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밤을 건너는 소년』 -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



김유진 |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동시인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영화 중 <렛미인>이 있다. 1980년대 스웨덴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뱀파이어 영화로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와 인간 소년 오스칼의 이야기다. 영화는 평소 호러물을 꺼리던 나를 평론가들의 별점으로 유혹하더니, 장르물에 쉽게 만족하지 못하던 나를 감동으로 이끌었다. 이엘리는 분명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뱀파이어지만 그를 미워할 수는 없었다. 평범한 여자아이가 아니어도 계속 좋아할 거라는 오스칼의 약속처럼 이엘리의 특별한 존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작가가 이 영화를 보고 뱀파이어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 생각했기 때문일까. 밤을 건너는 소년에 등장하는 소년들 또한 이엘리에게 향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소년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은 책 제목처럼 밤의 소년들이라 불릴 만한 아이들이다. 단짝 재민이 자신을 제치고 전교 1등을 하자 너 같은 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문자를 보내는 성주, 그런 성주에게 번번이 1등을 뺏기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철진에게 돈을 주며 아이들을 괴롭히게 하는 재민, ‘용호파에게 돈을 상납하기 위해 유일하게 자신을 도와준 박쥐형을 배신하는 철진, 나이트클럽에서 손님들이 남긴 안주를 훔쳐 먹으며 삶을 이어가는 박쥐……. 소년들 모두 낮의 세계에서 버림받았거나, 낮의 세계에 살면서도 어둠의 그늘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어둠은 난폭한 현실 세계에 비한다면 그다지 새롭거나 자극적이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한 명의 소년 시온은 이 작품을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든다. 창백한 낯빛, 왜소한 체구의 시온은 마술사의 아들이며 뱀파이어다. 마술사 아버지와 시온은 진화한 뱀파이어로, 인간의 피가 아닌 시간을 먹고 산다. SF, 판타지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특한 문법의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발표해 온 최양선 작가의 신작다운 지점이다.
  작가는 장르물의 형식에서도 줄곧 따듯함과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작품을 창작해 왔듯 이 작품에서도 밤의 소년들을 먼발치에서 가만히 어루만지는 눈길을 보인다. 작가의 그 눈길이 나의 안온한 경계 밖으로 그들을 밀어낼 수 없게 만든다. 낮의 세계에서 밤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을 보게 한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찾는 눈동자가 더욱 커지고, 서로의 작은 빛도 환히 볼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법이라는 듯이.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 영화 <렛미인>에서 이엘리가 오스칼에게 남긴 쪽지에 적힌 말이다. 어둠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뱀파이어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말인 동시에 네가 어둠에 있을 때 내가 함께 하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실제로 이엘리는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인 오스칼을 구해 주었다. 네게 빛이 사라졌을 때, 네가 어둠 속에 있을 때, 네게 아무도 없을 때, 그때 내가 가겠다, 그때서야 나는 갈 수 있다…….
  뱀파이어 시온에게 시간을 빼앗기는 소년들 역시 막막한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던 아이들이었다. 집에서나 거리에서나 폭력에 시달리던 철진도,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던 다른 도시의 일진 아이도. 마술사 아버지의 계획대로 박쥐에게 뱀파이어라는 새로운 운명이 주어진다면 그건 그가 비둘기에게 선택되고, 시간상자 안에서 평온함을 느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손님들이 남긴 안주로 끼니를 때우며 모은 돈을 친부가 훔쳐 가고, 혼자 누명을 쓰고 범죄자로 몰리는 벼랑 끝에서 자기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유일한 사람을 붙잡을 수밖에 없을 테다. 친구가 없던 오스칼이 유일하게 자신의 곁에 있던 이엘리를 사랑하고 그와의 운명을 거부할 수 없던 것처럼.
  시온과 박쥐’, 밤의 소년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슬프다. 어둠 속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 먹고 먹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소년들. 슬프고 무서운 건 뱀파이어의 마술이 아니다. 밤을 헤매는 소년들의 어둠을 밝혀 줄 현실의 마술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밤을 건너는 소년 
저자 최양선

출판 사계절

발매 2017.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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