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육이 감당하지 않는 어린이 노동교육의 결정판

2011년 12월 말,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실습 나온 고등학생 김모 군이 뇌출혈로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김 군은 주야간 맞교대와 잔업, 특근을 했고, 근로기준법상 기준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인 시대에 주당 68~72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했다. 기아차 노조 및 관계자들은 이러한 무리한 노동에 따른 과로가 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추정했다. 사건 뒤 1년이 거의 다 되가는 현재까지도 김 군은 의식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석에 누워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원인들 중 하나는, 한국 제도권 교육에서는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노동인권 교육을 전혀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청소년들은 노동자가 되고나서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거의 없다.

학교에서 노동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지만 이에 반대하는 보수단체의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우선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거의 모든 선진국들에서는 학교 교육에서 노동교육을 철저하게 시행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에서 모의단체교섭이 일상화된 특별활동으로 자리 잡혀 있어, 1년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모의노사교섭을 진행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단체교섭 과정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항의문건·펼침막·벽보 등을 제작하고, 노조 간부가 언론매체와 인터뷰하고, 연설문을 작성하는 것 등에 대해서까지 다루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와 밀접한 청소년 실업에 관한 내용을 29쪽에 걸쳐 설명한 중등 교과서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의 사회 과목에서 ‘단체교섭의 전략과 전술’에 관한 내용을 전체 교과서의 3분의 1 정도의 비중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노동자 편향적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시장의 한계’도 다루지만 ‘공권력 개입의 전제 조건’도 다룬다. 카를 마르크스, 존 메이넌드 케인스, 칼 폴라니와 함께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슘페터 같은 자유주의 학자들의 경제사회 관점도 함께 소개한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노동자와 그 가족인 사회에서 일찍이 제도권 교육에서부터 노동조건이 노동자의 삶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알아보고, 노동문제를 둘러싼 자본과 노동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교육을 받고 노동자가 되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 이러한 교육을 받고 경영자가 되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노동문제를 이해하는 수준은 같을 수가 없다.

2012년 3월, 언론사 <오마이뉴스>가 2012년 1학기 시중에 출판된 사회교과목 교과서 62권을 모두 조사해 한국 노동교육의 현 주소를 확인한 결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간단하게라도 언급한 교과서는 단 5권뿐이었다. 통계청의 발표로도 600만 명이 넘고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 1000만 명 시대”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중고등 학생들의 아르바이트 등 청소년 노동은 대부분 비정규 형태이고, 신규 취업자의 80%가 비정규직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아무 지식도 없이 노동시장에 내몰린다.
 
 

제도권 교육에서 전혀 감당하지 않고 있는 노동교육을 대체하기 위한 각 분야의 노력들이 그동안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도됐다.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는 그동안 축적된 비정규직 분야 어린이 노동교육의 결정판이다.
막연히 ‘비정규직’이라고만 이야기할 뿐, 많은 노동문제 전문가들조차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 형태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서는 그 실체를 잘 모른다. 방대한 문서 자료를 통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이 책은 생생한 목소리로 전해준다.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의 첫 장 “운동회가 열렸다!”를 넘기면서부터 오래 전 우리 집 일이 생각나 마음이 찡했다. 우리 집 아들아이가 초등학교 3-4학년쯤이었을 때, 운동회날 일기의 한 대목이다.
 
 
운동회 날이다. 아침에 선생님이 “집에서 식구들이 온 사람은 운동장에 나가서 점심을 먹고, 아무도 안 온 사람은 그냥 교실에서 먹어라”고 말씀하셨다.
점심시간에 나는 교실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밥을 먹는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밥을 다 먹고 도시락을 가방에 집어넣으면서 나는 울었다.
교실에 혼자 앉아 있는데 최지훈이 자기가 먹던 도시락을 들고 들어오더니 나랑 같이 먹자고 했다.
저녁에 집에 와서 엄마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데 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나는 하품하는 시늉을 하며 “아, 졸리다. 왜 이렇게 졸리지?”라고 말했다. 엄마도 내 말을 듣고 “마음이 참 안 좋다”고 하셨다.
나는 최지훈이 고맙다.
 
 
맞벌이 부부는 아이들을 키우다가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때 우리 부부는 가까운 이웃 학부모에게 “점심시간에 우리 집 아이도 좀 챙겨달라”는 간단한 부탁조차 하지 못했던 부모의 무심함에 대해 오랫동안 자책하며 반성했다. 맞벌이 부부만이 아니라, 부부가 모두 비정규직 활동가이거나 어느 한 쪽이 감옥에 가 있는 부모의 아이들도 이런 일을 숱하게 겪으며 자란다.
 

비정규직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간병인, 방송작가, 시간강사, 오페라합창단원, 할인마트 노동자, 편의점 알바, 화물노동자, 편집디자이너… 등의 무수한 형태로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일한다. 이 책은 이처럼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 속에 스며있는 아픔들을 일기, 만화, 동화, 신문, 사전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백과사전처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어둡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매우 섬세한 시선으로 펼쳐 보인다. 어린이들의 정서에 맞게 접근하기 위한 작가들이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 흔적이 보여 애틋하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이렇게 다양한 형식으로, 그것도 19명의 작가들이 호흡을 맞춰 만든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작가들이 비정규직의 이야기를 이토록 아름답게 그린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슴 속에 품기를 바란 것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 책의 인세 전액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에 기부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싸우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섬세하게 그리는 작업을 이 책의 다음 작업으로 기대한다. 그 작업에는 나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글 - 하종강(성공회대학교 노동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