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바꾸는 정치 공부] 6강 - 사회, 절망적으로까지 모호한 대상

사회란 무엇일까요? 당연한 것처럼 사용하는 말이지만, 실은 잘 모르는 점이 많습니다. 사회는 없고 개인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그런 개인들만 있는 ‘자연 상태’에서 계약이 맺어져 사회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사회계약론자들도 있습니다. 개인을 강조하는 논의는 모든 인간의 자립 가능성을 긍정하지만, 그러므로 복지 따위는 필요 없다는 식의 주장으로 흐르기 십상입니다.
 
한편 사회를 시장과 구별하면서 ‘사회적인 것’, ‘연대’ 등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시장을 각자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며 적대시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에도 ‘서로 도움’을 위한 여러 가지 장치와 관계들이 존재합니다. 질병이나 사고 등의 곤란에 직면했을 때를 대비해 가입하는 보험 제도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시장이 가혹한 경쟁의 장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어떤 연대나 인간적인 요소가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시장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엇인가가 공유되어야 합니다. 설사 그것이 이익 추구를 위한 것이라 해도 무조건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회적 연대'라고 생각하는 행위들이 반드시 이타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순수한 애정으로 결합된 관계라고 간주되는 가족 안에서도 '돌봄'을 둘러싸고 이타적 동기와 이기적 동기가 충돌합니다. 맹목적인 헌신으로 서로를 돌보기도 하지만, 미래의 보험 같은 역할을 기대하며 일정 기간 돌봄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연대나 돌봄이 순수하게 이타적이지 않은 것처럼, 시장이 순수하게 이기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연대의 배후에 거래가, 거래의 배후에 연대가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와 시장을 나누는 경계선도 그다지 분명치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과 사회를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시장에서 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연대'라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회 속에 존재하는 모순과 권력 관계를 감추기도 합니다. 마치 가족을 순수한 애정의 집단으로 포장해 그 안에 존재할지 모르는 거래나 권력 관계를 은폐하는 것처럼요.
사회를 국민국가의 경계와 거의 같은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기능이 있는 한편, 무엇인가를 감추기도 합니다. 사회를 국가와 같은 것으로 본다면 사회에 일정한 안정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교육 제도나 문화적인 통합 정책을 통해 '국민'이라는 동질성을 지닌 집단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회보장제도와 같이 국가권력에 의한 재분배를 통해 사회적 연대를 실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경선 밖의 문제에는 소홀해지는 폐단을 낳습니다. 사회적 연대나 서로 돌봄이 실제로는 국민이라는 극히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사실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경계선 저편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도 그것은 '사회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풍요로운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격차가 과도하게 벌어졌을 때 그런 좁은 시야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이처럼 사회든 시장이든 국가든 단순하게 정의를 내려버리면 명확한 대비 효과는 있지만, 동시에 무엇인가를 감추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회, 국가, 시장을 각기 분리하여 어떤 한 영역을 전면적으로 옹호하거나 악마화하여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국가, 시장, 사회 중에서 어떤 것이 사람들에게 가장 폭력적이고 강제적인가를 판단하기란 어렵습니다. 국가가 가장 폭력적이고 위험하다는 견해는 20세기의 총력전과 억압적인 독재라는 특수한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고통을 겪고, 지역에서는 박해를 받고, 가족에게도 버려져 국가의 보호 속에서 겨우 생활의 안정을 도모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국가권력의 무서움을 이야기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국가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시장에 의해 구원받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의 저자 스기타 아쓰시 교수는 '사회'라는 말을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사용합니다. '절망적으로까지 모호한 대상'이라고요. 자, 그가 사회에 대해 내린 정의를 한번 읽어볼까요? 그리고 여러분이 내릴 정의는 어떤 것일지 한번 생각해보시겠어요? 
 
정치는 인간의 복잡함에 대응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복잡하기 때문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지 타인은 물론 자신도 잘 모릅니다. 그러한 인간의 복잡함, 즉 인간이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지, 정체성에 따라 움직이는지, 타인을 걷어차 버리려고 하는지 도우려고 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절망적으로까지 모호한 대상으로 사회라는 말을 감히 사용하는 것이라면 나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강제를 필요로 하지 않고, 이해나 관심과 무관해질 수 있고, 단지 타인과의 연대만을 생각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거나 되어야만 한다는 맥락에서 혹은 그와 유사한 단조로운 이념으로서 사회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_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 153~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