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에 울리는 백정영웅의 외침 : 김난희

제2회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독서감상문대회
대학일반부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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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 과연 이 겨울을 넘길 수 있을까 하는 황소바람이 바늘구멍 같은 마음에 불어와 떨고 있을 즈음, 궁여지책으 로 『임꺽정』첫권을 잡게 되었다. 끝까지 독파하리라는 자신감도 없으면서 무작정 이어 내려가다보니, 어느 새 마음과 시간과 더불어 생각이 정리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없었고 , 상황인식은 어느덧 조선시대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조선 전 기에서 후기에로의 혼란시, 갈 바 모르는 민초들의 고난극복, 그리고 저항의 면면을 통해 현다사가 가야할 방향을 나침 반의 바늘과 같이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긍정적인 세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고 더불어 아쉬운 점 두 가지를 느꼈는데, 이제부터는 부족 하나마 그 점들을 하나하나 써 내려가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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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누구누구일까? 그리고 갈 등을 일으키는 상대적 인물은 누구일까?이런 TV 드라마적 사고로 읽기 시작했는데, 그 기다림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1권에서는 '봉단편'이라, 제목이기도 한 '임꺽정'의 등장은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 이다. 이 점 또한 특징적인 전개방식이지만 좀더 두드러진 점 세가지가 있으니, 그 중 첫째 는 '갈등구조의 극대화'라는 측면에서 발견된다. '갈등구조의 극대화'란, 소설에서는 빠지면 안 될 주요한 특징으로서 일반적으로는 인물들간의 갈 등 을 부각시키게 마련인데, 그에 반해 이 작품은 시대적 요구에 의해서 사회계층간의 갈등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즉 지배 층과 피지배층의 충돌상황을 '임꺽정'으로 대표지어지는 천(서)민층과 저항의 대상인 지배층, 더 나아가서는 그 시대 사회 체제를 부정하는 갈등 구조를 살린 것이다. 둘째 , 당시 민초들의 진솔한 삶을 소박한 말씨와 속담을 통해 나타내는 데 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청소년들에게 시대적 거리감을 떠나 민족의식 까지도 심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 하면, 이는 중등교육에 매우 효과적이며, 그 활용방안으로는 국어와 국사 두 과목의 통합교과적 교육자료로 활용가능하 다는 의견이다. 보기를 들자면 먼저, 흥미로운 속담으로 ''방귀가 잦으면 똥싸기 쉽다.'를 제시하고 싶다. 더 이상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명확한 의미전달과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하는 지혜를 엿볼수 있었다. 그리고 어휘로는 '결찌'라는 낱말 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결지' 사전적 의미는 명사로서 '어찌어찌 하여 연분이 닿는 먼 친척'이다. 현대에서 먼 친척이란 타인과 별다른 점이 없기 때문에 이런 말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러한 이기적인 사회변화 때문에 '결찌'와 같은 어휘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사전적 의미 이상일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도 절묘하다. 시대적 감각을 느 낄 수 있기는 이 점이 으뜸이라 생각된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표현을 본문에서는 '족히 보리밥 한 솥 지었을 즈 음'이라고 했다. 과연 그 시간은 시계바늘로 따져보면 얼마나 될까. 작품의 위대함 안에 이러한 잔잔한 흥미를 주니 이 또한 작가의 역량이 높다 아니할 수 없다. 셋째 , 『임꺽정』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역사를 저지르는 영웅호걸로서의 임꺽정인가? 아니면 역사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일반 백성으로서의 임꺽정인가? 아니면 역사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일반 백성으로서의 임꺽정인가? 이점은 바로 책장이 넘어가고 책들이 권수를 더할 때 비로소 알수 있었다. 임꺽정은 둘 중 어느 것에만 한 정되지 않고 바로 그 둘 다라는 것이다. 이 점은 칠두령이 그렇고 청석골이 그러할 수없다. 일반 백성으로서 저지르 고 영웅호걸로써 문제해결에 도전하는 그 존재자체가 상징하는 바는 바로 '백정영웅'으로 표현해야 되지 않을까? 지배구 조에서는 시혜적 사고가 전부였고 그 은혜베품을 간절히 바라며 절을 해야 했던 상황에서, 생년월일도 알지 못하는 백정 신분의 임꺽정이 영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시대가 혼탁했고 사람과 제도가 맑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억사가 기계적으로 반복되거나 비슷한 상황이라 하여 항상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20세기 말에 처해 있고 여러 모로 1세기 전과 비슷한 상황인 현대에도 어찌될지 장담 못 하는 아픔이기에, 이 자리에서 우리는 그 맑지 못함을, 그리고 시혜적 사고를 자정해야 하리라. 여기에 역사의 교훈이 있고 여기에 임꺽정의 외침이 있지 않겠는가. 이제까지는 작품의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보았는데, 앞으로는 짧은 소견이나마 독자로서 아쉽게 느꼈던 점 두 가지를 쓰 기로 하겠다. 첫째 는 의식의 한계성이다. 조선 중기 제도적 압박 속에서 의연히 사회체제를 부정했던 청석골의 칠두령들, 그러나 특 히 으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의로운 마음으로 일어선 청석골의 칠두령들에게서도 별무가관인 점이 발견 되었기 때문이다. 졸개>두목>두령>임꺽정으로 이어지는 계층적인 사회구조는 일종의 허탈감마저 가져다주었 다. 뚜렸한 목적의식과 이념하에서 뭉친 것도 아니며 다만 양반들에 대한 울분과 사회로부터 내쫓긴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적 한계는 용납해야 한다는 하는 주장은 과연 얼마나 많은 설득력을 갖는 것일까? 또한 빼앗기고 억울해서 일어선 자들이 자신들보다 더 힘없는 사람들의 재물을 탈취하는 모습은 임꺽정이 과연 의적이었던가? 하는 의문마저 갖 게 한다. 이 문제 때문에 한동안 고심에 빠져서 힘들었던 것만큼,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반박할 수 있는 설명 을 듣고 싶은 심정 간절하다. 둘째 로는 '결말의 미완성'이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하나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미완이며, 또 하 나는 문학적 절필로서의 미완을 말하고 싶다. 전자는 '임꺽정의 난'이 그 시대 모순에 무슨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들의 주장은 조선사회에 어느 정도나 반영되었는가를 뜻한다. 역사적 결말을 보자면 결국 이들은 관군에 의해 처참히 진압되 었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서림의 투항은 더욱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이는 조선사회의 붕괴조짐을 보여주었다는 위로에 그치기 때문에 심히 안타까움을 금할 수밖에 없다. 후자의 문학적 절필로서의 미완이란, 내용전개에 있어서 작가의 손으 로 작품에 마침표를 찍지 못한 것을 뜻한다. 마치 유년시절에, 흔들리지만 뽐지 못했던 앞니의 느낌이랄까. 한글의 고갱 이를 '임꺽정'을 통해 간직했으며 그를 통해 일제폭력에 저항했던 벽초 선생의 붓이 그들에 의해서 꺽이고 만 것을 민족 독립의 길이 더욱 험난해짐을 뜻하기에 가슴아프고 천재적 작가의 문학성이 중단됨에 애석할 따름이다. 후대의 다른 작 가들이 미완성의 『임꺽정』을 보완하여 쓴 작품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 벽초 선생의 칼날 같은 사고의 죽세공품과 같은 치밀한 표현이 드러난 글을 만나지 못한 것은 다만 개인적인 아쉬움이라기보다는 우리 문학사의 큰 손실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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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하자면, 『임꺽정』은 단순히 벽초 선생의 미완에 그친 작품이 아니라 역사적 미완을 상기하여 이 시대에 숙제를 던 져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의미하는 바는 민족의 형대사에서 볼 수 있었던 여러 갈래의 길, 즉 민족이 당면한 고 난에 대처하는 길들 중에서 벽초 홍명희 선생은 가장 고민하고 번민했으며 또한 그 해답을 찾고자 노랙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동시대에 월탄 박종화 선생은 세종대왕이라는 작품을 통해 치자의 논리를 앞세우기도 했으나, 벽초 홍명희 선생은 백정 신분의 『임꺽정』을 집필한 것이다. 이 과제는 창세기 1장 1절처럼 1997년에도 진행중인고로 단순한 문학작품의 미완이 아닌 시대의 미완성이며, 그런 의미에서 벽초 선생의 『임꺽정』은 우리에게 인간존중의 이념을 실현 하는 길을 제시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시계추와 같은 판단과 행동을 요구하는 강렬한 눈빛을 『임꺽정』이라는 대작과 선생의 삶을 통해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태평양 위의 섬 하나 같은 깨달음이지만 어리석은 민중의 한 사람으로 서 이나마 그리고 이토록 진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신 선생께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민족의 구성원으로써 섬이 아닌 대륙에로의 길을 표표히 가야 하리라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