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바꾸는 정치 공부] 3강 - 정치에 올바름은 있는가

민주정치에서는 토론, 즉 대화하고 의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의논하고 어디에서 의논을 끝내고 결정할 것인가는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정치적인 문제란, 단 하나의 대답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대화하고 의논하는 것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우선, 학문적인 논의와 비교해보겠습니다. 학문적인 논의의 장에서는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기탄없이 발언하는 것이 규칙입니다. 올바른 결론이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의견을 제시하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특히 자연과학에서는 일정한 조건 아래서 실험하면, 누가 하더라도 틀림없이 동일한 결론이 나올 거라 여깁니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에서는 '올바름'을 전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혼밥생활자, 두 아이를 키우며 출판사에서 일하는 30대 여성,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지방 중소도시 아파트에 사는 40대 남성 등 자신이 처한 삶의 조건을 완전히 벗어놓은 채 우리가 정치적인 논의의 장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정치에 올바름이라는 것을 과도하게 도입하려고 하면, 정치의 중요한 조건인 사람들의 복수성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올바른 답 앞에서는 복수의 사람들이 대화하고 의논할 필요도 없고, 복수의 정당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올바름을 이해한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이끌어 가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정치 자체가 끝장나버리겠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올바름'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뒷면이 있습니다. 정치에 올바름 따위는 없으니 노골적으로 이익을 추구해도 좋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서는 안 됩니다. 일부 정치학에서는 정치는 당연히 이익 정치라고 간주합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만이 인간의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이점은 모든 것을 돈 문제로 여기기 때문에 타협이나 조정이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돈은 더하고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치가 사람들의 공존을 위한 것인 이상 이익 추구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익이 최우선이 되면, 소수자들에게 가혹한 정책이 채택되기 쉬울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는 더해서 2로 나누는 것과 같은 관계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 즉 어떤 사람이 정당한 인격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사회에서 존재를 제대로 인정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일은 그 자체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익 정치에서는 아무래도 현재의 이익만을 고려하기 쉽기 때문에, 미래 세대에게 큰 부담을 안기는 정책을 채택하는 일도 잦을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한다면, 정치에는 이익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윤리에 대한 배려도 필요합니다. 여기서 윤리란 단기적인 이익으로 환원할 수 없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폭넓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나 긴 시간 축에 대한 배려입니다. 가장 중요한 정치를 죽이지 않고, 정치에 윤리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요? 바로 대화와 의논을 통해서라면 가능할 것입니다. 어떤 시대에도 통하는, 특정 입장과 분리된 보편적인 올바름을 전제로 해야만 윤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쉽고 편안한 정치 입문서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에서 저자 스기타 아쓰시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여러 가지 입장의 경쟁이 현실 정치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올바른 목소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목소리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윽고 사람들은 자신 안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 서로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실 정치 안에서, 즉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지 철학자의 서재나 실험실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중략)
 
정치는 결국 더러운 이익 정치이므로 윤리 같은 건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사고방식을 종종 '현실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는 여러 가지 목소리가 있다는 현실을 고려한 태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경박한 현실주의는 현실 그 자체에 복수를 당하게 됩니다. 일부의 단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책은 사람들의 이반離反에 의해 부정당하게 되는데, 시장에 내버려지든가 자연환경에 의해 무효가 되고 맙니다.
 
결국 정치에서는 '올바름'을 마구 추구해서도 안 되지만, '올바름' 같은 건 없다고 돌변해서도 안 됩니다. 정치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공존의 길을 찾아가는 양의적인 영역입니다. 필요한 것은 '적당히 올바른'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입니다. _ 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