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사전을 삼키다』 저자 인터뷰 번외편

[진로 탐색 가이드] IT 회사의 사전 기획자 정철을 만나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인문학적 소양은 기업에서 일하는 데 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기업에서는 실제로 언어, 역사, 철학 등 인문학적 지식은 거의 쓰임이 없을까요? 기업들은 이공계 전공자들만을 환영할까요?
 
이런 궁금증을 안고 IT 기업인 카카오에서 사전이라는 인문학적 콘텐츠를 다루고 있는 정철 작가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작가님은 네이버, 다음을 거쳐 현재 카카오에서 웹사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포털의 거의 모든 사전 서비스의 초기 형태를 디자인한 분입니다. 그의 대학 전공은 지질학. 기업에서 환영하는 전공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초 학문인 지질학을 전공하고 언어, 역사, 사전 등을 좋아하던 그는 어떻게 IT 기업에서 일하게 되었을까요? 그의 인문학적 소양과 지적인 관심사들은 회사 업무에 도움이 되고 있을까요?

현재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구체적으로 소개 부탁드립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사전 서비스 전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출판사나 대학과 협의해서 새로운 사전 콘텐츠를 들여오기도 하고, 이용자가 웹사전을 편리하게 검색하고 참조할 수 있도록 기존의 기능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기능을 만들기도 합니다. 제 책을 보면 아시겠지만 네이버에서 일할 때는 영한사전과 한영사전이 동시에 검색되는 기능을 만들었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콘텐츠를 들여오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옮겨와서는 한 단계 나아간 사전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웹에서 모은 100만 건의 예문을 영어사전 안에 넣었고, 외대에서 만든 다국어사전 콘텐츠를 최초로 서비스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 물론 저는 개발자가 아니기 때문에 기능을 실제로 구현하는 일을 하는 건 아니고요, 어떤 서비스를 만들면 좋을지 고민해서 회사를 설득하고,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보자고 디자이너와 개발자에게 설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IT 기업의 기획자는 다 그런 일을 하죠.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서비스에서 개선할 점을 찾거나 사용자 피드백을 받아서 이후 추가했으면 하는 것들을 정리한 다음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에게 설명하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디자인이 원하는 대로 나왔는지 확인하고, 생각과 다르게 나왔으면 이런 이유 때문에 이렇게 수정했으면 좋겠다고 디자이너를 설득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개발자가 구체적인 서비스를 만들게 되는데요, 그 여러 파트너들 사이에서 전체 과정을 컨트롤하고, 테스트도 하고, 계속해서 문제점을 찾죠.
 
제가 생각하는 기획자는 개발과 디자인 이외의 모든 것을 다하는 사람이에요. 웹사전 기획자도 마찬가지고요. 다만, 웹사전 기획자는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높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전의 특성은 무엇이고 어떤 요소가 있는지, 그중에서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지를 기획에 반영해야 하니까요. 저는 기존의 종이사전 콘텐츠만으로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볼 여지가 적어서 언어학을 공부했습니다. 언어학에서 배운 개념들을 사전 서비스에 적용했죠. 또 어학에 관심이 있으면 유리해요. 제 경우 일본어는 사전 콘텐츠를 보면서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체크할 정도로는 공부했고, 다른 언어들도 그 안의 요소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정도씩은 공부했습니다
    
사전 콘텐츠에 문제가 있다는 건 어떤 뜻이죠? 문법적인 오류, 오자 같은 건가요?
 
영어사전 콘텐츠를 수정하면서 기존의 사전에 얼마나 오류가 많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걸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예전의 사전 편찬자들이 좀 오만했다고 할까요? 사람들이 실제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들 머릿속에 있는 문장을 예문으로 적어놓은 경우가 너무 많아요. 안 쓰는 말이 많은 거죠. 정작 필요한 말은 없고요. 그런 사전을 참고해서 번역이나 작문을 하니 그 나라 사람들이 보면 이게 무슨 말이야, 하는 거죠. 우리는 그런 말 안 써~~.
안 쓰는 말을 발견했으면 그걸 없애고 새로운 말로 대체하나요?
 
그렇게 하기보다는 웹상의 예문들을 많이 확보해서 그걸 같이 노출해줍니다기존의 콘텐츠를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종이사전 편찬자들이 만든 콘텐츠를 가져와서 웹상에서 보기 좋고, 편리하게 찾아볼 수 있게 바꿔주는 사람이죠. PC에서 다음 사전에 들어가 보시면, 왼쪽에 있는 건 기존의 종이사전 콘텐츠이고 오른쪽에 나오는 예문들은 웹에서 새로 확보한 것들이에요. 물론 종이사전에서 큰 오류가 발견되면 출판사 쪽에 알려서 수정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다른 예문을 보여주며 사용자 스스로가 판단하게끔 하려고 합니다. 편찬자가 직접 쓴 문장은 이렇지만, 실제 사용례는 조금 다르다. 함께 보여주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형태로요. 사람은 사전의 여러 요소를 웹에서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 하는 편집의 방식에만 개입하고, 콘텐츠가 바뀌는 것은 가능하면 자동으로, 기계적으로 이루어지게 합니다. 그래야 편집의 객관성이 확보되니까요.
 
기획자도 개발자들이 쓰는 기술을 알아야 하나요?
 
편집자가 인쇄 공정을 대략적으로 알 필요는 있지만 직접 기계를 돌릴 줄 알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떤 식으로 기계가 돌아가는지 알면, 이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닌가요 하고 지적을 할 수 있죠. 그 정도면 됩니다. 기획자가 그 이상을 알면 오히려 개발자가 싫어할 수도 있고, 선무당이 사람 잡을 수도 있어요. 물론 개발자들이 이야기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되죠. 어떤 기술이 있고, 그걸로 어떤 것들을 구현할 수 있는가 정도만 알면 됩니다. 그러니까 기획자라는 직군은 진입장벽이 그리 높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기술보다는 오히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해요. 갈등을 푸는 능력 같은 거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작업하는 거니까. 그런 다음에는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말이 되게 설명할 수 있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 쪽에 이런 서비스가 없더라, 불편하니까 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니즈, 혹은 불편한 점을 발견해서 이렇게 하면 보완할 수 있다, 어떤 서비스나 기능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다고 주변 사람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으면 기획자가 될 수 있습니다.
 
IT 기업의 사전 담당자라면 굉장히 희소한 자리일 텐데, 어떻게 그쪽으로 경력을 쌓게 되셨나요?
 
첫 직장은 IT 회사이긴 했지만 사전 쪽은 아니었어요. 메신저 서비스 같은 걸 하는 곳이었죠. 거기서 직장 생활을 4년쯤 했는데, 뭐랄까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기왕 일할 거 좀 즐거운 걸로 하자며 탐색을 시작했습니다. 탐색의 결과가 포털 사이트의 사전 서비스였고요. 그때는 사전 서비스가 막 시작되는 단계라 허술한 게 너무 많았고, 내가 가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책에도 쓴 것처럼 기획서를 작성해서 당시 네이버 사전 쪽 담당 팀장을 찾아갔고, 결국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죠. 네이버에서 4년을 일한 후, 다음 쪽에서 제가 생각하는 대로 사전을 만들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을 해와서 회사를 옮기게 되었고요.

그렇게 몇 년을 일하다 보니 어느새 셀프 브랜딩이 된 면이 있습니다. 사전은 정철이 하는 거지 뭐, 정철이 잘하고 있잖아. 회사 안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은 거죠. 게다가 IT 기업 안의 사전 서비스, 어찌 보면 약간 소외된 일이라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열심히 할 생각만 있으면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겁니다. 다른 일들을 한 적도 있지만 사전을 안 한 적은 거의 없어요.
 
IT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다면, 예전에 제가 했듯이 자기가 그 일을 정말 하고 싶은지 기획서를 한번 써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면 알 수 있거든요. 내가 지금의 사전 서비스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구나, 없구나를 알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문서를 쓸 수 있다면 트라이해보는 겁니다. 수시로 채용하는 곳도 많으니까요. 그 기획서를 보고 다른 서비스에서 채용할 수도 있어요. 사전에 대해 이 정도의 기획서를 쓸 수 있는 사람이면 다른 것도 잘할 수 있을 거다, 이런 생각으로요. 자기 생각을 담은 문서를 써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입니다. 기획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예요. 계속 얘기를 해서 이걸 왜 해야 하는지 공감을 얻어내야 하니까요.
 
작가님이 네이버에 입사할 무렵에는 우리나라의 IT 산업이 확장하던 시기라 인력도 많이 필요하고, 여러 가지 모험적인 시도가 많이 이루어졌을 것 같습니다. 현재의 IT업계에도 기획안을 들고 무작정 찾아온 젊은이에게 기회를 줄 만한 여유가 있을까요?
 
그 정도로 성의를 보이고,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어딘가에서 뽑아줄 겁니다. 그렇게 능동적인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공채에는 많이들 지원하지만,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분야를 딱 찍어서 자기만의 기획안을 만들고, 그것을 자신 있게 들이대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공모전 같은 거야 많지만 상당수가 공허한 기획이죠. 서비스 기획안은 말이 되어야 하고, 구체적인 실현이 가능해야 해요. 위키를 하나 개설하면 사람들이 와서 자발적으로 참여해줄 거야, 이 정도 생각으로는 안 되죠. 사용자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데요. 사람들이 몰려들게 하려면 주변 사람들을 전부 동원해서 마중물을 부어주고 시동을 걸어야 해요. 그다음에도 그들이 잘 정착하고 있는지, 주변에 입소문을 내고 있는지 계속 지켜보고 문제가 있으면 그때그때 조정해줘야 커뮤니티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서비스 하나를 런칭하는 게 포털 입장에서도 얼마나 어려운데요. 우리는 '가드닝'이란 표현을 씁니다. 정원을 만들어놓고 잡초도 뽑고 비료도 주고 살충제도 뿌리고. 이런 걸 다 염두에 두고 기획서를 써야 합니다.
 
회사에서 보는 건 이런 노력이에요. 이 정도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든 잘 해내겠구나. 기획서 내용도 중요하지만, 거기 담긴 그 사람의 고민, 논리적 사고, 설득력, 성실함 같은 걸 더 많이 봅니다. 회사에서 누군가를 설득해서 일을 추진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하고 싶은 일보다는 시키는 일 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럴 경우에도 이 사람은 이렇게 헤쳐 나가겠구나 하는 가능성 같은 걸 보죠. 

채용 과정에 실무진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나요?
 
그럼요, 많죠. 그때마다 느낀 게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기본적인 분류 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아주 쉬운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을 못 해요. 예를 들어, 인물 정보 관련 서비스를 한다면 사람에게 속성값으로 뭘 줘야 하느냐고 물어요. 그러면 2개 이상 대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생년월일, 성별... 그다음부터는 얘기를 못해요. 직업도 있고, 고향이나 학교, 저서명, 작품명, 앨범명 등등 많잖아요. 사람에 따라오는 여러 속성값들. 뭐가 있다고 얘기하면 알지만 스스로 떠올려서 바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해봤으면 가볍게 얘기할 텐데, 거의 얘기를 못해요. 많아야 3, 4개 정도? 자기가 지원하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평소에 정말 면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고민해야 해요
    
IT 기업에는 작가님 같은 기획자들도 있을 테고, 그들의 기획을 실제 서비스로 구현해주는 개발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로 어떤 전공이나 경력을 가지고 있나요, 그들의 전공이나 경력이 회사 업무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나요?
 
디자이너는 미대가 많고, 개발자는 공대가 많기는 하지만 전공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시키든 안 시키든 알아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랑 협업해서 개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일을 더 잘해요. 프로그래밍은 전공했느냐 안 했느냐보다는 실전 경험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사람들이랑 어울려 이것저것 해보는 거죠. 기획도 마찬가지구요. 기획 쪽엔 요즘 문헌정보학과가 많아지긴 했어요. 데이터를 만지는 일이다 보니. 하지만 다른 전공도 다양하게 많아요. 몇몇 눈에 띄는 과가 있긴 하지만 어디가 대세다 그런 건 없어요. IT 쪽이 워낙 변화가 심한 분야다 보니.
 
작가님이 보시기에 어떤 사람들이 IT 기업의 기획자 혹은 개발자로 일하기에 적합하다, 하는 성향, 특징, 아니면 조건 같은 것이 있나요?
 
일단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신나게 만들 수 있도록. 그리고 트렌드에 민감하면 좋구요. 새로 나온 서비스를 많이 써보고, 어느 서비스에서 이런 기능을 써봤는데 좋더라, 우리도 만들어보자. 이런 제안을 많이 할 수 있으면 좋지요. 본인이 실제로 구현하지 않더라도 일 돌아가는 플로우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이해력도 필요하고요.
 
창의적이고 새로운 걸 내놓는 건 그리 큰 부분은 아니에요. 그보다는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거나 불편한 부분을 찾아서 보여줄 수 있는 능력. 여기서 걸리고 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이 이탈하고 있다. 이런 걸 찾아낼 수 있는 눈이 중요합니다. 서비스를, 이용자를 관찰해야 하죠. 여기서 이런 걸 해주면 사람들이 좀더 편리하게 쓸 수 있겠구나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네이버나 다음 같은 데서 충분히 일할 수 있어요. 전공이나 스펙과 무관하게요.
 
웹서비스라고 하면 예전에는 그래도 새로 만드는 것들이 많아서 크리에이티브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서비스를 새로 잘 안 만들어요. 이제는 반복적인 일들이 많아졌죠. 지도 서비스를 예로 들면, 지도에 나오는 정보의 정확성이 중요하거든요. 가게들 바뀌는 걸 계속 업데이트해줘야 하죠. 3개월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그 가게가 지금도 있는지 확인하는 일 따위를 끝없이 해줘야 해요. 4년에 한 번씩 오는 월드컵이나 올림픽도 그렇고, 선거도 있죠. 이런 반복적인 일을 무한히 해야 하죠.

 
국내 포털 서비스가 전반적으로 정체 상태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 다른 말로 하자면 원숙기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앱도 마찬가지고요. 사람들이 쓰는 앱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잖아요. 그 가운데서 선택 받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되었죠. 혁신적이고 놀라운 기능보다는 작지만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일상에서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앱을 만드는 게 나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크리에이티브한 능력도 필요하지만, 반복적인 일을 잘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IT 기업의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그렇게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아요. 거의 대부분의 직장이 그런 것처럼.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크리에이티브하게 일하는 것보다는 크리에이티브하게 놀 방법을 찾는 게 낫다. 재미있게 잘 노는 사람이 직장에서도 잘할 수 있다. 에너지를 보충하는 거죠. 알파고 충격 이후 사람들이 위기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데요, 기계가 할 수 없는 게 잘 노는 겁니다. 기계가 못하는 걸 해야 해요. 재미있게 잘 노는 거요. 내가 잘 놀고, 다른 사람들과도 잘 노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직업이 될 수도 있고요. 일에서 보람을 찾는 것도 물론 시도는 해볼 만한데, 그렇게 만족하면서 살 수 있는 일이 결코 많지 않아요. 다 나름의 괴로움이 있죠. 어떻게 그 재미없는 일을 재미있게 해볼까를 고민하고, 잘 노는 스킬을 연마하는 게 중요합니다. , 내가 왜 지금 이렇게 놀고 있는가, 그에 대한 생각은 놓지 말아야죠.
 
요즘 1, 2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럼 일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재미가 없으니 조금 더 생각해보고, 조금 더 다녀봐라 이런 뜻도 되는 건가요?
 
, 맞아요. 저희 회사에도 금방 그만두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친구들의 상당수가 실제로 최선을 다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맛을 볼 만큼 봤다고 생각해요. 그 정도로 맛을 봤다고 하면 앞으로 볼 쓴맛들은 어쩌려고 하나 싶기도 해요. 일 자체가 원래 재미없는 것이다, 이 전제는 알고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재미없는 가운데서 그나마 재미있는 게 뭘까를 고민하는 건 맞지만, 끝까지 재미있는 걸 찾겠다고 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할 수도 있어요.
    
덕업일치로 포장되었지만 내가 항상 재미있게 일하는 건 아니다, 이런 뜻인가요?
 
당연하죠. 회사에서 사전이 아닌 다른 일을 한 기간도 있었습니다. 사전 일이 업무의 5퍼센트밖에 안 되던 시기였죠. 팀장으로서 관리 정도만 했어요. 좋은 사전이 나오기 위해서 팀원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세팅해줘야 했거든요. 이 일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외부의 여러 가지 일들을 막아야 하는 상황, 그런 일들이 꽤 생기더라구요. 경력이 쌓이면서 관리자급이 되면 더 자주 그렇게 되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나름 덕업일치의 삶을 사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이 항상 즐거운 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일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울 수만은 없는 거잖아요. 제가 책을 쓴 것도 회사 일 때문에 지치고 힘든데 뭔가 낙이라도 찾아보자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끄적거리던 중에 우연히 출판사와 만나 진행하게 된 거거든요. 음악 듣기도 그렇고요. 그렇게 지치고 고단한 자신을 위해 쉴 수 있는 틈, 재미있는 시간, 놀이를 만들어주세요. 지겨운 회사 일 가운데서도 재미를 찾아보시고, 안 찾아지면 밖에서 찾으세요. 즐겁지 않은 시간만 계속 이어지면 우울하잖아요.

 
 
 
 
 
 
검색, 사전을 삼키다
저자 정철
출판 사계절
발매 2016.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