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고양이는 알고 있다_이래저래 나는 고양이에게 현혹되고 말았다


이래저래 나는 고양이에게 현혹되고 말았다

 
 
 어릴 적에 할머니 집에서 키우며 ‘나비’라 부른 누런 털의 고양이는 밥 먹을 때만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뿐, 온종일 제멋대로 동네를 쏘다녔다. 나비의 행적은 늘 묘연했다. 밥그릇을 싹 비운 뒤 펄쩍 장독대 위로 뛰어올라 옆집 지붕 위로 날쌔게 건너간 나비는 눈앞에서 바람처럼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도 “광에 쥐새끼들이 극성인데, 밥값 않고 어딜 쏘다니냐?”는 할머니 말은 용케 알아듣고는 다음 날이면 죽은 쥐를 할머니 눈앞에 보란 듯이 던져 놓았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양이는 영물이야, 영물.

나는 어릴 적 내내 그 누렇고 커다란 고양이가 무서웠다. 아니 세상 고양이는 다 두려웠다. 만화책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누군가를 저주하는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으며, 어린이 잡지 여름호 납량 특집에는 고양이를 죽였다가 복수를 당하는 무시무시한 얘기가 실리곤 했다. 나는 정말 고양이가 영물이라고 믿었으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고양이는 알고 있다>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얼른 책을 집어 들었다. 암만, 고양이 그 영물이 우리가 뭘 하는지 다 알고말고.
 
 
그런데 전성희 작가가 들춰낸 고양이의 비밀은 상상 이상이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우렁차게 울어대는 신통력이 있는가 하면, 사람을 유인해서 몸을 바꿔치기하는 마법을 부리고, 전화를 대신 받아 사람처럼 말하는 재주를 갖고 있다.
도시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동정이나 받는 가여운 고양이의 모습이 아니다. 작가가 은밀하게 말하는 고양이들은 인간 세상을 멋대로 휘젓고 다니면서 쥐락펴락한다. 아이들은 신비로운 고양이에 빠져들고, 담임선생님이 실제로는 고양이라는 말도 믿어버리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분명 고양이다. 아이들의 감정을 대변하려고 혹은 아이들을 위로하려고 등장했다가 엔딩에서는 어물쩍 빠지고 마는 조연이 아니다. 이 책에서 활약하는 고양이들은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말든, 이해하든 말든 제 길을 간다. 어린아이와 몸을 바꾼 용의주도한 고양이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테고, 선생님 노릇을 한 고양이는 또 어디선가 꼬리를 감추고 아이들을 가르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고양이들의 뒷얘기가 궁금해진다. 도대체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냐고? 설마 지금 내 다리를 쓰윽 훑으면서 지나가는 저 고양이가 신비로운 비밀을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 모든 고양이를 의심하게 된다.
작가의 상상력에 말려들었다는 얘기다. 치밀하고, 빈틈없는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는데, 다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그물망에 걸려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신기한 고양이의 얘기를 쫓다 보면 저마다 할 말이 있는 아이들과도 마주치게 되는데, 그 아이들의 당당한 모습도 매력적이다.
이래저래 나는 고양이에게 현혹되고 말았다. 분명 고양이는 다 알고 있다!
 

글 l 김해원 (아동청소년문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