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개의 꽃씨와 쥐』 이조호 작가 인터뷰



『백 개의 꽃씨와 쥐』
2023 인터뷰: 이조호 작가

“씨앗을 뽑고, 묶고, 끌고 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한 장면 한 장면
찬찬히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과정에서 오는 감동이 분명히 있지 않을까 했어요.
저에게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이 이야기를 만드는 데 제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출간을 맞아 대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책을 받고 감회가 새로우셨죠.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기대가 전혀 없어서 믿기지 않았고 그 뒤론 그저 기뻤습니다. 서투른 부분이 많은 작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걱정과 동시에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아야겠다는 긴장감도 들었어요.
만들어진 책을 실물로 만져 보면서 책이 되었구나 실감했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마주할 때도 정말 반갑고 신기했어요. 책은 고민을 함께 나눠 준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 주었고, 수상 이후부터 기다려 준 친구들에게도 선물했습니다. 제가 만든 책을 누군가가 읽을 수 있고 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기뻤어요.
 

『백 개의 꽃씨와 쥐』 이야기는 어디서 출발했나요?

멋진 정원을 그려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생각처럼 잘 그려지지 않던 찰나에 엄마가 퇴근길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셨는데, 사람이 많은 전통시장 한가운데서 "나한테 왜 이래!!!" 하는 고함이 들렸다고 해요. 궁금해서 가까이 가 보니 거기에 쥐 한 마리가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가 만약 쥐를 만나게 되면 다정하게 인사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뒤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가 바닥을 코로 열심히 들추고 있길래 가까이 가서 봤더니 쥐가 쓰러져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으악! 소리를 질러 버렸어요. 시장에서의 누군가처럼요. 그러자마자 미안한 마음이 차올랐어요. 쥐에게 사과를 하고 돌아왔던 그날 이후로 정원에 쥐가 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왜 민들레라는 꽃을 선택하셨어요?

어느 날은 민들레의 노랑이 정말 커다랗고 눈부시게 다가왔어요. 활짝 미소 짓는 얼굴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민들레의 강인함에 힘을 얻었고, 잠시 기대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민들레를 동경하는 쥐를 보면 저의 마음이 많이 투영된 것 같아요. 한 송이가 아닌 민들레의 정원이 있으면 어떨까, 황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업 중인 쥐

쥐와 개는 어떤 친구들이에요?

개는 감정 표현에 솔직한 친구고 쥐는 행동에 고민이 항상 묻어나는 조심스러운 친구예요. 개는 주저앉아 울어 버리거나 깜짝 놀라면 입이 떡 벌어지기도 합니다. 반면에 쥐는 숨어서 지켜보거나 민들레를 몰래 훔치는 몸짓이 하나하나 조심스러워요. 캐릭터들의 성격을 행동으로 잘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작업 중인 개

이 이야기에 가장 담고 싶었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나요?

작아 보이는 것들이 결코 작지만은 않다는 사실과, 모든 곳에는 저마다의 세계가 있고 즐거운 일은 어디에나 있어서 우연히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 작은 친구가 떠올리는 고운 마음을 들여다보면 내 마음에는 어떤 감정이 피어오를까 집중해 보고 싶었어요.
 

수많은 민들레가 만개한 클라이맥스 장면, 쥐의 마음이 빛을 발하는 순간의 비유로 보았어요. 작가님은 어떤 장면을 상상하셨나요?

마음의 빛이 발하는 순간의 비유도 좋은걸요. 비유라면 쥐와 꽃씨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그려 보게 되네요. 저는 민들레가 정말로 만개했다고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완성했습니다. 쥐에게 한 송이보다 더 큰 따스함을 선물해 주고 싶었어요. 감상의 여지를 자유로이 남겨두고 싶고 또 다른 새로운 감상들이 기다려집니다.
 
만개한 민들레 장면 :D 색연필 버전

작업 과정에서 여러 고민이 있으셨는데, 어떻게 풀어 가셨나요?

평소 작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손바닥 사이즈 종이에 원화 작업을 했었기 때문에 큰 판형에 그림을 옮기는 과정이 저에게는 도전이었어요. 작은 종이에서는 조화로운 표현이 큰 화면에서는 심심해 보였기 때문에 표현 방법을 다시 고민해야 했어요. 콜라주의 비중을 어느 정도로 가져갈 것인지, 흰 종이 위에 흰 쥐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연거푸 고민하다, 단정하고 부드럽고 간결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의 기법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화면 구성은 단조롭게 표현하되 이 세계의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다가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화면에서 가장 먼저 보여야 하는 부분부터 시선의 흐름이 순차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구성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여백을 잘 활용하고 싶었어요. 여백이라서 비어 보이는 게 아닌 절제된 이미지이면서 촘촘하고 튼튼한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종이 콜라주로 표현한 몽글몽글 민들레 꽃씨

그리고 누군가 나를 위하는 마음을 떠올려보면 그 마음에는 뭉클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쥐가 개를 생각하면서 씨앗을 뽑고, 묶고, 끌고 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한 장면 한 장면 찬찬히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과정에서 오는 감동이 분명히 있지 않을까 했어요. 저에게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이 이야기를 만드는 데 제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조호 작가의 사인 도장!

 
그 과정 끝에 원화를 마감하고 많이 뿌듯하셨겠어요.

돌아보니 모든 과정에 아쉬움이 남는 것 같아요 저는 언제나 아쉬움을 일부러 찾아내려고 하는 성격 같아요. 완성하고서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처음처럼 그려지지는 않겠지만요. 콜라주로 쥐의 몸짓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려다 보니, 원하는 모양이 완성될 때까지 쥐를 여러 번 그리고 자르고 그리고 자르면서 쥐의 조각들이 점점 쌓였어요. 쌓여 가는 쥐들을 보며 왠지 뿌듯하면서도 체력적으로는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 속 쥐가 되지 못한 쥐들의 무덤


평소 어떤 작업을 즐겨하시나요?

평소에 떠오르는 대로 즐겁게 그림을 그립니다. 보통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것들을 그림으로 담게 되는 것 같아요. 재료를 탐구하는 일도 즐거워서 새로운 재료와 표현 기법을 시도해 보는 것을 즐겨합니다. 다양한 재료가 조화롭게 섞이며 우연한 효과를 불러오기를 기대하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작가님 인스타그램을 보면 산책을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네, 매일 비슷한 길을 걸어서 엄청난 특별함은 없지만 작은 변화가 눈에 잘 들어온다는 사실이 즐겁습니다. 예를 들면 어제는 꽃봉오리였는데 오늘은 활짝 핀 꽃을 본다거나 이름 모를 식물의 이름을 알게 되는 일이 생겨요. 올해는 오리들이 몇 마리나 날아왔고 얼마나 자랐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꽤 재밌답니다. 시간대별로 다른 풍경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설레요. 예를 들면 나무들의 머리를 다듬는 일은 이른 아침에 이뤄지는구나 알게 되고, 아침 시간과 저녁 시간의 풍경이 무척 다르다는 걸 실감하는 묘미도 있습니다. 걷다 보면 작은 에피소드들이 생긴다는 게 즐거운 일이죠.
 

가을 산책길의 작은 즐거움



다음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구상 단계이긴 하지만 달을 올려다보면서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어요. 달을 올려다보면 선명하게 눈에 담기는데 손엔 닿지 않는다는 점이 신비롭다 생각했습니다.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이 지구라는 행성이구나 하는 사실도 상기시켜 주는 것 같아요. 어렸을 적에 달이 나를 따라온다고 생각했었는데, 고개를 들어도 들어도 달이 계속 머리 위에 있었거든요. 달이 찾아오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요.
 
그림을 그리고 책을 좋아하다 보니 어느새 그림책으로 걸어갔던 것 같아요. 평소에 책이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림책으로 다정한 이야기와 긍정적인 힘을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