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가족] 달팽이도 달린다

제목이 특이했다.
달팽이가 달린다고? 나름 달리는 건데 내가 본 적이 없었던 건가?

다섯가지 이야기를 엮은 동화집 [달팽이도 달린다]의 첫 이야기는 역시 달팽이 이야기였다.
달팽이 알을 얻어 달팽이를 키우게 됐지만 달팽이에 관심없이 그저 징그럽다는 생각을 하는 진형이가 어느 날 반려OO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에
이름도 없던 달팽이의 이름을 급조하며 자세히 관찰하지도 않았던 그 모습을 귀엽게 그려낸다.
그런데 그런 진형이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다민이. 불편한 시선 끝에 서로 교감하게 되고, 생명에의 관심과 존중까지 얻게 된다.
두번째 이야기는 혼자 있는 걸 편히 여기는 희석이가 작가 땡땡님을 학교로 초대하는 이야기다.
늘 혼자임을 자처하는 희석이가 유난히 좋아하고 집착하는 책 <괴물을 잡는 아이>는 사람인척하며 인간세상에서 살며 인간끼리 서로 의심하고 미워하게 만드는 괴물과 그 괴물을 알아보고 잡는 은돌이가 나온다. 10권으로 마무리된 시리즈의 11권을 기다리는 희석이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작가와의 만남을 보며 자신도 <괴물을 잡는 아이>의 작가 땡땡님을 초대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방법을 몰랐던 희석이는 친구의 도움으로 작가에게 이메일을 쓰게 되는데 터무니 없는 내용으로 초대를 한다.
터무니없는 초대장에서 '자신의 집에도 괴물이 둘 있다'라고 말하는 문구를 발견한 친구는 희석이의 마음을 헤아려 자신도 초청메일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제시한 시간, 운동장에 땡땡 작가가 나타나는 듯 보였다.
세번째 이야기는 연기자를 꿈꾸며 광고촬영에 도전하는 주인공이 우연히 친구 오빠의 옷을 빌리게 되고, 그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감정을 잡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친구의 친구는 어쩐지 광고 주인공의 처지와 비슷했고, 마치 친구는 그 친구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듯 했다.
네번째 이야기는 주인공이 바닷가에 놀러가 우연히 복어를 발견하고, 그 복어를 지켜보다 나중에는 힘이 빠진듯 보이는 복어를 걱정하게 되는 이야기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던 차에 밀물때가 되어 바닷물이 모래사장을 덮기 시작하자 안도하는 아이의 마음이 그려졌다.
다섯번째 이야기는 신체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가 주위의 시선을 불편하게 여기는 데서 시작한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 온 주인공은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친구가 불편하다. 그 친절과 배려가 오히려 자신의 장애를 더 인식하게 만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려 무리해서 달리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히려 장애에 대한 편견 없이 자신을 대하는 동생들을 통해 자신의 자격지심을 내려놓고 웃게 되는 이야기다.

다섯 이야기의 흐름을 보며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유추하며 읽을 여지를 주는 작가님의 배려에 감동했다.
직접적으로 '이런 마음이 들었다. 사실은 이랬던 것이다.' 라고 표현했다면 그냥 텍스트를 훑어 내려갔을 텐데
작가님의 배려에 잠깐의 장면들에 머무르며 감정을 헤어리며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은 후 5학년 딸아이와 함께 대화를 나눠보니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읽어낸 것 같아 놀랍기도 했다.
이것이 동화의 힘, 작가의 힘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평소 좋아하던 그림책 작가님의 그림이 더해져 상상속에서 더 즐겁게 춤췄던 것 같다.

달팽이도 달린다.
이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가졌던 제목에 대한 의문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풀리는 듯 했다.
달팽이 이야기로 시작된 이 책이 다리를 저는 친구가 달리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됐다.
때로는 다른 이의 시선에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픈
그러면서도 자신의 진짜 이야기에 공감을 얻고 픈
다른 사람에 대한 넉넉한 마음 씀씀이를 가꿔가고픈
자신의 한계나 처지에 가끔은 넘어져도 당당하고픈 이 땅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좀 느리더라도 좀 볼품없더라도 좀 자신 없더라도 얼마든지 달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책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달리기를 하고 있다.
중요한 건, 달리기는 누군가와 비교되는 속도보다는 나만의 방향과 꾸준함이다.
좀 느리면 어떠한가, 좀 돌아가면 어떠한가, 지금 내가 무언가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달리자! 숨이 턱까지 차올라 내 안에 내가 가득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