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마음의 정치학』 미리 보기 3 : 삼강과 오륜은 다르다!(4.(1)~(3))



읽기 전에 
삼강과 오륜은 다르다!(4)

(1) 오륜의 군신 관계
(2) 오륜의 부자 관계
(3) 오륜의 부부 관계




(1) 오륜의 군신 관계

공자와 맹자가 밝히는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살펴보자.
제자 자로가 임금을 섬기는 방법을 여쭈었다.

공자, 말씀하시다.

“임금을 속이지 말고, 도리어 덤벼들어라!”11


여기 공자가 제자에게 “속이지 말라”고 답한 것은 윗사람에게 거짓으로 대하지 말라, 사실만을 전달하고 공식적인 언어만을 구사하라는 경고로 해석된다. 주목할 부분은 “임금에게 덤벼들어라”는 뒷대목이다. 문면으로는 군주에게 잘못이 있다면 목숨을 걸고 조언하라는 권고로 읽힌다. 그런데 ‘덤벼들다(犯)’라는 말은 삼강 가운데 군위신강이 강조하는 복종으로서의 충성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삼강의 충성이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식의 절대 복종의 의리를 뜻한다면, 여기 ‘덤벼들다’는 군주와 신하가 각각 독립적 존재임을 전제로 하며 나아가 군주라고 해도 신하의 몸과 뜻을 사유화하지 못한다는 뜻도 들어 있다(자로에게 이런 권고를 한 까닭은 자로가 무사 출신이기에 상하 지배-복종 논리에 익숙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자는 신하가 결코 군주의 도구로 동화同化되어서는 안 되며, 도리어 군신은 서로 독립된 존재로서 이성적 거리를 유지하며 가치를 공유하는 상호 관계여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군주가 신하를 예로써 부리면 신하는 군주를 충심으로 섬긴다”(『논어』, 3:19)라는 공자의 지적도 상호성의 원리를 보여준다. 군주가 신하를 대하는 규범인 예禮와 신하가 군주를 대하는 규범인 충忠은 동시적이며 교차적으로, 또한 호혜적으로 수행된다는 점에서다. 여기 예(군주)와 충(신하)은 군신유의의 구체적인 실천 덕목으로 제시된 것이다. 의는 군주와 신하 양쪽에 모두 적용된다. 따라서 군주와 신하는 상하 혹은 지배-복종 관계가 아니요, 직분이 다를 뿐인 수평 관계라야 한다. 그렇다면 공자의 유교에서 군신 관계는 삼강의 군위신강이 아니라, 오륜의 군신유의와 연결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나아가 맹자에 이르러 군신 관계는 더욱 수평적, 계약적으로 전개된다. 맹자는 상명하복을 상식으로 하는 전국시대 통치론을 비판하며 군주와 신하를 상호적이고 균형적인 관계로 전환하려 한 ‘저항자’였다. 스포일러의 혐의가 있지만 다음 내용은 뒤에 나올 『맹자』의 본문과 해설에서 가져온 것이다.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말했다.


“임금이 신하를 손과 발처럼 여기면 신하는 임금을 배나 심장처럼 보지만, 임금이 신하를 개와 말처럼 여기면 신하는 임금을 낯선 사람처럼 보고, 임금이 신하를 흙이나 지푸라기처럼 여기면 신하는 임금을 도적이나 원수같이 대합니다.”


왕이 말했다.


“예법에 ‘신하는 옛 임금을 위해 상복을 입는다’라고 하던데, 어떻게 해야 상복을 입힐 수 있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신하가 간언하면 곧 실행하고, 말을 하면 받아들여 백성에게 그 혜택이 미치고, 사정이 있어 떠나면 임금이 사람을 딸려 국경 밖까지 인도해주고, 또 그가 가려는 곳에 사람을 먼저 보내 주선하며, 떠난 뒤 3년 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주었던 밭과 고을을 거둬들입니다. 이것을 삼유례三有禮라고 합니다. 이런 예를 행하면 옛 임금을 기려 상복을 입습니다.

지금은 신하로서 간언해도 실행되지 않고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아서 혜택이 백성에게 미치지 않습니다. 사정이 있어 떠나려 하면 임금은 붙잡아 구속하고, 또 가려는 곳에다 극언을 일삼으며, 떠나는 날 곧바로 주었던 밭과 고을을 환수해버립니다. 이를 가리켜 원수라고 합니다. 누가 원수를 위해 상복을 입겠습니까!”

_ 8:3


(해설) 임금이 아무리 잘못하기로서니 신하가 군주를 ‘원수’로 여긴다? 맹자 사후 2000여 년 동안 황제 전제주의, 독재체제로 점철된 중국 역사에서 『맹자』라는 책이 얼마나 경원시되었는지를 이 대목이 증언한다. 하긴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경연에서 이 대목을 듣고 “맹자, 이 영감탱이. 지금 살아 있다면 주리를 틀어놓을 것”이라고 격노했다는 일화가 그럴듯하게 전해온다. 이를 계기로 『맹자』에서 군주 권력에 반하는 대목들을 삭제하고 새로 개작한 『맹자절문孟子節文』을 반포했다. 그만큼 맹자의 반전제주의, 반독재 사상이 여실하게 드러난 것이 이 장이다. 신하는 군주의 사유물이 아니요, 군주는 권력의 수혜자가 아니다. 신하는 공물公物인 국가를 군주와 함께 더불어 운영하는 공직자라는 것. 이른바 상명하복은 맹자의 정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다. 맹자에게 군주-신하 관계는 서로 공대하는 상호 공경이 핵심이다. 서로 공경할 뿐 아니라 먼저 공경의 예를 실행하는 것은 군주다. 이것이 맹자 주장의 특점이다. 주목할 부분은 이 장에 ‘A 則(즉) B’라는 조건문이 여덟 번이나 나온다는 점이다. 주로 앞부분 ‘조건 A’를 행하는 것은 군주요, ‘則’에 따르는 B를 행하는 것은 신하다. ‘군주가 A하면, 곧 신하가 B를 행한다’는 문장 구조다. 요약하면 ‘임금이 삼유례를 행하면, 신하가 임금을 위해 상복을 입는다.’(『맹자, 마음의 정치학 2』, 245~248쪽)


그렇다면 삼강의 군위신강은 오륜의 군신유의와 같은 것일 수 없다.



11 子路問事君. 子曰, “勿欺也, 而犯之.”(『논어』, 14:23)





(2) 오륜의 부자 관계


부모의 자식 사랑을 한자로는 자애慈愛라 했고, 우리말로는 ‘내리사랑’이라고 불렀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사랑도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흘러내린다는 뜻이다. 내리사랑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이 다 갖추고 있다. 〈동물의 왕국〉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곰과 연어의 한살이가 그러하며, ‘자식 잃은 설움에 창자가 끊어진다’는 이른바 단장斷腸의 고사 속 원숭이가 그러하다. 그러나 부모가 베푼 사랑을 기억했다가 그 은혜를 되갚겠다는 동물은 오로지 인간이라는 종류밖에 없다. 이 되갚으려는 마음을 효孝라 칭하고, 우리말로는 ‘치사랑’이라고부른다. 동물의 사랑은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흘러내리기만 할 뿐 거슬러 올라가는 법이 거의 없지만, 오로지 인류는 가족 안에서 내리사랑과 치사랑을 주고받으며 화목의 꽃을 피워낸다.


내리사랑은 모든 동물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선험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라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지만, ‘치사랑=효도’는 가족이라는 인간공동체 안에서 경험과 의식적인 학습을 거쳐야만 길러진다. 이것이 공자가 가족을 중시하고 효행을 강조했던 까닭이다. 그렇다고 효도가 어찌 부모에 대한 자식의 복종을 뜻하는 것이랴. 효의 참된 뜻을 두고 공자의 후예인 순자荀子는 이렇게 직언한 바다.


집에 들어오면 효하고, 나가면 공손함은 사람의 작은 행실이다. 

윗사람에게 순종하고 아랫사람에게 도탑게 대하는 것은 사람의

중간행실이다. 도道를 따르지 임금을 따르지 않고, 의義를 좇지 아버지를

좇지 않는 것은 사람의 큰 행실이다. 12


“집에 들어오면 효하고, 나가면 공손함”을 작은 행실로 치부하는 순자의 지적은 부모에 대한 복종을 효행으로 아는 오늘날 유교에 대한 인식을 배반한다(이런 인식은 삼강의 유교, 부위자강의 영향이다). 더욱이 끝 대목 “의를 좇지 아버지를 좇지 않는 것은 사람의 큰 행실이다”라는 지적은 효도의 극단적 묘사라 할 만하다. 미국의 유교학자 투 웨이밍Tu Wei-Ming이 “효라는 유교의 개념은 정녕코 정치적 통제와는 관련이 없다. 효는 전제 권력의 행사를 위한 근거가 아니다. …… 효자가 반드시 복종하는 아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13라고 한 지적은 이를 가리킨 것이다. 오늘날 자기는 동쪽으로 가고 싶어도 부모가 서쪽으로 가라 하면 그에 따르는 것을 효로 아는 상식은 삼강의 것이지 오륜의 효행이 아니다. 맹자는 한 걸음 더 나간다. 부모를 원망하는 것이 효가 되기도 한다는 파천황의 소식을 전한다. 원모怨慕라는 모순적인 개념 조합을 통해 원망도 사랑이 된다는 패러독스를 천명한 이가 맹자다. 『맹자』에서는 순임금이 아버지에게 품었던 원망/사모의 겹을 통해 대효大孝(효의 좌표)가 된다는 기묘한 스토리가 펼쳐진다(9:1 참고). 공자와 맹자의 원시 유교에서 부자 관계란 부모는 자애(내리사랑)로 사랑을 표출하고, 자식은 효행(치사랑)으로 사랑을 드러내는 쌍방적이고 상호적인 관계일 따름이다. 효란 기름진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아니라 애틋하게 연민하는 마음이라 여긴 것이 공자와 맹자다. 따라서 효행이 인仁의 근본이 된다(『논어』, 1:2). 그렇다면 삼강의 부위자강에 깃든 가부장적 상하 질서가 아니라, 오륜의 부자유친이 가족 윤리에 합당한 것이다. 오륜의 효를 주희는 이렇게 요약한다.


자식이 부모의 잘못을 고쳐서 악을 선으로 바꿀 수 있다면,

효라고 이를 수 있으리라.14

참된 효행은 차마 어쩌지 못하는 사랑을 바탕으로 부모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의리의 실천이지, 부모의 명령에 따르는 복종이 아니라는 말이다. 곧 오륜의 효행만이 올바른 효도요, 삼강의 이른바 ‘효’는 노예의 윤리에 불과한 것이다.


12 入孝出弟, 人之小行也. 上順下篤, 人之中行也. 從道不從君, 從義不從父, 人之大行也 (『순자』, 「자도子道」).



13 “Indeed, the Confucian concept of filial piety is only marginally conceived with political control. It was not conceived as a basis for exercising autocratic power…… The filial son is not necessarily an obedient son.” Tu, Wei-ming, Centrality and Commonality: An Essay on Chungyung(中庸), Hawaii: The University Press of Hawaii, 1978, pp.55-56.


14 子能改父之過, 變惡以爲美, 則可謂孝矣(주희, 『논어집주』).





(3) 오륜의 부부 관계


부부는 공자와 맹자에게 특별하다. 전쟁의 시대, 파괴된 가족을 재건할 동력이 부부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곧 맹자의 오륜 중 사륜(부자, 군신, 장유, 붕우)이 부부 관계에서 비롯한다. 한나라 시대의 기록인 『예기禮記』에 인용할 만한 기사가 있다.


혼례는 인류 공통의 기원이다. …… 남녀 간이 각별한 다음에야 부자간이 친밀하며, 부자간이 친밀한 연후에 (군신의) 의리가 형성된 다. 군신의 의리가 형성된 다음에야 사회적 관계(禮)가 파생한다.15


이에 따르면 인간관계의 순서는 부부유별이 첫째요, 부자유친이 다음이며, 군신유의가 그 뒤를 따르고, 그 후에야 사회적 관계인 붕우유신과 장유유서가 펼쳐진다. 부부는 모든 인간관계(오륜)의 샘이라는 뜻이다. 혼인을 두고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 곧 ‘사람 관계 가운데 가장 큰 일’이라고 한 말이 맥락을 잘 요약하고 있다. 그러니까 오륜의 부부유별 속 ‘별別’이란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구별되고 특별하므로 서로를 각별하게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륜의 부부유별은 상호적이므로 주종 관계인 삼강의 부위부강과 구별해야 한다. 또 『천자문千字文』16에 나오는 부창부수夫唱婦隨, 곧 ‘남편이 부르면 아내는 호응하는’ 주종 관계와도 다르다(오륜에서는 남편이 부르면 아내가 호응하고, 아내가 부르면 남편이 호응하는 상호 관계다).


맹자는 부부 관계를 운명적 관계, 곧 천륜天倫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이 신뢰를 약속하며 예禮를 맺어 형성하는 인륜人倫으로 보았다. 부부 관계를 제아무리 신비화하고 신화화하더라도 붕우 간 우정이나 군신 간 충정과 동류이지, 부자나 형제와 같은 것일 수는 없다. 부부 관계는 상호적이고 쌍방적이라는 ‘관계성과 소통성’, ‘정당성과 정합성’의 원리가 관철되는 곳이다. 이런 점에서도 ‘부부는 유별나다(夫婦有別)’. 물론 생명을 낳고 기른다는 점에서 여성은 땅에 유비되지만 땅이 하늘에게 복종한다는 신화는 여기 없다. 『성경』의 「창세기」에나 있을 존비 관계17는 공자나 맹자에게는 없다!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게 부부의 연을 맺어 어느 일방이 예를 어기고 의를 깨트리면, 다른 일방은 그 혼인 관계를 파기할 수 있다(맹자가 여성을 유독 차별한 가부장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맹자』, 8:33을 참고하자. )


요컨대 부모에 대한 순종이 효가 아니요, 임금에 대한 복종이 충이 아니다! 도리어 일과 말의 이치를 올바로 헤아리고 다루는 가운데 충과 효가 존재한다. 쌍방적이고 상호적인 오륜의 특성은 공자와 맹자에게 두루 관철되는 유교 본래의 것이다. 훗날 주희는 특별히 군신 관계를 상반이상성相反而相成, 곧 ‘서로 반대되면서도 서로 이뤄주는 관계’라는 역설적 언어로 표현한 바 있는데 이는 오륜 전체에 적용해도 좋다(『맹자집주孟子集註』).



15 昏禮, 萬世之始也…… 男女有別, 然後父子親. 父子親, 然後義生. 義生然後禮作(『예기』, 「교특생郊特牲」).



16 한나라 멸망 이후 남북조 시기, 주흥사가 편찬한 『천자문』은 한자, 한문 학습 교재다. 삼강의 논리를 동아시아에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17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