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통과하다 -『페스트』를 읽고

죽음을 통과하다 -『페스트』를 읽고

이 책에서의 ‘페스트’는 무엇을 상징할까. 카뮈가 7년간 심혈을 기울여 썼던 작품인 만큼,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풍부한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리유라는 의사이다. 그는 페스트가 걸린 환자들을 격리하고 치료한다. 그는 신을 믿지 않지만 이미 창조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며 투쟁함으로써 나름의 진리의 길을 걸어간다. 그는 당장의 환자들을 고쳐주는 일이 가장 긴급하다고 판단하기에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페스트를 퇴치하는 일에 앞장선다. 이 책에서는 리유가 서술자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페스트는 피를 토하고 죽는 쥐의 출몰로 시작된다. 리유는 심상찮은 기미를 느낀다. 곧 사상자는 늘어나고 도시는 폐쇄된다. 코타르라는 사람의 자살 기도를 통해 리유는 그와 관계를 맺게 된다. 코타르는 범죄자이다. 처지를 비관해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그는 다시 살아나자 그 전의 자신의 삶과는 다른, 이웃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페스트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자신에 대한 수사가 중단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하여 그에게 페스트의 종말은 두려움이다.
코타르의 자살 기도를 리유에게 알리는 그랑 또한 주요한 등장인물이다. 그는 관청의 말단 직원으로 순박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가 애정을 쏟는 유일한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그는 글을 씀으로서 인생의 의미를 완성하려 한다. 후에 민간 봉사대가 조직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글 쓰는 시간을 희생해가며 기꺼이 큰 역할을 감당한다.
페스트는 더욱 극성을 부린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페스트에 대해 곧 지나갈 거라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지만 도시가 폐쇄되자 혼란에 빠진다.
페스트가 창궐하는 도시를 냉철히 기록하는 이는 타루이다. 그는 페스트를 몰아내기 위해 민간 봉사대를 결성하는 행동파이다. 그는 페스트를 퇴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판사인 아버지가 피고인에게 기계적으로 사형을 선고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집을 나왔다. 그는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모든 걸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그는 어느 경우에도 희생자들 편에 서서 그 피해를 되도록 줄이는 일에 투신한다.
이 글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는 이는 신부일 것이다. 페스트가 처음 발생할 때에 신부는 페스트는 인간의 죄에 내려진 신의 벌이라고 설파한다. 사람들은 그의 진단에 절망한다. 하지만 민간 봉사대에 참여하고 어린 아이가 페스트에 감염되어 천천히,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것을 보고 그의 생각에는 변화가 생긴다. 인간은 고통을 감수하고 그 속에 몰입되어야 한다, 기독교인은 신의 성스러운 의지에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 고통을 외면해서도 안 되고 그 고통에 함몰되어서도 안 된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면서라도 전진을 계속해야만 하고 선을 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 설교한다.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요구야말로 기독교인이 받는 이득이자 덕성이라는 것이다.
페스트는 날씨가 선선해지자 서서히 물러간다. 도시는 다시 개방되고 사람들은 환호하며 헤어진 연인들, 가족들과 재회한다. 하지만 리유는 이 페스트균은 사라진 게 아니라 어디서고 다시 등장할 틈을 노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페스트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은 1947년 2차 대전 이후에 발표되었다. 그는 전쟁을 겪으며 7년간의 창작 기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삶을 통해 인권 옹호, 자유 수호 등을 외쳤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페스트는 전체주의의 싹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꼭 전체주의가 아니더라도 반 휴머니즘적인 요소에 대한 경계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그 대응책으로 인간의 유대를 제시한다. 이 작품에서 사람들은 서로 연대한다. 고통을 외면하거나 자기 폐쇄의 길로 가지 않는다. 그는 사르트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르트르의 주인공은 위대함을 딛고 근원적인 절망에서 일어서려고는 하지 않고 인간의 그 혐오스러운 면만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고뇌가 지닌 참된 의미를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실존주의의 끝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無를 뛰어 넘어 인간성의 회복을 주창했고, 그 안에서 자신의 세계를 창조했던 위대한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