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삶이 살아 숨쉬는 『임꺽정』을 읽고 : 정혜숙

제3회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독서감상문대회
대학일반부 대상 수상작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란 국가제도를 방패 삼아 민중을 볼모로 만행을 저지르는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 히 봉건사회에서는 권력층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민중들이 희생당해 왔다. 일찍이 허균은 민중을 항민· 원민· 호민으 로 구분하였다. 자신의 운명을 덤덤히 받아들여 항상 즐겁게 사는 이들을 항민, 세상에 대한 불만을 가득 가지고 있지만 표출할 수 있는 원민, 마지막으로 사회의 모순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기회만 주어지면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이를 호민 이라 하였다. 역사의 발전은 여론의 집중적인 공세와 민중의 봉기로 이루어졌다. 가장 나약하면서도 가장 끈질긴 힘 을 발휘하는 민중, 제도적 모순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사회가 민주주의를 향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세상은 권력층의 안일한 보수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몸부림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세상의 주체로 땅 위에 굳건히 서고 싶은 사나이 임꺽정. 벽초 홍명희 의 일생일대 유일한 작품이자 미완의 작품인 『임꺽정』에서 나는 조선의 최하층민인 백정이 세상을 행해 내지르는 고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작가 홍명희는 1928년 11월 21일부터 이 소설을 연재해왔다. 홍명희의 아버지 홍범식은 나라가 일제의 손에 들어간 1910년에 자결을 했다. 벽초에 대한 아버지의 유언은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하나는 나라를 되찾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친일을 하지 말고 끝까지 아버지의 죽음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홍명희의 삶은 아버지의 유언을 실천 하기 위한 노력, 그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그는 좌익과 우익에 휩쓸리지 않았고 비타협적인 민족주의 노선을 걸어왔다. 중국 망명과 3·1운동으로 인한 옥고를 치른 그가 조선사정연구회르로 통해 그의 뜻을 실천했고 , 신 간회를 창립하여 이념의 분파를 섭어나 반제, 민족해방에 뜻을 같이 한 모든 그룹게 제휴한 신간회 활동을 통해 그의 노 선을 굳건히 지켜온 것이다. 이 때가 임꺽정을 집필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가 『임꺽정』을 집필한 이유는 조선문학이 중국문학의 영향을 받아 우리 정서에 맞지 않았기에 순수한 조선의 소설 을 만들어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그러기에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임꺽정』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가져왔다 고 할 수 있다. 『임꺽정』을 읽다보면 그 시대의 생활상이나 언어들을 한눈에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생활풍토들을 사실감 있고 재치있게 서술해 놓았고,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민중의 언어가 그대로 살 아숨쉬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계몽주의적이고 지식지향적인 글들이 주류를 이루던 당사의 세태와는 대조적인 집필작업 이었다 하겠다. 이처럼 홍명희는 자신의 민족주의 사상을 문학적으로 대변하기 위해 『임꺽정』을 끈 것이다. 그것은 가장 한국적인 삶이기도 하고 민중의 욕구를 대변하는 하나의 구호이기도 했다. 민중은 지배당하는 객체가 아니라 권력 자들을 이겨낼 수 있는 주체로 『임꺽정』을 그려냄으로써 일제에게 억눌린 우리 민족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용 기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의 가장 서두에는 봉단과 이장곤의 이야기가 나온다. 모함을 받은 양반 이장곤이 김서방으로 전락하고 백정의 딸 인 봉단이와 결혼을 하여 목숨을 부지하게 되면서부터 그는 천민의 삶을 살게 된다. 그 후 누명이 풀린 이장곤이 천민 인 봉단이를 버리지 않고 그녀를 소실도 아닌 정실로 인정해주어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이다. 서슬퍼런 봉건사회제도를 뚫고 봉단이는 천민에서 양반으로 신분상승을 한 것이다. 『춘향전』과 같은 사랑이 제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 여주는 예이다. 그러나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봉단의 이야기는 한 개인이 이루어내는 개혁이자 변동일 뿐이기 에 천민들이 부러워할 수 있고 아주 작은 희망도 가질 수 있지만 , 그것은 좀처럼 이루어지기 힘든 꿈에 지나지 않은 것 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임꺽정의 활약을 보게 된다. 닫힌 세계에서 벗어나 려고 하는 꺽정이의 몸부림, 삶을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임꺽정을 우리는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있고말고. 참판도 있고 판서대감도 있고 대장도 있고 정승도 있고 , 많지 ."
"그 중 제일 꼭대기가 무어요?" "정승이란다."
"정승 위에는 아무것도 없소?'
"위에는 상감이 계실 뿐이란다. "
"그러면 상감이란게 꼭대기이구료. 내가 크거든 상감 할라요."
"그런 소리 들으면 큰일난다. "

 
어린 시절 임꺽정과 그의 어머니와의 대화 내용이다. 

어린 시절부터 임꺽정은 사회권력구조의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불만을 키워갔던 것이다. 글방에 간 꺽정이가 양반 집 아이에게 백정의 자식이라 무시당하자 그 아이를 두들겨팼고, 그런 그를 나무라는 선생 면상에다 책 을 내던지는 모습에서 꺽정이는 이미원민의 수준을 넘어서 있었던 것이다. 타고난 힘과 배포로 그는 일찍이 세상에 대 해 당당할 수 있었지만 그가 가진 백정의 신분은 그것을 펼치기에 너무나 무겁고 가혹했다. 이런 그게 세상을 향해 열린 눈을 기질 수 있었던 것은 갖바치와 만나면서부터 이다. 갖바치는 천민의 신분이면서도 양반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인 데, 당대 최고의 지식인인 조광조를 비롯해 사대부 명문 집안의 자손인 심의, 김덕순 등이 그를 따랐던 인물이다. 임꺽 정은 사돈관계를 통해 갖바치를 만나게 되고 이때부터 꺽정의 삶은 넓은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 임꺽정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의 자질을 기르고 집단을 형성하게 되며 결혼도 하게 된다. 이제 임꺽정은 양반을 제압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생긴 것이다. 『임꺽정』은 대부분 임꺽정이 두령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각각 결혼을 하게 되는 사연과, 이들 모두가 의형제를 맺어 활약을 하는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던 박유복, 이봉학에서부터 곽오 주, 길막봉, 황천왕동, 배돌석, 서림의 사연들을 재미나게 그려놓은 것이다. 

『임꺽정』을 읽으면서 줄곧 좀더 정의로운 꺽정의 모습을 기대했다. 그렇지만 꺽정은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단순한 장 사에 지나지 않는 듯 했다. 양반들의 돈을 빼앗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기보다는 자신들의 집단만 호휘호식하는 모습, 이 익을 위해서라면 양민들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모습에서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장을 넘기는 것이 조금씩 부담스럽고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왜 그런 것일까? 아마도 홍길동을 생각해서일 것이 다. 홍길동은 타고난 도력과 지략으로 세상을 꿰뚫어보고 세상을 주물럭거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도둑 질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력을 뒤흔들기도 하고 이상국을 건설하는 등 새로운 대안책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물론 김조년 씨는 생불이 된 갖바치의 세계가 끝에 등장한다면 홍명희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될 수 있다고 했 는데, 짧은 나의 소견으로 그 순서를 문제 삼지 않더라도 현실을 이미 초월해버린 갖바치의 삶이 과연 모든 민중이 선망 하는 이상적인 삶이 될 수 있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이처럼 내 머릿속에서 존재하는 신적인 능력을 갖춘 홍길동의 모습, 그것은 엄청난 관념으로 작용하여 임꺽정을 깍아내 리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임꺽정』을 현실주의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서부터 『홍길동전』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면 모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 『홍길동전』은 영웅주의 소설이기에 홍길동 그 한 명만이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그 이외에는 아무도 의견을 제시할 수 없고 사건을 해결 할 수 없다. 물론 임꺽정 또한 영웅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는 잘 배분된 권력체계를 가지고 각 두령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두 번째 로『홍길동전』은 작품의 주 제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고 『임꺽정』은 등장인물의 삶을 보여주는 데 충실했다. 『홍길동전』은 누구 누구의 삶을 써 나가기보다는 홍길동의 뛰어난 활약을 통해 문제를 정면으로 짚어내는 충격요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임꺽정』 은 등장인물 하나 하나의 삶이 존재하고 사연이 살아 움직인다. 그 속에서 당시의 생활상과 민중의 사고 방식, 그들의 소망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홍길동전』이 문제집의 똑 떨어지는 답안지라면 『임꺽정』은 시행착오도 수용할 수 있 는 풀이 과정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임꺽정』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감격스러웠던 것은 폭넓은 공간의 이동과 함께 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였다. 남. 북이 갈라져 있지 않고 조선 팔도를 누비며 다니는 주인공의 모습, 가는 곳곳마다 배어있는 우리 고유의 생활상과 민중의 언어 들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가슴 벅찬 감동을 받았다. 한편 이런『임꺽정』이 작가 홍명희가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독자들 에게 여태껏 알려지지 못했다는 것이 가슴아팠다. 『임꺽정』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시대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 다가도, 이념적인 문제로 또 얼마나 많은 우리의 문학작품들이 매장당해 있을까를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 런 문제들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통일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생각이 가슴 한복판을 밀치고 솟아나기 시작했다. 좌·우, 남· 북이 아닌 한 민족이 하나 되는 세상에서는 이념이 문학을 지배하지도 않을 것이며, 우리 문학의 주제와 소재가 한층 더 넓어져 반쪽만 존재하던 우리민족의 언어와 정서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문화적인 측면에서 통일을 바라본다면 경제를 문제 삼아 통일을 반대하던 이들에게도 통일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된다. 

서구의 문예사조가 물밀 듯이 밀치고 들어오던 시기에 순수한 우리 것 찾기에 골몰한 소설『임꺽정』. 정말 어떤 미사여 구나 고상한 인물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삶을 솔직하게 그려놓았고 민족의 열망을 있는 그대로 실어놓았기 에 다른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타국의 이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가장 가까운 것에서 우리의 가능 성을 찾고자 했던 작가 홍명희. 혜성 같은 한 명의 힘보다는 질퍽한 일상에서 싹트는 민중의 힘을 믿으려고 했던 홍명희 는 『임꺽정』을 하나의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복합적인 인간의 삶으로 승화시킨 우리 민족의 작가이다.

 
어렵고 힘든 시기이다. IMF의 한파가 서민들의 가슴을 후려치는 요즘은 멜로 영화가 잘 된다고 한다. 울고 싶어도 울 곳이 없기에 슬픈 영화를 보고 후련하게 울어버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 속에서 잠자고 싶은 나약한 감상주 의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대 우리는 『임꺽정』같이 민중의 삶과 소망을 대변해주는 생동감 넘치는 소설을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