요 운송 수단이었다. 당시 강대국의 선박회사들은 경쟁하듯 더 호화롭고 빠른 여객선을 만들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교통수단도 당연히 배였으므로 여객선의 내부를 잘 알아야 했다.
어제와 달리 환한 햇살 아래 떠 있는 여객선은 금방이라도 출항할 것 같았다. 배에 오르자 곧 바다로 나설 것처럼 갈매기 울음 섞인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준페이는 여전히 부둣가를 서성거렸다.

준페이는 2월 하순의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요코하마 부두에 서 있었다. 바람에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날리자 가까스로 눌러두었던 온갖 감정이 펄럭거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요코하마는 테라오 가족의 모든 것을 삼킨, 아비규환의 풍경으로 남은 곳이었다. 준페이의 기억을 비웃기라도 하듯 중심가는 더 화려한 신식 건물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지진의 참상과 상처는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의 가슴에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1』, 「테라오 히카리」 중에서

준페이는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봐 준 뒤에야 비로소 부둣가를 떠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물들을 따라다니는 동안 배는 어느덧 너른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뒤 하루 종일 도시의 옛 모습과 준페이 가족이 살았을 장소를 찾아다녔다. 해 질 녘 편의점에서 저녁거리를 사들고 호텔로 들어갔다. 그동네 사람들이 대부분인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게 왠지 처량 맞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다음 날 일기예보나 볼까 하고 텔레비전을 켰더니 동일본 대지진 4주기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4년 전 오늘 일이었던 것이다. 일본어를 몰라도 피해자들의 아직 끝나지 않은 고통과 슬픔이 느껴졌다. 그 옛날 대지진으로 폐허가 됐던 곳에서 접하는 소식은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했다.
뉴스 말미에 아나운서가 분위기를 바꾸어 매화와 벚꽃 개화 시기, 꽃으로 유명한 장소 등을 소개했다. 그 또한 주요 뉴스 중의 하나였다. 이미 만개한 매화꽃밭 아래 선 사람들의 표정은 꽃보다 환했다. 그 모습에 피해자들의 고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느닷없는 재앙에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사람들은 매화가 필 때면 그날의 슬픔과 아픔부터 떠오를 것이다. 그러면 환한 봄 햇살 아래서도 추울 것이다.
수많은 넋을 차가운 바다에 남겨 둔 우리도 마찬가지다. 봄마다 우리는 아프고 또 아플 것이다. 꽃이 환할수록, 햇살이 눈부실수록 차오르는 슬픔을 어쩌지 못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그들이 못다 한 삶까지 살아야만 한다. 산다는 건 찬란한 슬픔을 견디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선 참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테고, 혹독한 겨울을 난 식물들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