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 임꺽정 : 김윤미

제1회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독서감상문대회
고등부 대상 수상작
 


'왕후장상이 영유종호아' 

백두산에서 사슴과 같이 뛰어놀던 천왕동이가 인간세상에 내려와 익힌 말이다. 또한 소설의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일관성 있게 내용전반에 되풀이 되어 , 가슴 깊이 뇌어보던 말이기도 하다. 결코 그릇된 말이 아니지만, 그 뜻을 가슴에 품고 이기만 하여도 역적으로 몰려 목을 잘리우며, 반상이 뚜렷하여 '올라가지 못할 나무'와 '쳐다도 보지 못하는 이'가 존 재하는 세상에서는 아무리 진리하고 하여도 서슬 푸른 칼날이 두려워 감히 '이게 옳다'못 하건만, 임꺽정은 막힌 체증을 시원히도 뚫듯 일어나 '왕이 천하 제일이라면 나라고 못 할까 보냐.' 호령했던 인물이다. 상놈이라 천대받던 이들마저 대면을 꺼려하던 소백정의 아들로 태어난 꺽정은 어린 시절에 이미 형생의형제인 유복, 봉 학과 어울려 타고난 재주와 뚝심을 길러낸다. 훗날 맞이하는 여러 의형제들도 마찬가지로 남다른 면모를 간직한 인물 들이나,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뜻을 펼치지 못하여 가슴에 응어리를 간직한 사람들이다. 어디선가 '쇠는 녹이 슬어 부숴지지만 정작 그 녹은 쇠 안에서 생긴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역시 그들과 같은 도적을 만든 것은 다름아닌 조선사회였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돈 없는 것이 죄인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의기를 가진 어느 인간이 뱃심 편히 살수 있었을까.

하나하나 청석골에 들어와 화적 노릇을 하게 되는 길막봉이, 서림, 박유복이, 배돌석 등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의형제'편 은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으고, 또 감명 깊었던 부분이다. 특히 해산 끝에 죽어버린 아내가 낳은 갓난동이를 동냥젖으 로 키우다가, 밤새 보채는 통에 눈이 뒤집혀 순간적으로 태질해 죽인 곽오주의 이야기는, 당시 가난했던 민중들의 삶과 연결되어 가슴 한쪽이 죄이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게했다. 그래, 아이의 울음만 들으면 미쳐서 쇠도리깨로 으깨어죽이는 오주의 행동이 몸서리치게도 끔찍했지만 , 또 그 다음의 연민이 솟아나기도 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다른 의형제들의 이야기에서는 , 묘사 하나하나가 양반계급의 풍요, 관리들의 횡포, 또 하층민의 생활상이 여느 역사책과 비교하는 것도 낯적을 정도로 치밀하고 방대하나, 정착 그들 자신이 청석골 화적패의 두령 노릇을 해야만 했던 이유가 하나같이 개인적이고 우연적이지 않았나 싶었다. 예를 들면, 소금장수였던 길막봉이 데릴사위를 살다 장모의 구 박에 못이겨 그토록 미워하던 도적의 소굴에 들어온다든지, 서림이 진상품에서 끼니. 연명과는 상관없는 포흠을 내다가 들켜 도망한 끝에 청석골 도적들을 만나게 된다든지, 대부분 이 가난에 못 이겨 생존의 방편으로 선택한 길이 아니었으 며, 이는 평양 진상봉물을 간직함이 탄로나 옥에 갇힌 가족들을 구해내고 갈림길에 섰던 꺽정의 망설임에서 여실히 드러 난다. '도적질로 세상을 바로 꾈 수만 있다면 모를까, 도적놈이 되는 것을 싫다.'는 망설임, 그래도 그때의 꺽정은 더러운 세상을 증오하는 , 할수만 있다면 '역모'를 꾀하려는 마음까지 있었는지 모른다. 허나 '결의'를 거쳐 '화적편'의 '청석골'부 분에서 화적패의 대장으로 아무 이의없이 추대된 꺽정은,'큰일'을 하자는 서림의 책략을 귀담아듣는 듯 하더니만, 수년 동 안 서울로 올라가 한온의 집에 기거하며 기생집에 드나들고 양반 첩을 셋이나 거느리며 한량'임선달'노릇을 한다. 어찌 보면 여태까지의 긴장과 기대가 갑자기 풀리는 듯한 단절감을 느끼게되었다. 백두산에서 맺은 운총과의 지순한 사랑을 아름답게 느낀 바도 있었지만 '삼천궁녀두 거느리고 살려 든 기집 세 개를 못 데리구 살까.' 라는 꺽정의 말에는 혀를 내 두를 지경이었다. 이때쯤 와서는 '임꺽정'이라는 인물과 당시의 화적패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임 꺽정이 양반계급에 대한 증오와 경멸을 유년기부터 가슴에 품고 살앗다고는나타났 청석골 내부에 또 다른 계급을 만들어 독재적으로 군립하고 심사가 뒤틀리면 가차없이 살인하는 형태로 미루어, 기존에있는 신분질서를 부정하고 타파하려는 인 물있었다고는 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자신이 피지배계급이었다는 것에 불만을 품었을 뿐이라고나 할까, 또한 청석골의 화적패 자체가 소외된 당시 농민들과 관련이 없는 , 그저 재주 있는 두령들이 이끄는 '화적패'로 그려졌을 뿐인지라, 전에 여러 번 이야기책으로 읽었던 '의적패' '의적 임꺽정'과는 전혀 다른 그들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작품의 전개에 뒤따르는 우리조상들의 재담은 읽은 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듯한 재미와 해학을 담고 있었다. 특히 거 짓 임꺽정 행세를 하던 노밤이 진짜 임꺽정을 만나 익살을 부리는 부분, 또 꺽정의 처남인 천왕동이가 백이방의 사위취재 를 통과하는 부분에서는, 마치 입담 좋은 소리꾼이 걸판진 판소리 한 대목을 뽑고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그 뿐만이 아니더라도, 인물의 구체적인 행동이나 말로 심리를 정확히 묘사한 것, 사전을 옆에 끼고 읽어야만 했을 정도 로 풍부한 우리말의 쓰임 등으로, 요즘 소설에서 느꼈던 감각적인 재미와는 틀린, 깊숙한 우리네만의 '재미'의 정서를 맛 보았다. 벽초 선생은 일제시대에 활약하던 문인으로 이광수, 최남선과 이름을 같이하는 천재로 일컬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임꺽정』을 읽기 전에 그리 듣던 이름은 아니었다. 이광수, 최남선이 친일의 행적을 보인 반면, 민족해방을 위해 싸우 며, 그러다 옥고를 치르기까지한 벽초 선생이고 보면, 오히려 더 많이 알려지고 존경받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근대문 학의 역사조차 알지 못하면서 문학에 관심이 있다 자처하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고, 또한 이렇듯 중요한 부분들을 정치적인 이유로 가르치지 않는 학교교육의 폐단도 새삼스레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소설의 완결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허나 여러차례 느낀 것이, 이 소설을 되풀이해 읽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이야기 짜임새에 대한 공부, 역사 공부, 어느 하 나 부족한 구석이 없지 않은가. 벌써 소설을 읽기 전과 비교해 얻은 것이 많았고, 쓸데 없는 편견을 버린 것이 많아 흐뭇하기 그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