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컴컴한 입구에 관한 이야기

오래전, 제가 읽고 싶었던 책 가운데 하나는 ‘어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보다 제 키가 작았던 때, 도서관에 가면 항상 깨금발을 해야 했던 시절의 일이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곳의 책장은 대개 케이프타운 흑인들처럼 덩치가 컸습니다. 동시에 어딘가 무서우면서도 듬직한 느낌을 주는 형상을 하고 있었지요. 지식이나 서고가 괴물처럼 두려움을 주는 까닭이 우리에게 용기와 모험을 똑같이 요구하기 때문이란 건 몰랐던 때의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도서관만큼 무시무시한 곳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저는 수현이처럼 예민한 아이도, 올리버처럼 아픈 소년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 속에 어둠이 있다는 건 알았지요. 열세 살과 열여덟 사이의 모든 친구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어둠을 해로운 것이라 여기는 듯했습니다. 우리가 밝고 맑은 것만 접하며 건강하게 자라길 바랐고요. 때론 그런 것이‘명백한 가짜’처럼 느껴져 아이들도 멀리한다는 걸 잊으셨던 것 같아요.
 
어릴 때 저는 성인 소설이 읽고 싶었습니다. 그 안에는 사춘기를 일컫는 환한 봄뿐 아니라 메마른 가을과 겨울이 있었으니까요. 하나의 세계보다 사계 안에서 자라는 식물의 종(種)이 훨씬 많다는 걸 믿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불면증에 걸린 곰처럼 겨울이 고팠습니다. 어둠이 고팠습니다. 그리고 누가 이야기해 주길 바랐습니다. 모든 아이들의 가슴속엔 좁고 어두운 지하실이 있다고. 너희들의 마음 생김새도 어른들과 비슷하다는 걸 안다고. 중요한 건 어둠이 아니라 어둠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늘 나는 개를 한 마리 죽였다. 그것도 교회의 개를”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어딘가 기이하고 낯선 청소년소설이요. 그건 마치 처음부터‘청소년을 위한 교양 도서’식 문법을 훌쩍 비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달리 말해 지구의‘키 작은 독자’들을 신뢰하고 존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해야 할까요.

사실 주위의 많은 청소년들은, 어떤 이야기는 아름다워서 나쁜 게 아니라, 아름답기만 해서 거짓일 수 있다는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둠은 병(病)이 아니라 계절이라는걸,‘ 나’라는소우주가자전하며 만들어 내는 무수한 일기(日氣) 중 하나일 뿐이란 걸 말이에요. 청소년들이 청소년 소설을 잘 읽지않는 까닭은 세상의 선(善)을 시시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길의 평편함 때문일겁니다. 빛을 납득시키는 것보다 빛을 주장하는 일이 쉬운 방법인 것처럼요.

반면『망고 공주와 기사 올리버』는 인물들의 사적인 어둠에 케이프타운의 역사적인 어둠을 덧씌우면서 겹겹의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매력적인 세 인물, 수현과 올리버, 타보가 처음 만나는 장소가‘지하실’인 것 또한 우연이 아니겠지요. 타보는 세 사람의 조우를 가리켜“무지개가 떴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험이 시작되지요. 그게 어떤 여정일지는 여기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다만 모든 어둠은 이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요한을 발견하는 순간 가슴이 아팠다면, 그런 게 또 성인식이라면, 다큰 어른들이라도 번번이 다시 한 번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를 전해 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미로 속 수현의 근사한 통찰 중 하나,“ 상처가 길을 알려 주는 셈이잖아?” 라는 대사가 드러나는 장면을 잘 살펴보시라는 말씀도요.
 
도서관 얘기를 다시 하자면, 책장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 중에서 제가 가장 아름답다 느낀 부분은, 누가 책을 갓 빼낸 자리, 그러니까 한 권의 책과 다른 책 사이에 뚫린 홀쭉하고 네모난 구멍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은 제게 언제나 문을 연상시켰지요. 올리버가 열고, 타보가 열고, 수현이 들어간 그 컴컴한 입구를요. 그러니 혹 서점에 가면 직접 그 입구를 만들어 보시는 게 어떨지요. 그책이『망고 공주와 기사 올리버』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요.
 
 

글 · 김애란 (소설가)
 
 
 
1318북리뷰 2010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