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처럼 바람처럼 강물처럼 : 문경국

제2회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독서감상문대회
중고등부 우수상 수상작


 
의리, 차별과 압제, 배신과 옴모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삶, 소설 『임꺽정』을 읽고 난후 머릿속에 남은 것이라곤 이것이 전부다. 하지만 몇자 되지 않는 일련의 느낌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저마다 자유를 얻고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 는 오늘날, 자신의 능력으로 무엇이든 이룩해낼 수 있는 지금에, 임꺽정은 '기회의 불평등'이란 단어의 불합리성에 분개하 며 다가왔다. '너'와 '나'의 뚜렷한 이기주의와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현대에 목숨을 걸고 형제되기를 맹세한 의리의 사나 이들은 작가로 인해 '너'와 '나'에게 '우리'에 대한 가치관을 물었다. 

의리, 의리 빼면 시체라고 곧잘 말하는 사람들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내보곤 한다. 과연 진정한 의리인지, 말마따나 정 말 곧 죽어도 '의리'라는 값비싼 정신적 . 육체적 대가를 치를 수 있는지 궁금하다. 우정 앞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데 얼마 만큼의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지는 나 자신조차도 석연치 않다. 그렇지만 소설에서의 그것은 진정함을 보여준다. 어려울 때 더욱 굳어지는 서로간의 믿음은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임꺽정의 독불장군 같은 면은 고쳐졌으면 했다. 서로의 단단한 고리로 이어져 죽어도 변치 않을 신의를 낳았지 만, 임꺽정의 독단적인 결정과 앞 뒤 생각하지 않는 추진력은 아무래도 그 신의를 바닥에 깔고서 하는 것 같아 싫었다. 자신의 분을 풀기 위해 의형제들을 위험으로 끌어들이는 그의 잘못된 행동이 고쳐졌었다면, 아마 그는 더욱 완벽한 '맏형' 이 되었을 것이다. 

차별과 압제 또한 『임꺽정』을 읽으며, 신분사회라는 구조적 모순이 조선이라는 한 나라의 발전에 얼마나 끔직한 제재를 가했는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임꺽정은 백정의 피를 받았고, 그래서 백정이라 불려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동물을 죽이는 직업적 특수성 때문에 부 과되는 천대와 핍박은 '사농공상'의 사계급 구조에서 수직하강의 길을 걷는 차별과 압제로 인해 최하위층인 '백정'에게 쏟 아져 내린다. 그는 이유 없는 구별이 싫었다. 양반들에게 되로 받아 말로 퍼주는 평민들이 미웠고, 특히 같은 계층을 이루는 상인들 까지도 뭐 그리 잘난 것이 있다고 자신을 깔보는 것은 정말 못봐줄 일이었다. 멀쩡해도 병신이어야 했고, 죽었구나 하고 살아야 하는데, 천하장사라는 수식어가 붙는 임꺽정은 백정의 질곡과도 같은 삶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임꺽정은 결국 도적의 길을 걸었다. 이것이 단순히 현실 도피적인 은신을 위한 방법중 한 가지였다면 당파싸움 으로 피를 뿌리던 조선 조정에 대한 대항이었을 텐데, 하기 생각해보았다. 황해도 감사보다 무서운 화적이 된 임꺽정이 예의 그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한 차별과 기회의 불평등을 제도화하고 당연시한 조선 조정에, 그리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 고 오히려 오히려 양반보다 더 지독한 눈빛을 보내는 세상에 반기를 듣 것은 권력다툼에 눈이 먼 그들에게 불행이 아니 었을까? 

그가 황해도를 거점으로 해서 온갖 악행을 저지를 때는 너무 한다 싶었다. 살아오며 받았던 뭇사람들의 냉혹한 시선 과 혹렬한 언행이 가슴에 맺힐 대로 맺혀 한이 되었다 할지라도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버린 세상과 같다는 결론을 내리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해서 말이다. 난 그가 홍길동 같은 의적이 되었으면 했다. 봉물을 빼앗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냉대받고 소외되어 가난으로 처 절하게 살아가는 누구에게라도 나누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닥치는 대로 없애려고만 드는 그가 '천하에 둘도 없는 극악무도한 놈'으로 불리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백정이라는 신분으로는 국가를 위해 힘을 쓸 어떤 기회도 자신에게 주어지 않았고 허락하지도 않았다. 세상이 임꺽정을 도적의 길로 이끌었고, 그가 백정으로서 할 수 있 는 일이라곤 없었으므로 도적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며, 동시에 안타까운 일이었다. 

소설 『임꺽정』의 책장을 넘기며 손을 불끈불끈 쥐에 만들었던 것은 '배신과 음모' 때문이었다. 득권(得權)을 위해 치 열한 당쟁이 끊이지 않던 조정에서 , 그리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써 그 입지를 확고히 한 ' 배신'은 임꺽정을 죽음으로 몰아넣기까지 한다. 임꺽정이 자신의 이름을 파는 좀도둑 노밤이를 떼어내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목에 가시 걸린 듯하다. 늙은 고양이마냥 약삭빠르고 거짓말 잘하고, 거기에 철면피인 노밤이는 장면 속에 뛰어들어가 뺨을 갈겨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지 략가로 활약한 서림이도 마찬가지였다. 처남을 구하러 서울에 갔다가 도리어 잡혀서는 임꺽정을 온갖 지략을 고해 바치 는 폼이 울화통을 터뜨렸다. 노밤이와 서림이를 욕하면서 나는 젊은 목숨을 잃은 수많은 독립 지사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버텨낸 고문은 한결 같이 죽음으로 사람을 몰고가는 악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리고 뜻을 같이한 동지를 위해서 말이다. 강인한 정신력을 소유한 그들을 생각할 때 노밤이와 서림이는 형편없는 위인들이다. 오늘날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배신'을 일삼는이들이 있다. 돈을 위해 인륜을 저버리는 인간들이 있다. 아마도 역사의 중요 순간마다 배신은 꼭 붙어다닌 듯하다. 전체 속에서, 한 사람의 배신이 전체를 얼마나 위험천만하게 만드는지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다. 

대적 임꺽정. 

그는 장수감이었지만, '백정'이라는 신분 때문에 평생을 울분을 삭히며 살아야 했던 , 강했지만 가련한 남아였다. 백정 으로서는 할 일이 없어 도적의 길을 걸어야 했고 , 세상을 원망하며 눈을 감아야 했던 , 산처럼 바람처럼 강물처럼 살다 간 사내였다. 하지만 그의, 잘못된 세상에 대한 작지만은 않는 반항이 헛되지 않았음을 난 말하고 싶다. 결과야 어쨌든 직업에 대한 편견에서 시작하는 신분차별의 부정성에 눈을 뜬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의 관리들도 유교의 경 전을 제대로 이었다면, 임꺽정을 어떻게든 잡아 옥에 가두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잘못된 관행과 제도, 인븟 등을 타파하는데 주력했어야 했다. 소설 『임꺽정』이 완결되지 않은 점을 내내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얻고, 또 이룰 수 있는 민주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새삼 행복하게 느끼게 했다는 데 만족하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앞으로 친구들과의 신의를 더욱 소중히 하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겠다.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