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서평단] 우주에서 가장 밝은 지붕(노나카 토모소)

해파리를 타고 지붕 위를 날아가는 한 소녀의 모습이 몽환적이다. 단지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을 주기 위함이 아니란 사실을 예감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별 할머니와 소녀 츠바메의 따뜻한 소통과 만남을 표현하기에 딱 좋은 표지란 걸 책을 읽은 후 깊이 깨달았다. 물론 표지 어느 곳에서도 별 할머니는 보이지 않지만, 밝게 빛나는 별을 보며 어딘가에 계시겠구나 하는 확신의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심지어 우리도 언젠가 이런 별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주에서 가장 밝은 지붕을 좋아하는 별 할머니 맞죠?' 하고 물어볼 수 있을까? 환상 같은 소설의 분위기 속에서 행복하게 유영하고 싶어진다.



평소 일본 소설을 그닥 좋아하진 않았다. 특별한 이유라기 보다는 이름이 빨리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서다. 주인공 츠바메의 이름도 읽는 내내 헷갈렸고, 다 읽은 후에도 츠메바였나? 츠.. 뭐였더라.. 하는 휘발성 기억력이 한심할 정도로 왜 일본식 이름은 이렇게도 기억에 남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건 작품 속 인물들의 이름이 내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는다하여 작품성이 떨여지는 건 절대 아니라는 것. 괜한 핑계를 대며 일본 소설을 선뜻 읽지 않으려하는 나의 고집을 이번엔 반드시 고쳐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이 다짐을 하도록 이 책이 도와주었다.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별 할머니는 밉상스러운 할머니의 자질을 다 갖추고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장! - 7p.

츠바메와 소통하며 친구가 된 별 할머니를 왜 이렇게 불렀을까? 첫 문장에서 너무나 확실히 단언하고 있고, 두 번째 문장에서 이미 이 작품 전반에 등장할 별 할머니란 존재가 어떤 인물일지 작가는 츠바메의 입을 통해 알려준다. 그런데 이 문장이 왠지 밉지않다. 확실히 츠바메는 별 할머니와 친밀한 존재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문장이다.



츠바메는 어릴 적부터 밤하늘 보는 걸 좋아하는 소녀다. 이웃 사촌으로 함께 자란 동네 오빠 도오루를 짝사랑하다 못해 그 흔한 생일 카드 한 장 써서 보낸 것을 자책하는 순진한 소녀다. 첫 사랑의 대상에게 '생일 축하해'라는 말을 쓰기까지, 쓰고 나서 붙이기까지 얼마나 심장이 떨렸을 지 상상이 된다. 그런 츠바메는 다니던 서예학원이 있는 허름한 건물 옥상에서 별 할머니를 만난다. 그냥 딱 봐도 신기한 별 할머니를.

한밤중에 옥상에서 킥보드를 타는 할머니. 츠바메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대신 이것 저것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딜을 하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를 이상하게 보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끌리는 츠바메는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며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하는 시간을 좋아하기 시작한다.



츠바메에게는 좋아하는 오빠가 있지만 다가가지 못해서 가슴앓이를 하는 아픔이 있다면, 별 할머니에게는 어린 손자였던 아이와 다시 만날 기회가 없어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상처와 그림의 종류는 다르지만, 같은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독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난 지금까지 많은 지붕을 보아와서 지붕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을 알지.

별 할머니의 말 63p.

별 할머니의 의미심장한 말이다. 밤마다 날아다닌다는 별 할머니라서 지붕을 많이 봤다는 말일까? 작품이 전개되는 내내 사실일까? 하는 의문과 동시에 진짜 같다는 확신이 이미 내 눈과 귀와 마음을 다 채워버린 것 같았다. 참 신비로운 별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지붕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니 괜시리 내가 사는 집도 지붕이란 게 있나.. 공동주택이라 딱히 나를 나타낼 만한 지붕이 없는데... 별 할머니를 만난다면 나에겐 어떤 이야기를 하시려나.. 하며 잠시 생각에 잠기게도 한다. 참 신기한 할머니다.



별 할머니가 츠바메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도운 것처럼, 츠바메 역시 별 할머니가 그리워하는 손자를 찾도록 함께 하기 시작하는데....

마코토는 말이야. 정말 순수하고 착한 아이야. 너처럼 삐딱한 데가 없어.

손자를 회상하는 별 할머니의 말 85p.

지금껏 츠바메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민을 해결해주던 별 할머니의 입에서 손자인 마코토에 대한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오던 날, 츠바메는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별 할머니의 그리운 손자를 찾는 데 힘이 되어주리라고.



그러나 할머니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 착한 어린아이는 다 큰 청소년이 되어 어떤 모습일까? 설마.. 하는 우려와 함께 현실로 나타난다. 츠바메도 알던 한 소년. 지금은 각종 불량한 행동으로 평판이 좋지 않은 친구인 사사가와였다. 그가 별 할머니의 손자라는 사실을 그 앞에서는 숨길 수 밖에 없었지만, 그의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본 별 할머니는 이제 단념하는 걸까..?

말해두지만, 우리 집에는 그런 성가신 가족은 절대 없어. (중략) 할머니는 커녕 나는 내 아빠도 어딨는지 모른다고.

할머니가 계시냐고 묻는 츠바메에게 내밷는 사사가와의 말(213p.)

조용히 손자의 말을 엿들은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필요 없어 한다는 걸 인정한 시점에서 찌리리리링 벨이 울리며 타임아웃이야.

별 할머니의 말(220p.)

영문을 모르는 츠바메.

그러나 며칠 후, 할머니 장례식이 있다며 떠나는 사사가와의 말에, 그 할머니가 오랫동안 혼수상태였었다는 말에 모든 것이 하나씩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혼을 믿냐고 묻던 할머니. 그리고 그 혼은 언제나 살아서 곁에 있다는 걸 믿는 츠바메.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질문하는 츠바메에게 사사가와는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아주 평온하고 행복해보였다'고 전한다.



츠바메에겐 언제나 엉뚱한 별 할머니였다. 245쪽에서 작가가 서술한 것처럼 어쩌면 별 할머니는 혼수상태로 있으면서도 이루지 못한 꿈을 꾸고, 마음껏 행복해하다가 떠난 것 아닐까?

이 세상에 두고 가는 선물인 양 겁쟁이 중학생을 실컷 놀려 먹고, 병원에서 못 먹게 하는 것들 실컷 얻어먹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 별 할머니는 성장한 손자도 만났다. 자기 모습을 제대로 손자의 눈 속에 남기고.

245p.

그리고 소중한 친구같은 츠바메를 위한 선물도 남겨두었다. 그건 바로 파란색 실.

좋아하는 사람과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들어 본 실 전화기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싶다던 츠바메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원을 이뤄주기 위한 특별한 선물 말이다.



잔잔하고 따스하고 참 아름다운 소설이다. 나만의 별 할머니와 밤 하늘을 바라보며 옥상에서 킥보드를 타는 꿈을 꾸고 싶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