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작가 취재 노트4

④ 정말 말 그대로, 괜찮지 않아!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취재 노트 4
That’s not ok! 앤젤 섬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지만 입국에 실패한 채령과 준페이는 조사를 받기 위해 앤젤 섬에 있는 이민국으로 끌려간다. 뉴욕의 엘리스 섬이 미국 동부의 관문이었다면 서부의 관문인 앤젤 섬은 주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이용한 곳이다. 노동자로 받아들인 중국인들과 자국민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자 미국은 1882년 ‘중국인 이민자 추방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앤젤 섬에 이민국과 더불어 이민자 수용소를 건설해 수많은 중국인들을 가두었다.




 
뉴욕 엘리스 섬의 이민국 내부 | 샌프란시스코 앤젤 섬의 이민자 수용소 박물관

 

1941년에 화재가 나 폐쇄될 때까지 중국, 일본, 조선 사람들은 몇 주에서 몇 달 씩 수용소에 갇힌 채 인간 이하의 대우 속에서 조사를 받곤 했다. 건강상 문제만 없으면 입국이 허락됐던 유럽 이민자들과 비교하면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 그곳을 복원해 박물관으로 만들었다니, 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전 보고 온 엘리스 섬의 이민국과도 비교해 보고 싶었다.
앤젤 섬은 샌프란시스코 부두에서 배를 타고 3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내가 갔을 때는 오전 9시 45분에 출발해서 오후 2시 50분에 돌아오는 배편밖에 없었다. 오래전 국립공원으로 바뀐 섬은 이제 역사적 장소라기보다 캠핑장, 하이킹, 자전거 코스 등 휴양지로 더 명성이 높았다.
매표소에 은발의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표를 달라고 하자 설명이 길었는데 내 귀에는 배 시간과 ‘푸드’, ‘워터’ 같은 단어만 들렸다. 점심은 섬에 있다는 레스토랑에서 먹을 계획이었다. 미리 음식을 주문하라는 건가? 뭔지 모르겠지만 뒷줄이 늘어나고 있어 “That’s ok.” 했다. 그런데 판매원 할머니가 엄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That’s not ok!”
내가 괜찮다는데, 안 괜찮다니. 당황한 내게 할머니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왔다. 대답하자 휴대폰을 꺼내 들고 무언가를 한 자, 한 자 치기 시작했다. 외국인이라 배 타는 절차가 복잡한가? 출발 시간이 멀지 않았다. ‘빨리빨리’에 길들여지고 주눅이 몸에 밴 나는 뒷사람들이 신경 쓰여 안절부절못했다.
할머니가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세상에, 번역기를 돌린 듯 한글로 ‘앤젤 섬에 음식 파는 곳이 없다. 그냥 가면 굶는다. 길 건너 마트에 가서 음식을 사 가’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땡큐 쏘 마치”를 연발하곤 마트로 달려가 샌드위치와 물, 커피를 샀다.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가방에 넣어 가지고 나온 바나나와 오렌지 한 개로 점심을 때울 뻔했다. 아침도 안 먹었는데…….
허둥지둥 올라탄 배에는 엠티 가는 듯한 사람들, 현장학습 가는 분위기의 초등학생들, 연인이나 친구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해서 30명쯤 됐다. 혼자인 사람도, 한국인도 나뿐이었다. 배가 출발하고 샌프란시스코가 멀어지자 채령과 준페이의 마음이 저절로 느껴졌다. 어딘지 모를 곳으로 끌려가며 얼마나 두려웠을까. 배는 그 시절 코스프레라도 하는 양 시커먼 연기를 뿜었다.
배에서 보이는 앤젤 섬은 하이킹 코스로 적당한 높이의 산과 잔디밭으로 가꿔 놓은 산자락, 그리고 해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키 큰 야자수와 둥치 굵은 소나무가 서 있는 잔디밭 너머로 건물이 보였다. 이민자 수용소일 것이다. 배에서 사진을 찍은 뒤 제일 늦게 내려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잔디밭에 자리 잡은 엠티 팀 말고는 어디론가 다 사라졌다.
나는 섬에 온 목적대로 박물관부터 보기로 했다. 시간도 많으니 그 당시 동양인들이 겪었을 차별과 무시의 현장을 하나하나, 천천히 마음에 새기며 봐야지, 하고 부푼 마음으로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이민자 박물관 대신 방문자 센터라는 표지판이 달려 있는 건물엔 아무런 설명도 안내도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크고 낡은 건물이 수용소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하필이면 오늘이 문을 닫는 날인가? 아니면 주말만 문을 여는 건가? 그 정도로 찾는 사람이 없나?
궁금했지만 주위엔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만일 수용소를 보지 못한다면 이제 겨우 10시 10분인데 오후 3시까지 섬에 갇혀 있어야 한다. 그냥 하루를 날리는 거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검색해 볼 수도 없었다. 막막하고 답답한 채령의 심정이 돼 건물 주위를 빙빙 돌던 나는 일단 먹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탁자에 음식을 꺼내 놓곤 바다를 마주하고 앉아 브런치를 즐기기 시작했다. 음식은 조촐했지만 전망은 최상인 곳에 앉아 우아하게. 시간은 더욱 천천히 흘러갔다. 채령이 이곳에서 보냈던 시간도 그러했을 것이다.
마냥 앉아 있는 것도 지루해서 하이킹 코스가 있는 산으로 갔다. 강원도 어느 길 같은 산 중턱 도로에 봄 햇살이 쏟아져 내렸고 바다 위엔 요트가 떠가고 있었다. 고즈넉한 풍경과 여유를 만끽하다 산에서 내려왔다. 배 시간이 아직 두 시간 가까이 남아 있었지만 박물관이 오후부터 열릴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일찍 내려온 것이다.
올라갈 때와 다른 입구인 그곳에 섬 안내도 표지판이 서 있었다. 무심코 보던 내 입에서 미국 사람 뺨치는 “오 마이 갓”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민자 박물관은 닫혀 있던 건물이 아니라 섬의 북쪽에 따로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남쪽에 가까운 남서쪽이었고 배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 남았다. 왕복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라 가더라도 박물관 관람 시간은 30분가량이다. 그동안 지루하게 흘려보냈던 시간이 아깝다 못해 억울하기까지 했다. 건물 껍데기라도 보고 와야지 이대로 돌아간다면 화병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찬찬치 못한 성격을 탓하고 또 탓하며 다시 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헐레벌떡 박물관에 도착하니 마당엔 관람을 마친 초등학생들이 뛰놀고 있었다. 예상대로 수용소를 볼 시간은 30분도 남지 않았다. 나는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수용소가 박물관이었다. 표를 달라고 하자 직원이 배 시간이 다 돼 가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어왔다.
“That’s ok.”
나는 그의 손에서 표를 낚아채듯 받아들곤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여기 보러 왔는데 고작 30분이라니. 속상해 미치겠다고! 머물며 보고 싶은 장소와 자료들을 허겁지겁 지나치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댔다. 대강 봐도 초라한 시설과 열악한 환경에서 이민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민자 수용소 식당 내부 | 이민자 수용소 숙소 내부

 
산과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곳이었지만 그곳에 갇힌 사람들에겐 감옥이나 다를 바 없었다. 너른 방에 3층으로 된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3층에 누우면 어지러웠고, 아래층에 누우면 위층 침대가 내리누르는 것처럼 답답했다. 그마저도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나 신경을 긁었다. 이불은 냄새나고 꿉꿉해서 몸에 닿는 것조차 싫었다. 화장실과 세면장은 당연히 공동이었고, 식사 또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가회동 저택의 하인들도 그보다 나은 대접을 받을 것이다.
(… …)
하인만도 못한 굴욕적인 대우를 받다가 쫓겨날 거라고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해서 잠도 오지 않았다. 그동안 세상의 중심에 속해 살아온 채령은 미국에 닿는 순간 하찮은 존재로 전락했다.
-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2』, 「샌프란시스코」 중에서

나는 침대가 들어찬 방 안을 정신없이 찍어대다 멈추었다. 한구석에 채령이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엉뚱한 데서 시간 보내다 이제 와 사진이나 찍어 대고 있는 날 노려보는 것 같았다. 그녀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That’s not ok!”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1

저자 이금이

출판 사계절

발매 2016.06.03.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2

저자 이금이

출판 사계절

발매 2016.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