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을 남루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위하여

합, 체는 둘이 있어야 완성되는 아이들이다. 사실, 성장이란 혼자 태어난 세상에 홀로 서는 것을 의미한다. 수많은 성장소설들은 비로소 혼자임을 깨닫는 아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부모, 형제 그 누구가 곁에 있더라도 결국 세상을 마주보아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 합, 체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 세상을 마주한다. 아이들은 쌍둥이, 게다가 결함을 가진 쌍둥이들이다.
 
『합★체』는“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불렀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1985년생 작가는“아버지는 난쟁이였다”라는 구절을 조세희의「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빌려왔다.「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산업화 시대 소시민으로, 기능직공으로 하나의 부품처럼 살아야 했던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에 대한 애가였다면『합★체』의 아버지는 일종의 선천적 결함으로 제시된다.
중요한 것은 이 선천적 결함이 합, 체의 계급을 결정해 버린다는 사실이다. 일찍이 서정주의 시에 등장하는 결함들이 운명을 바꿔놓았다면 지금 합, 체들에게 결함은 21세기의 계급 사회를 제공해 준다. 계급이나 계층이야 18세기 프랑스혁명과 함께 사라졌다지만 엄연히 우리의 감각 안에 남아 있다.
“공”을 가지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난쟁이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합과 체가 공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한다. 보통의 아이들에게“공”은 장난감이지만 아버지에게“공”은 생계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그 누구도 생계의 수단을 가지고 놀진 않는다. 게다가, 그 일이 남이 보기엔 즐거운 유희지만 자신에게 고단한 노동일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문제적인 상황은 합과 체가 이 불편하고 고단한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합과 체는 남들보다 작다는 것을 자신의 단점이자 콤플렉스로 인식하고 있다. 알고 있기에 그들은 자신의 결함이 부끄럽고, 답답하고, 원통하다. 그래서 매년 돌아오는 신체검사가 지긋지긋하고, 합과 체를 한꺼번에 붙여서 부르는 선생님의 태도가 횡포처럼 느껴진다. 말하자면, 합과 체는 세상이 던지는 불공평한 시선에 대해 이제 막 알아가는 중인 셈이다.
 
 
물론 우리 문학사 안에는 더 가진 것 혹은 덜 가진 것에 대해 오히려 긍정적 힘을 발휘하는 주인공들도 여럿 있다. 완득이처럼 여러 가지 불리한 상황 안에서도 자신만의 룰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완득이』는 너무나 긍정적이고 아름답기에 때로는 소설적이며 허구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을 사는 것은 십대라고 해도 그닥 호락호락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합과 체는 그런 점에서 자신의 결함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십대 청소년들 대개의 모습과 닮아 있다. 자신이 업둥이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아이들처럼 십대의 청소년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결핍에서 욕망을 배운다. 합과 체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따로따로 하나의 개인으로 대우받기를, 그리고 “난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기를 바란다. 이 작지만 간절한 바람은 합과 체의 욕망이 된다. 아이들은 생애 최초로 갖게 된 간절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어떤 점에서 보자면, 계룡산으로 자기수련을 떠나는 합과 체의 행동은 만화적이며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시와 학교에서의 삶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억지 이름만을 가르쳐주었다면 산에서의 삶은 자기 자신이 발견해 나갈 스스로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키가 클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로 계룡산을 향해 떠나는 합과 체는 키도 작지만 내면적으로도 아직 덜 여문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키가 크기 위해서 계룡산에 가지만 사실상 키보다 마음이 더 커서 학교로 돌아오게 된다.
합과 체가 행하는 수련법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외양을 가꾼다기보다 세상의 그 어떤 시선에도 굳건할 수 있을 자기 강화법에 가깝다. 세상의 시선은 언제나 모범답안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어떤 존재들이라고 해도 모범답안에 100점 만점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 보자면 합과 체는 둘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지만 둘인 아이들이라서, 서로의 결핍과 결함을 나눌 수 있기에 행복할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계룡산에서의 수련 기간을 혼자 보내진 않아도 되니 말이다.
 
100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잠을 잔다 해도 마법의 시간은 기다려 준다. 공주가 성장하도록 시간은 조용히 멈춰 준다. 아이들은 방학이 지나고, 하룻밤이 지나면 어딘지 모르게 쑥 커버린 느낌을 준다. 실제 키가 클 수도 있지만 키보다 마음이, 영혼이, 정신이성숙되어있을것이다.『 합★체』는그런사람들, 평범하지만 자신의 평범함을 남루하게 느끼는 모든 아이들에게 즐거운 여가와 다정한 위로가 되어 줄 소설이다.
 
 
글·강유정(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