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남자도 피해 갈 수 없는 ‘부부 불평등’의 구조는 어디에서 오나

남녀가 있다. 두 사람은 모두 미술을 전공했고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다. 둘 다 이른바 ‘운동권’이었다. 민주주의와 평등, 노동과 인권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이를 미술이라는 장르 속에서 실천하는 활동을 열심히 하다 만나 사랑에 빠졌고 마침내 결혼하게 된다. 누구보다 진보적이고 평등의식이 투철한 사람들이 부부가 되었으니 그들 가정은 당연히 매우 성평등한 가정이 되었을까? “평등은 개뿔”이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 현실은 결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이 평등 부부는 시작부터 결코 평등하지 않은 일상의 현실을 수없이 경험한다.

예컨대 남자가 여자의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부터 문제가 된다. 왜 여자는 남자의 아버지를 ‘아버님’이라 부르는데 남자는 여자의 아버지를 ‘장인어른’이라 부르는가? 남자의 입장에서는 그저 별다른 의식 없이 남들 하는 대로 관습을 따르는 것일 뿐이지만, 여자의 입장에서는 친정과 시댁을 구별하면서 친정에 거리를 두는 일종의 차별이다. ‘진보적인’ 남자는 별것 아닌 호칭에 대해 시비 거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여자는, 왜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하나, 그 이름 속에서 엄마의 흔적은 사라진다고 분개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이름이 사라진 채 살아온 시어머니와 장모는 사돈 간에 서로의 성과 이름조차 잘 모르고 있다. 나 개인의 성평등 의식이 아무리 높다 해도 해결되지 않는 이 ‘구조적’인 문제 앞에서 남자는 난감해진다.


문제는 단지 부부 두 사람 사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언제나 이런저런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부부에게 문제는 곳곳에서 지뢰처럼 터지곤 한다. 남자의 친구는, “여자들이 경제활동 해 봐야 어차피 남자들보다 못 벌고”, 따라서 “그냥 살림 잘하고 애 잘 키우면 그게 돈 버는 거”라고 당당히 말하고,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농담이랍시고 성희롱적인 언사를 예사로 내뱉는다. 친정어머니는 부엌일 하는 사위를 보며 괜스레 미안해하고, 작업실 공사하는 인부들은 여자 말에는 꿈쩍도 안 하다 남자가 나서면 비로소 말을 듣는다. 문제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는 남자가 그런 상황에서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함께 낄낄거리고 있다는 것이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참을 수 없다는 거다. 이런 ‘사소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아내를 그저 ‘너무 까칠하게 군다’ 정도로 생각하던 남자는 결국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조금씩 자신의 문제를 깨닫게 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관습적으로 자연스럽게 강요되는

‘남자다움’에 길들여진 무의식은, 아무리 페미니스트의 의식을 장착해도 쉽게 털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평등은 개뿔』의 저자 신혜원·이은홍 부부의 오랜 친구다. 그들이 사는 모양을 꽤나 오랫동안 비교적 가까이서 지켜본 셈이다. 그러기에 이 만화책을 읽는 내내 두 사람의 목소리가 음성 지원 되는 듯했다. 이은홍은 내가 아는, 가장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며 성평등 의식이 투철한 남자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요리를 하고 가사 노동을 하고 육아를 분담해 왔다. 부부가 모두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만큼 평등한 관계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고 늘 생각해 왔다. 적어도 이은홍은 흔히 말하는 가부장적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 이은홍조차도 일상의 크고 작은 성차별적 의식과 관행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는 건 내게도 적지 않은 놀라움이었다. 나름 ‘진보적인’ 남자를 자처해 온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반성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젠더 갈등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가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름 성평등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남자들조차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성차별적 관행과 의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이 정도면 충분히 아내를 돕고 위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나는 페미니스트’라 생각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언제나 새로운 성차별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 만화책은 페미니즘이란 것이 그저 한 개인 차원에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페미니스트란 여성을 위하고 받드는 사람이 아니라 여성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골치 아픈 이론이나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익숙하게 겪는 일들 속에서 성차별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진정한 성평등이 어떤 변화로 가능한지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최고의 성평등 교육서이자 누구나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페미니즘 교과서라 할 만하다.

-김창남(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