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소녀, 벽을 허물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다 : 이하림

제1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대회 청소년부 대상
이하림
 
 
 
일기를 쓰는 사람은 자존심이 강하다고 한다. 친구나 가족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기에 하고 싶은 말을 사람 대신 일기에게 고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요즘은 하루를 돌아보며 작은 글을 남기는 사람이 그리 흔하지 않은 듯하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더 가까워졌다기보다는 예전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와 그에 발맞춰 더욱 바빠진 사람들의 마음 때문에 일기를 쓸 여유가 없는 것이리라. 그러나 분명한 것은 플래시처럼 한순간 번쩍하고 지나가는 소중한 생각들을 잘 간직해 두고, 더 나아가 정다운 사람과 함께 나눈다면 어느새 한 뼘 더 자라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행복을 꿈꾸는 할링카는 늘 외톨이이다. ‘정말로 나는 친구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들 모두를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전부 잊어버리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도 않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보다 더 적다.’라고 말하지만, 종종 자신의 침대로 찾아오던 로즈마리가 듀로에게 가 버리자 내심 아쉬워한다. 친구들에 대한 기대를 버리려 애쓸 뿐 완전히 그들과 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나와 할링카가 적잖게 닮아 있어 놀랐다. 나도 유일하다시피 한 단짝 친구가 다른 반에 있어서 교실에서는 항상 홀로 지내는데, 반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크지 않으면서도 막상 아이들과 짧은 대화를 나눌 때면 거리를 두려 했던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시종일관 친절하게 대하려 무진 애를 쓴다. 어쩌면 ‘그다지 마음이 없다.’라고 했던 것은 내 스스로를 세뇌시키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썩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혼자 묘한 기분에 휩쓸리는 걸 보면.

할링카는 또래 친구가 없음으로 인해 빚어지는 외로움을 즐거운 비밀로 승화시킨다. 달팽이가 편안하게 잠을 자기 위해 자신의 등에 달린 껍질 안으로 들어가듯이, 소등 시간 후 살그머니 자신의 은신처인 가방 창고로 가서 그곳에 숨겨진 일기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 것이다. 할링카에게는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인 로우 이모가 자주 말하는 명언들처럼, 그녀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뭉툭한 문장들을 비밀 일기에 적고 향기로운 강력풀을 코 가까이 대며 자신만의 휴식을 즐긴다. 그리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 속으로 뛰어들어가 허클베리 핀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2%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나는 그것이 독백이 가져다 주는 공허함 때문이라고 짐작해 보았다. 일기장 안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 놓아도 일기는 묵묵부답이다. 허클베리 핀과 상상의 나래 속에서 거닌다 한들 그는 할링카가 인정한 대로 소설 속의 인물일 뿐이다. 나 또한 예전에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가상의 인물을 머릿속에서 불러 내어 일인다역(一人多役)을 해내면서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대화가 끊기게 될 때면 ‘결국 그 사람(들)은 이곳에 없구나.’ 하며 한숨을 내쉬기 일쑤였다. 그저 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만으로 씩 웃음 짓는 날도 있긴 했지만, 그것을 진심으로 맞장구치며 받아 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고 느낀 날이 훨씬 더 많았다. 할링카는 ‘모름지기 사람은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현도 하지 않고, 말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녀도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레나테의 제안으로 부끄러운 일을 말하고 난 후 강력풀 향기의 필요성을 잊으며 레나테와 한결 더 가까워지지 않았던가. 가끔, 아니 자주 ‘하나’는 불완전하다. 달팽이가 암수를 모두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식기가 떨어져 있어 혼자서는 알을 낳을 수 없는 것처럼.

할링카는 친구를 얻으면서 ‘둘’의 힘을 알게 된 데 이어 ‘세상’의 힘을 느낀다. 로우 이모를 떠올리며 동분서주한 덕에 차지한 '어머니 쉼터' 모금 1위의 상으로 가게 된 슈베칭엔 성에서 연못 한가운데 있는 여인 석상에 마음을 빼앗겨 눈물을 흘린 것이다. 울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으나, 요즘 보고 싶었던 영화를 모두 섭렵하면서 딱히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이야기 구조가 아닌데도 걸핏하면 펑펑 우는 내 모습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내 눈물에는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는 감격과 ‘이토록 멋진 영화를 이제야 보다니.’ 하는 아쉬움, 그리고 ‘지금이라도 봐서 참 기쁘다.’는 뿌듯함이 한데 모여 있고, 할링카의 눈물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의 손으로 살며시 달팽이를 집어 조금 더 멀리 놓아주면서 순간 이동을 맛보게 한 것이라고나 할까. 이제 달팽이는 새로운 세계 앞에 다다랐다. 생각이 깊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아는 할링카이니 뒷걸음질하거나 그대로 멈춰 서는 일은 없으리라.

앞에서 일기 이야기를 하며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국어사전에는 ‘제 몸이나 품위를 스스로 높이 가지는 마음’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 마음이 지나치면 오히려 벽이 되어 자신의 발전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다. 레나테가 죄수인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던 것, 할링카가 기숙사 아이들에게 마음을 닫아 놓던 것이 그렇다. 하지만 두 소녀는 높은 자존심을 시나브로 허물어 서로에게 그것을 털어놓았기에 할링카는 레나테라는 소중한 친구를 얻었고, 레나테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편지를 쓴다. 끝 부분에서 할링카가 ‘나는 방금 행복한테 의자를 내주었던 것 같다.’고 말했으니, 분명 내가 함께 따라갔던 때보다 더 밝고 예쁜 날들을 맞이할 것이라 믿는다.
그들의 행복이 오래도록 의자에 앉아 있기를 빈다. 그리고 나의 행복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