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필름#9 조혜란

작업하기 좋은 나이가 되었다는 것 _ 조혜란
 
<똥벼락> <할머니, 어디 가요?> 시리즈로 어린이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온 조혜란 작가를 만났습니다. 올초에 내놓은 <상추씨>에 이어 새로운 그림책 <노랑이들> 역시 바느질로 한땀 한땀 꿰매고 수놓은 그림책입니다. 바느질 작업에 대해서, 그리고 중견 그림책 작가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청했습니다.
 
 

<노랑이들>은 색깔 그림책이네요.
원색을 좋아해요. 대자연 속에 보석처럼 박힌 선명하고 강렬한 원색을 볼 때마다 삼원색 그림책을 해 보고 싶었어요. 그때가 30대였는데 50이 넘은 요즘에 와서 막연히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키고 있어요. 그러고보니 <상추씨>도 17년 전에 만들어 논 더미북 을 토대로 해서  올해에 책이 나왔잖아요. 우리 아이들이 어린이였을 때  이러 저러한  아이디어를 떠 올렸던거예요.
 
<할머니, 어디 가요?> 시리즈도 그렇고, <노야네 목장은 맨날 바빠>도 그렇고 색감이나 선이 세다고 할까? 날것의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바느질로 작업하신 <상추씨>랑 <노랑이들>은 정반대예요. 부드럽고, 순해요.

제가 부드럽고 순해지고 싶었나 보네요.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센 것보다 좋잖아요. 독자들도 그런 것을  원할 거 예요. 눈치껏 애쓴 결과가 아닐까요? 센 느낌도 그런대로 좋고 부드럽고 순한 느낌은 나름대로 좋고. 아마도 재료의 영향도 있을 것 같아요. 제 나이 탓도 있고, 작업했던 시기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이전 작업의 센 이미지를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그래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웃음). 바느질은 재료가 우리 몸을 오랫동안 감싸왔던 천이다 보니 제가 원하지 않았어도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줬을 거예요. 이후에 다시 종이에 그림을 그리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저도 궁금하네요.
 
색깔 그림책을 시리즈로 준비하신다고 들었어요.
노랑은 어린이와 노란버스, 벼를 연결시켜 표현했고. 앞으로 나올 빨강은 할머니를 표현하는데 좋은 색 같아요. 할머니, 빨간 버스, 단풍 이렇게요. 파랑은 아빠들을 표현하기 좋은 색 같아요. 아빠, 파란 트럭, 청바지 이렇게 말이에요. 우선 3원색 그림책을 내보고 독자들이 더 원하면 삼촌 이야기나 엄마이야기를 더해서 초록색 책이나 보라색 책을 더 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올해로 몇 년 되신 거죠?
20년 쯤요. 근데 아이들을 키우던 30대에는 저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았어요. 멋진 책을 내고 싶었지만 능력도 부족했고 집중해서 일할 조건도 안됐지요. 무엇보다 제 스스로 제 작업 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도 없었어요. 그런데 부족한 자신을 탓하지않고 남 탓이나 세상 탓만 했어요. 50이 넘으니 나의 한심한 면도 스스로 받아들이게 되더라구요. 게다가  그림책이라는 형식에 담아내기 좋은 아이디어만 떠올리는것 같아요. 작업하기 딱 좋은 나이고요
 
부러운 일이네요.
고립되어 작업만 하는 것보다 사회와의 끈을 가지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져요. 여기서 말하는 사회라 함은 나의 독자가 있는 학교나 도서관 책방 등 문화공간 같은 곳에 있는 이들을 말해요.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과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교사나 사서, 책방 주인이나 책과 관련 된 일을 하는 분들이지요. 우선 나를 초청한 분들이니 고마운 분들이어서 그렇고요, 무엇보다 그분들은 자신이 속한 곳의 수요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독자들을 만나기 전에  알아야 하는 것을 미리 정리해서 말 해 주는 분들 이거든요. 그분들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프로그램도 만들어 볼 수 있어요. 독자와의 만남은 매번 신선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언어로 부족하여 몸짓이나 음악을 이용한 극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그런 변화에 계기가  있었을까요?
<상추씨>가 출간될 즈음,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그림책 작가들을 대상으로 1인극워크숍을 열었어요. 별생각없이 수강신청을 했는데 연극 수업이 참 좋았습니다. 그보다 같이 수강하는 후배 작가들을 자주 만날 수 있어 좋았지요. 후배 작가들은 제게 새로운 세대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보여주었어요. 열의, 열정, 진지함 등이… 저 같은 50대 작가와는 다르게 좀더 준비하고 부딪치고 어려운 출판 현실을 나름대로 열어 나가고자 하는 작가주도적 의지가 대단해 보였어요.그런 후배들과는 같은 방향으로 같이 갈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고, 한편으로 내가 갈 방향을 더욱 강고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어떤 방향인지 궁금한데요. 
후배들과 같이 갈 방향은 더 많은 프로그램 개발과 독자와의 적극적인 만남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1인극과 같은 형태를 같이 해 나가는 것과 이후 출판시장의 변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정보 교류하는 것이에요. 제 갈 길을  강고히 해야겠다 생각했던 부분은 그간 해왔던 작업 중에 시리즈 작업을 용기 있게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업과 우리 세대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을 더 용기 있게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많은 이미지의 자극을 필요로 하기때문에  때때로 찾아 나서기도 하는데 풍경인 경우도 있고 사람인 경우도 있어요. 독특한 자기 세계가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나를 더욱 창조적으로 만들어 주지요. 그리고 또 건강한 자연을 만나면서 내 의식을 정돈 시키기도 하고 그러는 동안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도 받아요. 
 




선생님 작품에는 일반적인 내러티브에서 벗어난 지점들이 있어요. 어찌보면 맥락없을 수도 있는데,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그건 억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더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그 간극을 좀 메꿔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웃음). 논리적인 사고를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대신 창의성이 강하니까 괜찮아요. 창의적이라는 것은 느닷없이 생겨나는 것이라면서요. 다행이지요. 느닷없는 사고나 이미지를 앞뒤로 연결시킨 것이 그림책이잖아요. 뚝 떨어진 그림들을 문장으로 연결시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그림책이니까요? 저 같은 사람이 하기에 딱 좋은 매체지요?
 
<노랑이들>에서 아이들이 노란 버스를 타고 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걸 하고, 또 다시 버스를 기다리잖아요. 저는 일탈의 코드로 읽었어요.
시리즈로 해 본다면 계절에 따라, 주제에 따라 다른 일탈을 그려볼 수도 있겠네요. 여기서는 벼라는 식량 위에서 방방 뛰는 것은 금기 같은 거예요. 왠지 일탈은 금기를 깨는 것 같고요. 잘 익은 벼가 있는 논을 보면 기분 좋아서  한 번 쯤 해 보고 싶었던 놀이. 여기서 일탈의 끝은 허수아비인데 농부를 대신한 표상이고요. 일탈의 장소인 들도 멀리 있지 않아요. 아이들이 사는 집과 들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 전경에서 보여줬어요. 아이들은 자고 일어나 새로운 일탈을 꿈꾸며 매일 노란 버스를 또 기다리고요. 정작 작가인 저만 작업하는 내내 벼 위에서 뛰면 농부 아저씨한테 혼나는데… 하는 걱정과 불안을 계속 해야만 했어요 .
 
쌀이니까요?
농작물에 대해 숭배하는 게 있잖아요. 그러나 저는 벼가 매트리스 같은 것으로 느껴지기도 해서 이렇게 표현했어요. 그래도 그렇게 막되먹은 애들처럼 놀아도 되나? 하고 걱정했는데… 색으로 이해시키면 별 문제가 없겠구나 싶어서 그냥 밀고 나갔어요.
 
어린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보는 동안 즐거워라.”
“너희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달님처럼 누군가가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것은 커다란 사랑. 커다란 사랑은 너희들을 무조건 믿고 지지해 준다.” 


 
전에 다른 인터뷰를 보니, 수정하는 것보다 다시 그리는 게 낫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화선지에 먹으로 그리다 보니 그 위에 다시 덧칠 하는 것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그렇게 말했었나 봐요. 한때는 여러 장을 그리고 그중 하나를 골라서 쓰기도 했어요. 요즘은 첫번째 그린 그림을 우선으로 쓰는 편이에요.
 
그렇군요. 완벽주의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저는 완벽주의자가 절대로 아니에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지요. 작업이라는 긴 여정이 때론 우울하고 비관스럽게도 했어요. 앞으로는 그렇게 어려운 작업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가끔 포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것만 할 거예요.
 
내 작업의 뿌리는 이것이다, 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까요?
대자연이 아닐까 해요.  대자연은 모든 생명을 포함한 거겠지요? 다행히 저에게는  풍부한 감정이 있어 내 나름의 자연을 멋대로 이해하며 창작을 하고 있어요. 감정이 많아 때로는 사람을 다치게도 하고, 도리어 자신을 힘들게도 하지만 이런 나를 반성도 하고 때론 나르시즘에 빠지기도 하면서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50이 넘으니까 자신만이 가진 남다른 개성에  대해서도 스스로 관대해지네요. 이런 태도 역시 앞으로 재미난 작업을 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