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1500년 전 ‘거대 자유무역지대’ 돌궐 재발견

돌궐제국 당시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에서 출토된 비단에 그려진 기마궁사의 모습. 고구려 고분벽화 ‘수렵도’의 장면(오른쪽)과 매우 닮았다. 고구려가 북아시아 유목민 역사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터키, 오스만 등 투르크계 민족사 뿌리
돌궐과 유목민 역사 연구에 ‘새 시도’
중국자료 편향 벗고 북아시아사로
 
 
 
 
돌궐 유목제국사 552~745
정재훈 지음/사계절·3만8000원
 
 
 
6세기 중반에서 8세기 중반까지 중국 북방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동쪽으론 고구려에서 남쪽으로 중국과 토번(티베트), 서쪽으로 사산조 페르시아와 비잔티움(동로마)에 이르는 광대한 북아시아 지역을 연결했던 고대 유목제국 돌궐(突厥).
 
기원전 2세기에 등장해 300여년 몽골 초원을 지배했던 흉노(5세기에 붕괴한 아틸라의 훈제국까지 포함하면 더 길어지지만 유럽의 ‘민족 대이동’을 촉발했던 훈과 흉노가 동일 민족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의 뒤를 이은 돌궐과 흉노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정재훈 경상대 교수의 <돌궐 유목제국사 552~745>는 이렇게 정리한다.
 
둘 다 정주지역(중국 등 농경지역과 오아시스)을 직접 지배하려고 하지 않고 광대역에 걸친 생산지(주로 중국)와 소비지를 초원지대로 연결해, 일종의 거대한 ‘자유무역지대’를 창출함으로써 주로 상업적 이익을 얻으려 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이는 특히 정주지역을 침탈하고 직접 지배하려 했던 거란·여진·몽골·만주 등의 정복왕조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흉노와 돌궐이 다른 점은 그 범위, 지배영역의 크기다.
부침을 겪었지만 대체로 200년간 존속했던 돌궐은 작은 규모의 유목국가가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초원·오아시스 지대 대부분을 통합해 처음으로 유목 ‘제국’을 창출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돌궐은 기록 없이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여타 유목민족들과는 달리 자신들만의 문자를 만들어 역사를 기록하고 거대도시도 만들었다. 
 
이 돌궐을 지금의 터키는 ‘투르크의 뿌리’라는 의미로 ‘괵 투르크’라고 한단다. 터키뿐만 아니라 예전 카라한이나 셀주크, 오스만 등 투르크 계통 제국들도 모두 자신들의 역사가 돌궐의 영광스런 역사에서 시작됐다고 인식했다. 중앙아시아의 인문 지리적 성격을 설명할 때 쓰는 ‘투르키스탄’(투르크의 땅)이라는 말도 돌궐의 역사와 연결돼 있다. 그 뒤의 위구르나 몽골제국도 돌궐제국 때 형성된 역사 정통성 관념에 집착한 것으로 보아 돌궐제국의 역사는 그들 북방 후속제국들의 ‘원사’적 성격도 지닌다고 정 교수는 얘기한다.
 
<돌궐 유목제국사>는 5세기 톈산산맥 북방 바르콜 분지에서 발원해 6세기 초 바이칼호 아래쪽을 지배했던 ‘유연’에 생존을 의탁한, 미미한 대장장이 집단에 지나지 않았던 돌궐 지배세력이 어떻게 일어나 부침을 겪으며 8세기 중반 소멸했는지 정밀하게 추적한다. 돌궐사 연구의 기본사료들인 중국 <주서>와 <수서>에는 ‘돌궐’이라는 말이, 대장장이 시절 그들이 살던 ‘금산’의 지형적 특성이 투구와 비슷했고 투구를 그들 말로 돌궐이라 했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불린 데서 유래한다고 돼 있단다.
 
책은 그들의 다소 혼란스런 신화 등 전사(前史)를 꼼꼼하게 분석·정리하고, 제1제국과 중간의 당에 의한 50여년간의 ‘기미(굴레와 고삐라는 뜻의 한자말)지배’, 제2제국으로의 재건과 소멸 과정을 600여쪽에 담았다.
 
정 교수의 이번 작업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돌궐제국이 초원지대에 남겨 놓은 ‘퀼 테긴 비문’ ‘빌게 카간 비문’ 등의 고대 투르크 비문자료들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지배세력을 배출한 ‘황금씨족’ 아사나 집단을 중심으로 한 돌궐 특유의 ‘유목 군주권’(nomadic kingship)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이는 새로운 사실들의 발굴·정리 외에 이제까지 압도적인 한문 자료들에 의존해온 유목제국 역사 연구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특히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유목민들을 변방 야만족으로 여긴 중국 사서 편찬자들의 편견이 낳은 왜곡과 오기, 날조 등을 바로잡거나 중화시키는 데 유목민들 자신이 남긴 기록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정주 농경지역 군주들과는 전혀 양상이 달랐던 돌궐만의 유목 군주권 역시 중국적 관념에 의한 오류를 교정하고 고대 유목국가 특유의 성격을 밝히는 데 중요한 요소다.
 
박사논문을 토대로 <위구르 유목제국사>를 먼저 써낸 정 교수는 이번 작업을 통해 유목민들이 지배했던 북아시아 역사를 정주 농경세계 역사와 함께 인류 역사를 이끌어간 또 하나의 강력한 독자적 역사 단위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유목민들의 북아시아사가 정주 농경민족 역사의 비주류 ‘변방사’가 아니라 세계사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전근대 시기에 정주민족 역사와 함께 인류 역사를 이끌어간 “수레의 두 바퀴”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돌궐은 한반도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돌궐이 장악했던 초원길(실크로드)이 한반도와 닿아 있었을 뿐 아니라, 7세기 초 수 양제가 고구려 원정에 실패하자 당시 수에 편입돼 있던 돌궐은 이를 국면 반전의 기회로 활용했다. 7세기 중후반 당의 고구려 원정 때는 당의 정양도독이던 돌궐의 아사덕추빈이 이를 거들었다. 돌궐의 지배집단 ‘아사나’의 부족신화에 등장하는 영매 이리는 단군 신화의 곰에 비견될 수도 있겠다.
 
책에 나오는 얘기는 아니지만, 석탈해니 혁거세니 하는 고대 신라의 낯선 말들도 혹시 북아시아를 지배했던 고대 유목국가들과 친연성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한반도 고대사를 중국·일본과의 관계로만 좁히지 말고 북아시아까지 넣어 더 넓게 본다면 의외의 지평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만든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작가
정재훈
출판
사계절
발매
2016.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