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밑줄 그은 구절 : 잘 삭혀진 슬픔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신 뒤,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울어 보지 못했다. 그저 아줌마의 빈 자리를 견디는 데 급급해서 지난 두 계절 동안 내 속에 차오르던 눈물을 안으로 삼켜 왔다. 하지만 그 올빼미가 눈 앞에서 사라지고 이제 이 세상에서는 메이 아줌마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뼛속 깊이 와 닿자,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 『그리운 메이 아줌마』 중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슬픔 하나씩을 가슴에 묻고 산다. 기쁨은 밖으로 터뜨리며 살지만 슬픔을 쉽게 터뜨리지 못한다. 슬픔이 슬픈 것은 바로 쉽게 터뜨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터뜨려지지 못한 슬픔은 조개 속 진주처럼, 사람들 가슴 깊은 곳에 똬리를 튼다. 슬픔은 자란다. 슬픔은 점점 커진다. 슬픔은 터뜨려질 날만 기다린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울음으로 터져 나온다. 울음으로 터져 나온 슬픔은 이윽고 사람들의 영혼을 맑게 씻겨 준다. 우리 인생에서 슬픔이 없다면, 그 인생은 빈 인생이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슬프다. 그렇지만 아무리 내 목숨만큼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나라로 떠나 버려도, 남아 있는 사람들은 살아간다. 가득한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가득한 슬픔으로 온몸이 무겁지만, 그대로 무거운 그 몸을 이끌고 사람들은 꾸역꾸역 살아간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엄마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 나는 엄마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리 엄마가 세상 떠난 지 벌써 20년도 더 넘었다. 그리고 그 20년 동안 나는 잘만 살아왔다. 물론 엄마 없이 산 그 20년이 내게는 ‘가득한 슬픔의 나날’이었지만, 그 가득한 슬픔이 또한 나를 살게 한 우리 엄마의 사랑이었음을 나는 이제 알겠다. 사랑이 없으면 슬픔도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사랑은 슬픔이고, 슬픔은 사랑이다.
 
 
“메이가 우리 곁에 있어. 바로 지금. 하느님께 맹세해. 난 느낄 수 있어. 서머. 마치 방금 유리잔에 따라서 마신 것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말이야.” - 『그리운 메이 아줌마』 중에서
 
 
슬픈 영혼은 맑다. 슬픈 사람들은 영혼을 믿는다. 알아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서 슬픈 사람들은 영혼을 믿기 때문에, 오브 아저씨가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고 하면 서머가 그걸 믿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어도 결코 떠나지 않았음을 믿는다. 사랑하면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곳으로도 가지 않는다.
 
우리 엄마도 늘 내 슬픔이 터뜨려졌을 때 내게 왔다. 이 세상 누구도 내게 오지 못할 때 멀리 떠났다고 믿었던 우리 엄마가 내게 와서 말했다.
 
“아가, 울지 마라. 내 사랑스런 아가야.”
 
이 세상 사람인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엄마에게 의지하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엄마는 이 세상 사람인 나에게 의지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몹시도 절실한 관계다. 왜냐하면 서로 사랑하므로. 서로 사랑하므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이제 아프거나 두렵지 않다.
 
 
나는 아저씨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저씨가 아직도 내 곁에 있다는 게 무척이나 고마웠고, 트레일러 안 어딘가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클리터스도 고마웠다. 나는 눈을 감고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가엾은 엄마와 메이 아줌마의 부모님, 그리고 사랑하는 메이 아줌마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분들을 생각하는 것이 아프거나 두렵지 않았다. 내 마음에는 고요한 평온이 깃들었고, 나는 그분들을 생각하다가 어느덧 눈물도 마른 채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 중에서
 
 
사랑만이 슬픔을 만들어 낸다. 한껏 슬퍼하고 나면 자유로워진다. 사랑이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내가 지금 슬픔 것은 내가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할 때 마음껏 사랑하자. 슬플 때 마음껏 슬퍼하자. 잘 삭혀진 슬픔은 내 영혼을 내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 곁으로 새의 깃털처럼 가볍고 눈부시게 데려다 줄 것이다.
 
 
글 · 공선옥 (소설가)
 
1318북리뷰 200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