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진리냐고 묻는 젊은 소크라테스들을 위하여

몇 주 전, 어떤 분의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즐겨 기르던 동양란 한 분을 정성껏 다듬어서 선물로 준비해 갔는데, 시간이 일렀는지 아직 사람들은 다 모이지 않았다. 그분 댁엔 근사한 미술품과 음반이 꽤 많았다. 미술품은 전시를 위해 제작된 틀 위에 모양새를 갖추어 진열되었고, 음반도 따로 마련된 방 안에 가지런히, 그리고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감탄하는 마음으로 다양한 미술품들을 열심히 흘깃거렸고 눈치를 채신 그분은 나를 그 미술품들 앞으로 안내하셨다. 멋있는 품평회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은 LA에 갔을 때 산 거예요. 경매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는데, 내가 관심을 보였더니 바깥 양반이 그날의 최고가격이었는데도 흔쾌히 낙찰가를 불렀어요.” 그러고는 시종일관 어떻게 작품들을 구입했는지, 얼마나 비싼 값인지를 열심히 설명하셨다. 그분은 날마다 이 미술품들을 마주 보고 멋진 음악을 들으면서 어떤 정신적 교감을 나누실까.
 
 
사람들은 돈의 힘을 잘 알고 있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너무도 절실한 생존의 기본이다. 그러나 돈의 가치가 인간의 등급을 좌우하고, 물질의 소유에 의해 신분이 평가되는 지경이 오면 인간은 돈을 모시는 한갓 머슴에 지나지 않게 된다. 우리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 과를 선택하는 기준도 너무 분명하다. 정신적 성숙과 올바른 삶에 대한 성찰보다는 돈이 선사하는 물질의 향유가 그 모든 것을 보상해 주리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진 듯하다.
 
당연한 결과로 한국에서의 ‘철학’은 무관심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기피 대상이다. 학생들은 묻는다. “선생님, 철학과 나오면 뭘 할 수 있어요?” 간혹 철학에 진지한 흥미를 보이는 학생들도 차마 전공으로 선택하지는 못한다. 집안의 엄청난 반대 때문이다. 철학은 우리의 삶에 어떤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을까? 부와 권력의 직접적 수단이 되지 못하는 학문은 거부되어야 하는가? 우리 모두는 이대로 살아가도 정말 괜찮은 것일까?
 
소크라테스가 활자로 된 옷을 입고 책 속에서 튀어 나왔다. 살아 생전 단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지만, 플라톤이라는 걸출한 제자 덕분에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나눈 대화가 책으로 남겨졌다. 소크라테스는 또 한 번 운이 좋게 한 철학 교사의 손을 거쳐 생생한 법정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우리 나라에 등장하였다.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라는 책에서이다.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3시간 정도 걸리는 장중한 변론을 생방송으로 진행한다. 2500년을 관통하면서 존경받아 왔던 노철학자의 연설이지만, 그는 지금 근사한 초청 강연 중이 아니고 자신에게 사형을 언도할 법정에서 외로운 변론을 진행하는 중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 시장 거리와 시민 법정에 앉아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여러분도 오늘 아침 그곳에서 발간된 조간 신문을 읽고나서 그 법정을 참관하는 듯한 입체 영상을 경험할 것이다. 그 시대의 정치, 문화, 경제, 사상의 흐름 등을 현지 언론인처럼 친절하게 안내해 준 덕에,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주장과 의도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찾기 위해 당대의 사람들과 대화를 했고, 삶을 음미하고 성찰할 때만이 인간의 덕이 실현된다는 철학적 소신을 가졌던 소크라테스. 어찌 보면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한 진짜 이유는 이것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철학을 무시하는 한국에서도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악법도 법이다”나 “너 자신을 알라”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참 아쉽게도 두 가지 모두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첫 번째로 꼽는 철학자가 소크라테스라는 점도 신기했는데, 그에 관한 지식이 틀린 지식이라는 것도 이상하고, 이 잘못된 지식을 전 국민이 굳게 믿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소크라테스가 객지에 나와 고생하는 현장이다. 이 책의 곳곳에서 숨쉬는 소크라테스의 진리에 대한 열정,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사상을 굽히지 않는 올곧음을 느껴보길 바란다. 고고학적인 검증과 복원이 겸비된 흥미로운 철학의 건축물을 보게 될 것이다. 게다가 잘 계획된 설득과 논변의 얼개를 살펴보는 것도 이 법정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보너스다. 꼭 챙기길 바란다.
 
인문학이 발달하고 철학이 숨을 쉬어야 문화와 과학이 꽃필 수 있다, 진리의 순교자 소크라테스가 지금 우리를 찾아와 지성과 심장을 두드리며 외치고 있다. “캐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글 · 권희정 (상명사대부속여고 철학 교사)
 
 
 
1318북리뷰 2003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