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작 발표

제4회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대상
지영우 『할머니 밥상』

우수상 없음


심사위원: 서현(그림책 작가), 송미경(동화작가), 이지은(그림책 작가)
당선자에게는 개별 통보하였고, 수상작은 2024년 출간 예정입니다.
사계절그림책상에 응모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4회 사계절그림책상 심사평 

올해로 4회를 맞는 사계절그림책상은 응모작 190편 중 예심을 거쳐 총 40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고 본심작 중 7편을 뽑아 최종심을 진행하여 대상 한 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정성을 다해 작품을 완결하고 응모해 준 응모자들께 감사드린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시대에 우리는 인간을 뛰어넘는 신기술 앞에 서 있다. 최근 일 년 사이 챗GPT나 미드저니 등의 기술은 인간의 평범한 일상을 또 다른 차원으로 데려다 놓았다. 이제 인공지능은 지식의 편집과 응용을 넘어 창작자로 인간 옆에 와 있다. 적절한 명령어만으로도 꽤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에 그림책 창작자들은 어떤 정체성을 붙잡고 자신의 작업물을 고유하게 지킬 수 있을까? 또한 빠르게 양적 질적 성장을 보이는 한국 그림책 시장에서 그림책 작가는 어떻게 휘청거리지 않고 중심을 지켜 낼 수 있을까?
 
4회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께해 온 세 명의 심사위원과 사계절 그림책 편집부는 올해도 파주에 위치한 사계절출판사 회의실에 모였다. 늘 반가운 인사와 유쾌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시작으로 심사가 열리고 서로의 의견을 수렴하고 자신의 관점을 보여 주는 시간 또한 또 하나의 깨달음의 시간이다. 그러나 이번엔 마치 선물처럼 조금 다른 전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최종심에 올라온 7편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름이 활짝』은 여름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작품이다. 글을 거의 생략하고 진행됨에도, 친근하고 안정적인 그림, 일관성 있고 귀여운 캐릭터를 확보하여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 무리가 없다. 또한 여름이 펼쳐지는 과정을 공간을 활용해서 풀어낸 점도 좋다. 그러나 이미지에 집중한 나머지 전체적으로 그림책의 리듬감을 확보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상과 판타지의 섞임을 자연스럽게 끌어낸 만큼, 나아가 판타지가 펼쳐지는 반경을 좀 더 확장하고, 집 안의 사물이나 배경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서도 집중과 비움의 리듬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보면 좋겠다.

『언니 찾기』는 유년 시절 언니와의 기억을 다소 공포스럽고 기이한 분위기로 연출한 작품이다. 여러 장의 사진을 편집한 듯한 정지된 이미지와 다양한 시점의 배경, 사물의 동적 표현이 심리적 일렁임을 개성 있게 담아낸다. 익숙하고 친밀한 언니의 낯선 모습,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 불안과 안도의 경계를 서사적으로나 회화적으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그러나 개성 있는 표현 기법을 넘어 그림책의 화법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다음, 새로운 장르 그림책의 영역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안경 아저씨는 산책을 나갔습니다』는 게임 속 평면 세계의 틀을 가져온 반복적인 구조 안에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점층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깔끔한 화면 구성, 위트 있고 경쾌하게 풀어낸 이야기 덕분에 책을 읽은 후엔 짧은 모바일 게임을 마친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무겁고 추상적일 수 있는 욕망이라는 주제를 간결하게 풀어낸 점이 이 작품의 장점이다. 그러나 서사의 기본 줄기로 쓰인 ‘버려지는 동물’에 대해서 창작자의 고민이 좀 더 필요해 보이며, 결말에서 독자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 이상의 정서적 만족감을 확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책이 다 펼쳐질 때까지 스트레칭하세요』는 과감하고 조화로운 색감과 조형, 색종이 작업이 주는 입체감을 세련되게 풀어낸 작품이다. 또한 아코디언 북 형식으로, 한 장면씩 펼칠 때마다 독자의 양팔도 함께 쭉 펼쳐지게 하는 인터랙티브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다. 그러나 제본 방식에 기대어 반복되는 구조가 체험 이상의 심리적 자극에까지 이어지지 못한 점, 책의 뒷면을 활용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아이디어를 넘어,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할 필연성을 갖추고, 이야기와 이미지의 변주에서 비롯한 리듬감을 더해 보기를 바란다.

『문어의 여행』은 문어의 흐물거리는 시각적 형태와 능청스러운 유머를 여행 안에 잘 담아낸 작품이다. 세상 속으로 쓰윽 뛰어들어 새로운 만남을 만끽하는 문어의 여정은 소박하고도 유연한 드로잉과 조화를 이룬다. 적절한 여백과 대사, 과욕 없는 드로잉과 절제된 채색 방식들은 그림책에 리듬감과 흥을 더한다. 여행이라는 표면 서사 안에 문어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태도가 드러나서 작품을 더 풍요롭게 감상할 수 있다. 다만 다소 단순한 전개로, 강약의 리듬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할머니 밥상』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엄마 없는 손주들이라는 다소 조도가 낮아질 수 있는 설정에 함몰되지 않고 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감동을 준 작품이다. 김이 피어오르는 쌀밥과 정성스럽게 차려지는 반찬들, 달빛의 은은한 온기로 가득한 배경과 캐릭터들의 자연스러운 동작들이 포근한 그림체로 그려진다. 단정한 서사는 점층적으로 감정을 고조시키다가 결국 큰 감동과 여운을 선사한다. 그림책의 화법에 충실한 연출이 돋보이며 기교 없는 그림과 탄탄한 이야기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번 심사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본다. 보통 늦은 밤이 되어서야 의견이 모아지던 심사위원들은 점심 무렵부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본심작을 언급했다. 세 사람의 심사위원 모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할머니 밥상』을 대상작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렇게 심사위원 전원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음은 큰 기쁨이었다.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한 각자의 예찬을 주고받는 것으로 다시 한번 대상작의 검증을 거칠 수 있었다.  
『할머니 밥상』은 풍성한 밥 한 끼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일깨우고 우리의 매일을 보듬어 주는 힘이 낯설고 새로운 경험에 있지 않고 아주 평범한 매 순간에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일상의 기억을 잃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매일 해 오던 반찬 만드는 일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밥상 앞에서 손주들과 똑같은 어린아이가 되어 버렸다. 돌보는 존재에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된 할머니가 가족 안에서,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여정 안에서 보듬어지는 내용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그림책은 나이가 들고 소멸의 길을 걷는 한 인간의 여정을 새롭게 해석한다. 우리 몸 안에 새겨진 밥 한 끼의 기억, 많은 날 중 하루였고 많은 끼니 중 한 끼였을 밥을 통해 허기지고 너덜거리는 생의 수고를 변하지 않을 깊은 사랑으로 채운다. 따스한 보살핌의 기억은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닌, 현재를 움직이고 재구성하는 힘이 된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기술은 앞으로도 더 ‘소름 끼치게’ 빠르고 놀랍게 발전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지식은 시간이 지나도 소멸하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조합하고 축적하며 강해진다. 반면 인간은 그 모든 것을 소멸해 가고 내어 주며 약해지며 나이 들어간다. 알고 있던 걸 망각하고, 가졌던 걸 잃어가며 점점 흙이 되어 가며 생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 그림책은 그 인간의 연약해져 가는 생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돌아보게 한다. 
이번 심사를 통해 우리는 그림책의 본령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 그림책의 힘은 수려한 작법과 능숙한 솜씨에 있지 않고 작가를 관통하고 나온 서사와 그림에 깃든 진정성에 있다. 우리는 작가가 내뿜는 숨을 통해 우리의 숨소리, 우리의 이웃과 가족이 내뿜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고 우리가 함께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안겨 준 당선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지면으로 다 전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숨소리를 담은 소중한 작품을 사계절그림책상에 응모해 준 참가자 전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서현, 송미경, 이지은(제4회 사계절그림책상 심사위원)  
-대표 집필 송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