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필름 #06 작가 황선미

장마가 시작된 7월 첫 날, 새 책 <칠성이>를 들고 황선미 작가를 만났습니다. 밖에는 비가 조금씩 뿌리다 말다 했고,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듣고 싶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 좋아하세요?
좋아해요. 늘어지기 딱 좋고. 일단 습하면 뭐든지 자기 색깔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태양이 너무 강하면 색이 날라가 버리거든요. 빛의 장난도 좀 있고. 그런데 습한 날은 뭔가 색들이 선명해지는 그런 게 있어요. 사람도 조금… 본질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비가 오는 날은 뭔가 새로 할 수 있는 에너지가 계속 생겨나는 기분이에요. 괜히 쓸데없이(웃음).
 
좋아하시는 것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내가 확실히 좋아한다는 걸 아는 건 식물이에요. 식물을 좋아하고, 계절은 11월을 좋아하고, 그리고 시간은 해가 막 질 때. 어두워지기 직전의 그때를 모색(暮色)이라고 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그때를 참 좋아했던 것 같아요. 11월은 아주 추워지지는 않았는데 이파리는 다 떨어지고, 옷깃을 여미고, 손끝이 차가워서 막 주물러야 되는 그런 추위.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칠성이>는 소재가 소 싸움이에요. 첫 느낌이 세더라고요. 
좋은 소재는 큰 힘을 줘요. 애초부터 자기 에너지를 갖고 있어요. 소싸움은 거구들의 싸움이잖아요. 맨몸으로 만만치 않은 상대를 밀어야 되는 현장인 거죠. 어떤 단어를 선택하든, 어떤 색채를 선택하든 가벼울 수가 없어요. 그걸 진실하게 따라가 줘야 되는 게 소재가 갖고 있는 힘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소재를 찾았느냐에 따라서 담는 그릇이 달라지는 거예요.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오랜만의 동물 서사인데요.
몸으로 부딪쳐야 되는 삶이란 것은 아주 치열해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싹도 그렇고, 칠성이도 마찬가지예요. 만약 사람으로 그렸다면 <마당을 나온 암탉>은 절대 아동문학으로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동물의 모습으로 만나게 되면 참 묘하게 아닌 것처럼 포장이 되는 거죠.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네 하고 느껴질 수 있는 이중의 결. 그걸 해볼 수 있는 장르의 특성이 아동문학이 갖고 있는 굉장히 매력적인 점이라고 생각해요. 속을 들여다보면 사람 사는 모양을 해석해 낼 수 있는 여지가 여러 겹으로 들어 있기 때문에, 어느 연령대의 누가 읽느냐에 따라서 얻는 의미가 다르니까요. 내 책은 그랬으면 좋겠어요. 언제 읽었는지 누가 읽었는지에 따라서 의미를 다르게 가져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독자 입장에서는 <칠성이>와 <마당을 나온 암탉>을 비슷한 결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확실한 건, 동물을 설정하긴 했지만 다 사람 얘기라는 점이에요.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으로 놓고 보면 우리가 사는 모습과 다를 것이 없어요. 격한 상황에 부딪혀서 겪어내고 나를 다시 세우기 하는 것. 그런 건 살면서 얼마든지 닥칠 수 있는 거니까요. 칠성이는 싸움소로 설정했지만, 그도 극복해야 할 상황에 놓인 하나의 인물이에요. 잎싹도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극복해야 하는 현실을 가졌다는 점. 동물을 생각하면서 쓴 게 아니라, 하나의 캐릭터로 충분히 인식해서 썼다는 점이 같은 접근이라고 봐야 되겠죠.
 
<칠성이>는 그림책이기 때문에 물성도 그렇고, 작업하시는 동안 느낌이 달랐을 것 같아요. 나오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렸죠?
시간이 많이 걸린 건, 장르의 특성상 그림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고. 내가 원고를 끝낸 기간은 그렇게 오래 걸린 건 아니에요. 취재를 하고 정보를 모으는 데 시간이 좀 걸렸던 것이고. 이 책은 스토리 위주의 작품보다 행간이 생략되어 있어요. 더 묘사하고 끈덕지게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생략했어요. 어느 정도 비웠기 때문에 조금 더 간결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가지고 갈 수 있었다고 봐요. 책을 어떤 모양으로 만드느냐에 따라서 글의 미는 힘도, 농도도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야기 시작이 상당히 극적이에요. 연극의 문을 여는 것처럼. 처음에는 그게 많이 낯설었어요.
아니에요. 모든 작품은 사건으로 시작해야 하는 거예요.
 
아, 사건으로 시작은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게 마치 지문처럼, 소리와 움직임을 나타내는 정말 짧은 문장이잖아요. 굉장히 영화적이에요.
영화적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요. 왜냐하면 내가 영화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진짜 많은 소재를 영화에서 얻어요. 그리고 일이 안 될 때 무작정 가는 데가 영화관이에요. 대학교 다닐 때도 영화과 애들한테 가서 걔네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랬어요. 걔네들은 나를 쳐주지도 않았지만(웃음). 나는 내가 아는 것에 관심이 없어요. 모르는 것에 관심이 있죠. 그리고 한번 지나온 길은 돌아보지 않아요. 늘 그렇게 생각해요. 과거는 내가 어차피 경험했고, 의도하지 않아도 길처럼 따라와요. 심지어는 옛날에 나 살던 데도 안 가요. 가 봐야 길도 없어졌고, 그럼 그나마 남아 있던 지도도 머리에서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게 훼손되는 건 원치 않거든요.
 
<칠성이>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요?
사실 <칠성이>는 욕심껏 표현했던 장면, 문장 이런 것들이 참 많은데… 칠성이가 멈추어야 될 때를 알지 못하고 다른 소를 해하고, 황 영감한테 유폐되다시피 한 시간이 있잖아요. 그런데 황 영감이 어쩌지 못하고 다시 와서 ‘미련하고 또 미련해서 어떻게 발길을 돌려야 할지 모르겠구나’라고 말해요. 이건 너도 미련하고 나도 미련하다는 뜻이거든요. 이겨서 좋아하고 상대한테 복수해서 좋아하고 이런 뉘앙스가 아니라, 자기는 그렇게 당했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고통을 안긴 상황을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 그건 휴머니즘이기도 해요. 아무리 경기라 할지라도 지켜야 될 도리가 있으니까요. 제일 아끼고 한참 고민하다 표현한 장면이에요.
 
저는 <마당을 나온 암탉>을 한 번 읽고 다시 못 읽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파서요. <칠성이>도 걱정을 했는데, 다 읽고 나니 힘이 나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슬플까 봐 못 읽겠다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나는, 책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과 등장하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의도하지 않아도 내가 엔딩을 선택하는 방식을 보면 인물을 슬프게 놔두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화해를 하거나 어떻게든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요.
 
행복한 결말이 주는 위안 같은 걸까요?
안심이 되는 거죠. 그런데 옛날 방식으로 누구와 누구는 행복하게 살았대요, 그건 정말 싫어하거든요. 어떤 사건이 소재로 포착이 된 건 문제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 문제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서 그걸 해결하는 게 내 일이에요. 그건 행복이라는 다른 말을 하고는 있지만, ‘안심’인 거죠. 문제에 대한 원인을 찾는 시도. 그게 정답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 제안 정도.
 
작가의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고 들었어요. 이번 책에는 왜 안 넣으셨어요?
구구절절한 거 같아서요. 그림책에 작가의 말이 들어가는 것도 그렇지만, 간결한 게 콘셉트인데 부연설명까지… 저는 진지해지기 싫은데 입만 열면 진지해져요(웃음)
 
작가들 서랍 속에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하잖아요. 어떠세요?
서랍이라… 서랍보다는 매우 구체적으로 머리에 칸이 있는 것 같아요. 꽤 많은 이야기가 칸이 나뉘어진 채로, 뒤섞이지 않은 채로 존재하고 있어요.
 
글을 쓴다는 건 끊임없이 자기 안에서 끌어내야 하는 일이에요. 고갈되는 느낌이 있을 것 같아요. 슬럼프랄까…
그건 슬럼프와는 또 달라요. 어떤 소재는 감당하기 되게 어려운 경우가 있어요. 요전에 쓴 작품이 그래요. 10년 걸렸는데, 그동안 내가 계속 입병이 생겨서 큰 병원까지 갔어요. 피곤하고 혓바닥이 까끌거리면 여지없이 생겼거든요. 스트레스가 눈에 보이는 게 아니잖아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나를 힘들게 했구나 그걸 느껴요. 그런데 작품이 끝나고 나니까 이제는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좀 들어요. 설사 너무 피곤해서 생겼다고 해도 곧 치유가 되요. 그 작품을 끌어안고 사는 동안은… 가난한 집 종부가 손님 왔다고 없는 쌀독 긁어서 밥하는 것 같은 그 심정. 그걸 너무나 여러 번 느꼈어요. 그런데 소재가 고갈된 적은 없어요. 뭐든 보면 하고 싶어요.
 
감당이 안 되는 소재를 놓을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

놓아지지도 않아요. 이 소재를 막연히 마음 속에 담아두고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그럴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이를 악물고 붙잡았을 때부터 형벌이 따로 없구나 싶었어요. 감당 못할 소재를 붙잡고 내가 내 살을 뜯어먹고 있구나, 그 생각을 진짜 여러 번 했어요. 그렇다고 잘 쓰지도 않았어요. 내가 힘들었을 뿐. 아직 초고인 상태지만 어쨌든 끝내고 나니까 뭔가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들어요. 항상 체기가 있었다면 그게 빠져나간 기분.
 
글쓰기 자체에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은 없으셨나요?
아뇨. 그렇진 않아요. 이건 그냥 내가 사는 일이에요. 글을 쓰는 건 내가 살면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책을 내고 안 내고와는 상관이 없어요. 써서 안 내고 갖고 있는 것들도 있고. 쓰고 싶으면 쓰는 거죠. 화가가 그림 그리는 것처럼 내가 세상에 대해서 말하는 방식이에요.
 
좀 전에 슬럼프는 다르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슬럼프는 글 때문이라기보다는 사람한테서 오는 것 같아요. 글 때문에 슬럼프가 오지는 않아요. 왜 못하고 있는지를 내가 아니까,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데 그걸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힘들 뿐인 거죠. 힘들어지고 에너지가 떨어지는 건 사람 때문인 것 같아요.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면 글을 못 쓰겠더라고요. 한꺼번에 가라앉아요.
 
전부터 그림책 작업을 하고 싶어 하셨던 걸로 알아요.
그림책 안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정말 예쁘지 않아요? 꽃이 안 들어가도 색깔이 없어도 그림책은 예뻐요. 그리고 나는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힘을 믿어요. 오스트리아에 4개월 있는 동안 몇몇 대학들에 강연을 다녔어요. 내 책이 안 나온 나라에는 책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그림책을 들고 다니면서 한국 책이 이렇게 생겼다, 설명했는데 다들 너무나 좋아했어요. 내용을 알아서가 아니라 이미지로 전달되는 게 충분히 있는 거죠. 설명 없이도 보이는 것. 그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게 그림책인데 어떻게 안 좋아하겠어요.
 
그림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취미로도 그리시잖아요.
나는 브뤼헐 그림을 좋아해요. 난해한 그림은 읽어낼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브뤼헐 그림은 매우 구체적으로 삶이 보이잖아요. 그 사람 그림 앞에서 정말 오랫동안 서 있었어요. 큰 화폭 안에 너무나 많은, 서민과 아이들의 삶이 들어 있는 거예요. 피카소의 그림은 봐도 잘 모르겠어요. 거기서 뭔가 읽어낼 수 있는 건… 이렇게 얘기하면 이거 같고, 저렇게 얘기하면 저거 같고 그런 거예요. 아마도 그 다양한 층이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거겠지만요.
 
그림을 보는 것과 직접 그리는 건 또 다른 문제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6학년 때 은희라는 애가 있었어요. 걔는 얼굴이 백지장 같이 하얬어요. 너무 말랐고 손이 그렇게 하얗고 가느다랄 수가 없어요. 쉬는 시간만 되면 애들이 은희한테 그림 한 장 받고 싶어가지고 줄을 섰어요. 걔는 연필을 항상 길게 깎았어요. 힘도 없는 손으로 이렇게 슥슥 하면 형체가 나타나는 거예요. 마술 같았어요. 그런데 은희가 죽었다는 소리를 나중에 우연히 들었어요. 그림이 하얀 백지에서 탄생하던 믿어지지 않는 순간들과 은희가 죽었다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엉켜 버렸어요. 그래서 나는 은희 흉내를 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걔처럼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고. 확인할 수 없던 이상한 슬픔 그런 게 있기도 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선 하나만 그을 수 있으면 좋겠다.’가 소원이었어요. 남편한테 ‘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그림 좀 배울래.’ 그랬더니 남편이 ‘나도 갈래.’ 그래서 할머니들 틈에 끼어서 선 긋기 연습을 했어요. 나만 유일하게 4B연필 가지고 선만 그었어요. 다 하고 나면 팔이 새까매졌어요.
 
이제 선 긋기는 마음에 드세요?
그런데 내 선이 항상 비뚤어지더라고요(웃음). 대답이 너무 길어졌죠?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이 다 소설 같아요. 어떤 한 장면으로 기억해요.
 
듣는 동안 정말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어요.
예전에 화가 분들이랑 같이 취재를 간 적이 있어요. 놀란 게 뭐나면, 봄산에 초록이 막 올라올 때 나는 그걸 이야기로 받아들이는데, 화가 한 분은 그걸 색깔로 엄청나게 표현을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나 안테나가 다르구나, 처음 느꼈어요. 너무너무 다른 거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