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이창현, 유희 작가 인터뷰


독서 클럽의 ‘익명의 독서 중독자’가 되어 주세요.


‘B급 감성 사이로 고고히 흐르는 지적 인문주의의 대향연’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책 읽기의 매력을 강렬하게 선사한 만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 5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책은 넘쳐 나지만, 책과 친해지기 힘든 시대에 책 읽기에 관한 재미나고 다양한 이야기로 독서인과 비독서인 모두를 사로잡은 만화.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나의 독서욕을 자극하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창작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이창현(글), 유희(그림) 작가와 나눠 봅니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두 번째 권이 나왔다. 무려 5년 만에. 그것도 연재 없이 단행본 작업으로만.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독자 들이 많을 거라 예상했는지?

이창현 예상했다기보다는 기원했다는 쪽이 실상에 가깝다.



제목 자체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이 제목은 어떻게 나온 건지?

이창현 최초 제목은 'Tolle Lege'(들고 읽어라)였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8권 12장의 회심 장면에서 가져온 표현이다. 제목에서 이미 독자들 떨어져 나갈 포스가 풍긴다는 의견을 듣고 급하게 바꿨다. 지금 제목은 그냥 막 떠올랐다. 이런 걸 재능이라 부르지 않는가. ㅎㅎ



술을 즐기는 편인가?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이창현 아세트알데히드 분해 능력이 떨어져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A.A. 모임은 알고 있다. 작가란 사람들은 대개 심신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모임을 꿰고 있어야 한다.

유희 지금은 거의 안 먹고 맛만 본다. 예티가 즐기는 발렌** 40년산 맛은 모른다. 예티부럽…



두 분의 작업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유희 작품의 기획은 이창현 작가의 아이디어로 시작해 이런저런 잡다한 수다로 모양새를 만들어 간다. 본격적인 작업은 글 콘티를 그림 콘티로, 그림 콘티를 원고로 작업 후 수정 보완한다. 여타 협업 작업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오래 함께하다 보니 점점 이견이 사라지는 것 같아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든다.



유희 작가가 완성한 캐릭터들이 이창현 작가가 처음 생각한 것에 많이 부합하는지?

이창현 재미있는 질문인데 재미없게 답해야 할 것 같다. 처음부터 세세한 부분까지 외모를 정해 두는 캐릭터도 있고, 러프한 이미지만 떠올린 후 유희 작가에게 떠넘기는 캐릭터도 있다. 그러니 싱크로율은 그때그때 다르다. 여기서 포인트는 떠넘겨도 된다는 부분이다. 그 편이 결과물에 대한 기쁨도 더 큰 듯하다.



1권에는 예티가, 2권에는 사스콰치가 등장한다. 사람이 아니고 이런 신비 영역(?)에 속하는 동물들을 설정한 이유가 있는지?

이창현 종種 다양성을 위한 결정이다. 농담이다. 그동안 과묵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과묵한 개그를 즐겨 구사했는데, 독서 모임을 소재로 이런 스타일의 개그는 쓰기 까다로울 것 같았고 까다로운 건 질색이어서 '그냥 대사 없는 캐릭터 하나 넣지 뭐' 정도의 마음으로 한국말을 못 하는 외국인 캐릭터를 넣기로 했다. 그러다 '인간일 필요도 딱히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예티로 선회했다.

유희 독서 모임에 예티와 사스콰치가 있는 것만으로 참석할 명분이 생길 것 같다.



사자, 경찰, 슈, 고슬링, 로렌스, 사서 등(노마드나 선생, 예티, 사스콰치 포함) 어떤 캐릭터를 가장 좋아하는지?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는 누구인가?

이창현 사자가 좋다. 사자는 1권 오프닝부터 언급되며("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2권 마지막을 장식한다. 사자는 주인공이다. 2권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사자의 집에 있던 로봇물걸레청소기들을 신형 에브리봇 쓰리스핀 PLUS로 바꿔 주지 못한 일이다. 닮은 캐릭터도 사자가 아닐까? 아니면 고슬링? 아니면 카메오로출연한 광인?

유희 경찰. 다음으로 애정하는 캐릭터는 노마드. 노마드는 1권에서 초반부에 퇴장하는 캐릭터라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그린 인물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독자들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노마드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에 당황스러웠고, 독서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를 보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눈물겨운 모습에 감동했다.



2권에는 사서가 새롭게 등장한다.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편인지? 사서라는 직업은 작가님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사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유가 있나?

이창현 일주일에 한 번은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 가서 반납할 책을 꺼내며 사서에게 조용히 말한다. "어떤 XX가 책에 볼펜으로 밑줄 그었어요!" 낙서한 장본인도 아니면서 사서는 죄송하다며 사과한다. 사서는 나처럼 메마른 인간도 숙연하게 만드는 존재다. 사회 부적응자만 우르르 나오는 만화의 속편에 눈부신 햇살처럼 등장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결국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캐릭터답게 이상한 사람으로 그려졌다.

유희 고등학교 때 수업 끝나고 야간 자율학습시간 전 근처 공공도서관에서 혼자서 잡다하게 책을 읽었다. 그 도서관에는 사람이 거의 없는 편이었는데 사서분이 안내데스크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한가로이 책 읽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개꿀인데?라는 생각과 그 평온한 모습에 ‘사서나 할까?’라는 오만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보통은 잘 모르는 사서의 업무가 책 속에 생생하게 담겨 있어 실제 사서 선생님들이 놀라워한다. 사서와 관련된 내용들은 어떻게 조사했나?

이창현 나 역시 사서 업무를 잘 모른다. 현역 사서를 인터뷰할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지금껏 글 작업을 하면서 취재에 나선 적이 없다. 독서가는 모든 일을 책에서 배우고 해결하려 한다(심지어 나는 접영도 책으로 배웠다. 챕터를 착각해 평영을 배운 것일수도 있음). 처음 눈에 들어온 책이 강민선 작가의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였고 『도서관의 말들』까지 읽은 후 사서 캐릭터 백설기를 세세한 부분까지 만들었다.



사서와 경찰의 핑크빛 미래를 기대해도 좋은가?

이창현 그들의 로맨스는 내게 작가로서 큰 도전이자 위기가 될 것이다.

유희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독서 모임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이런 독서 모임이 있다면 어떤 별명으로 인사를 나누고 싶은지?

이창현 학생 때 별명은 ‘핑크 팬더’, 군 복무 시절에는 '로드 러너'였다(둘 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라는 점이 기이함). 독서 모임에 어울리면서도 잘나 보이는 별명을 찾자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그냥 ‘핑크 팬더’나 ‘로드 러너’ 중 하나로 정하겠다.

유희 천장 도색업자. 이창현씨가 나름 ‘미켈란젤로’를 떠올리고 지어 주었다.


‘독서 클럽’ 캐릭터들을 현실에서 만난다면 누구와 친해지고 싶은가? 가장 피하고 싶은 인물은?

이창현 예티와 친해지고 싶다. 예티의 재력이라면 요트를 타고 느긋하게 누워 “지중해에서 로저 크롤리의 책을 읽고” 싶다는 슈의 바람도 이룰 수 있다. 피하고 싶은 인물은 로렌스. 소설 발표 시간이 돌아오면 그날은 모임에 빠질 것 같다.

유희 사자와 친해지고 싶지만 로렌스와 친해질 것 같다. 경찰과장을 피하고 싶다.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 것 같다.



액자 구성처럼 들어가는 로렌스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로렌스가 쓰는 소설은 작가의 스타일이 짙게 배어 있는 건가?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이창현 인류는 아직도 나무늘보가 굳이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배변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런 수준인데, 어느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과 그 작가의 작품 속 작가 캐릭터의 글쓰기 스타일을 분석하는 일은  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소설 쓰기에 관해서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1권은 웹툰 연재라서 그런지 컬러 작업이고 2권은 흑백 작업이다. 컬러와 흑백 그림 둘 중에 어떤 걸 더 좋아하는가? 그림 그리는 과정에도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지?

유희 ‘만화는 흑백이지’라는 구시대적 생각을 남모르게 품고 있다. 이미지로만 국한해서 컬러가 영화적이라면 흑백은 문학적이라고 생각한다. 만화는 문학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편견도 가지고 있다. 컬러보다 흑백이 더 편한 건 맞지만 편안하다고 주장하겠다.



SNS를 안 한다고 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체크하는지?

이창현 다수의 긍정적 반응이 아닌 소수의 부정적 반응만 기억에 남아 댓글 확인을 그만뒀다. 비판이나 비난을 받아들이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 비판이나 비난이 어째서 오류인가를 어떻게든 설명해 주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칭찬을 받을 때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별히 겸손한 사람은 아닌데, 모르겠다.

유희 SNS를 안 하지만 ‘차라리 해 보는 게 어떨까’라는 수준으로 탐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