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그림책 『평화란 어떤 걸까?』 하마다 게이코 작가 인터뷰

한중일 세 나라의 공동 기획/출판 프로젝트, 평화그림책 시리즈의 작가 하마다 게이코가 2012년 가을 한국을 방문했다. 전쟁부터 일상까지, 평화의 크고 작은 개념들을 작품을 빌어 이야기하고, 평화 그림책 시리즈의 일본 출판을 담당하는 고단샤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평화그림책 시리즈를 같이 작업한 동료 작가이자, 이번 한국 방문에 동행한 일본 아동문학계의 거장 다시마 세이조와의 인연도 인터뷰를 통해 소개된다.
 

평화 그림책 시리즈를 만들어 나가는 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벌써 몇 년이 됐나... 2005년에 일본의 그림책 작가 네 명이 한국과 중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평화 그림책을 만들어보지 않겠습니까, 하는 제안을 먼저 했다. 이 시리즈의 취지라고 하면 일본이 과거에 저질렀던 일,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파악한 지점에서부터 평화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일본이 그런 그림책을 만들자고 요청을 했을 때 한국, 중국의 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을 했다. 그런데 같이 만들어봅시다하고 흔쾌히 받아들여주셔서 굉장히 감사하고, 반가웠다.
 
 
<평화란 어떤 걸까>와 비슷한 성격의 작품들을 기존에도 많이 작업해왔는지?
독자분들에게는 두 가지 반응이 왔다. 먼저 기존 내 작품들과 다른 이례적인 그림이다, 하는 반응. 그리고 정반대의 반응 또한 있었다. 목숨의 소중함, 탄생의 기적 같은 놀라움이랄까 그런 주제들은, 최초에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던 때부터 내 작품 속에서 변함 없이 유지되어왔다고 생각한다.
 
 
평화 그림책 시리즈는 지금까지 네 작품이 출간됐다. 인상 깊었던 다른 작가의 작품이 있었나.
어느 것 하나를 특별하게 짚어낼 수 없을 정도로 모두 다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건 왜냐면 처음 시작하는 과정에서부터 같이 토론을 하고, 의견을 내고 말하자면 다 같이 만들어온 작품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만든 것처럼 소중하게 느껴져서 어떤 한 권을 딱 고르기는 조금 힘들다.
 
 
토론을 하며 같이 만든 작품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토론 과정에서 작품에 참여한 작가들이, 이 책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공통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은 어떤 것인가.
아이들에게 전쟁의 슬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라는 것이 가장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나라, 한중일 세 나라에서 어떻게 연계를 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역시 제일 중요한 건 평화로운 세상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는 우리들의 염원이었다.
 
 
본인의 작품인<평화란 어떤 걸까>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가장 부각시키고 싶었던 부분은?
책의 말미에 남자아이가 나와서, '평화란 내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는 '평화란 네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하는 것', '평화란 우리 둘이 너와 네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이 마지막 장면이 작품을 통틀어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평화란 어떤 걸까>는 평화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그림책이다. 초반부의 '전쟁을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마지막 결말은 방금 말씀해주신 문장 '너와 네가 친구가 되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 정의의 배치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변화하는 걸 볼 수 있다.
<평화란 어떤 걸까>는 스토리가 없는 그림책이기 때문에 어떤 장면을 어디에 넣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질 수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에 비행기를 그리면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라든지 폭탄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전쟁과 직접 관련된 것을 맨 앞에 둔 것은, 그 뒤에 나올 사랑하는 사람과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다 라든지 배고플 때는 밥을 먹을 수 있다라든가 잠을 푹 잘 수 있다는 것이든가 이런 평온하고 일상적인 모습들이 사실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이것이 힘들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기본적으로는 아이들의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볼 수 있는 평화를 전달하고 싶었다.
 
 
전쟁이 없어야 하고 폭탄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평화에 대해 익히 알려진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일상적인 풍경에서 길어올린 평화의 정의들은 대부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이 책에 담은 평화의 정의는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이었는지 궁금하다. <평화란 어떤 걸까>에서 평화를 풀이하는 여러 가지 문장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도 꼽아주었으면 한다.
이 책에 나오는 그런 평화의 정의들이라고 하는 것은 평소부터 쭉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그림책으로 그릴 수 있다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예를 들면 배고파서 죽은 아이라든가,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가 있거나 한다면 이것은 평화로운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학교에 갈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평화로운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상 속의 여러 장면을 보면서 평화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쭉 계속 가져왔다.
 
가장 표현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라고 하면, 책에서 자기가 싫은 일은 싫다고 혼자라도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부분. 그것을 표현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이것은 일상 생활 속에서 평화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데, 목숨을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 옳지 않다고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계속 생각해왔다. 좋아하는 장면은 전부 다다(웃음).
 
 
이번에 같이 한국을 방문한 다시마 세이조 작가와는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는지.
다시마 선생님과는 굉장히 오래된 인연이다. 그림책 작가를 시작하기 전부터, 내가 20대였을 때부터 굉장히 좋아했다. 존경하던 작가였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60년대 말 쯤에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서 예술가들이 큰 판넬을 만드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다시마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평화란 어떤 걸까>가 평화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시마 세이조의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는 평화가 사라진 풍경을 그린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상반된다. 서로가 작업한 평화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적이 혹시 있는지 궁금하다.
다시마 선생님하고는 작품에 대해 굉장히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다시마 선생님 작품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는, 접근 방법이 대단히 독특하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래서 그 싸워서 죽어버리는 그 허무함, 분노, 슬픔, 그런 게 죽은 사람의 눈을 통해서 표현되지 않는가.
 
다시마 선생님은 내 책에 대해 그렇게 비판적인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웃음). 언제나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면서 기운을 북돋아주셨다. 나 자신도 이 책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무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다. 여태까지 사용했던 종이들을 조각조각 내어 붙이는 기법을 사용했던 건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기법을 쓴 것이다.
 
 
많은 한국의 어린이 독자들이 일본에서 온 동화와 그림책의 읽으며 자라고 있다.
나 역시 그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내 작품 가운데서도 80% 정도는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다. 지금은 한국 그림책과 동화도 일본에 많이 번역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아이들이, 서로 상대방의 나라의 책을 읽으면서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현재 만들어졌다고 생각을 한다.
 
 
일본에서 평화 그림책 시리즈를 출판하는 일본의 도신샤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도신샤는 원래부터 '가미시바이(かみしばい[紙芝居] : 그림 연극)'를 주로 출간해온 출판사다. 가미시바이는 2차 대전 때 군국주의를 부추기는 작용을 하기도 했었는데, 도신샤는 그것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까 반동으로 가미시바이를 사용했다. 평화를 아이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도구로서 가미시바이를 널리 보급하게 된 케이스다. 평화에 대한 그림책도 굉장히 많이 내고 있고, 가해자 의식이라는 것을 굉장히 강하게 갖고 있는 회사다. 그래서 평화 그림책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그들의 출판사에서 꼭 내고 싶다고 얘기했었고, 지금도 총력을 다해서 평화 그림책 시리즈를 내고 있다.
 
 
평화 그림책 시리즈는 위안부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바로 권윤덕 작가의 <꽃할머니>란 작품을 통해서였다. 일본에서 이 작품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그런 역사적인 사건이라든지 자기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서 눈을 감고 모른척 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림책 뿐만 아니라 위안부를 다룬 사진전이 있었는데, 그것조차도 중지를 시키거나 그만두게 하는 여론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평화 그림책 시리즈의 취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2006년도에 권윤덕 선생님이 <꽃할머니>를 내겠다고 처음 의견을 냈을 때부터 이 책이 나오지 않으면 이 프로젝트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다.
 
 
<평화란 어떤 걸까>에 나오는 여러 평화에 관한 정의들, 이 모든 정의를 아울러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표현을 하자면 목숨. 한 단 사람의 목숨이라도 그것이 존중되지 않으면 평화란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힘 없이 연약한 사람들의 생명. 목숨. 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로서 갖고 있는 소명이 있다면.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할 생각인가.
크게 얘기를 하자면, 연약하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으로 생각하는 건 여자아이들이 가지는 여러 가지 핸디캡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아이에 비해서 차별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차별을 당하지 않아도 이미 의식적으로 '난 여자라서 못해' 그런 생각부터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아이를 특별히 차별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고, 여자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고 즐겁게 여자아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
 
 
 
기획 : 사계절 출판사 l 통역 : 박종진 l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