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라서』 서평 - 아재의 역사書


아재의 역사書

이재현 | 만화평론가
 
  어느덧, ‘아재’는 캐릭터처럼 변해 버렸다. 우리가 뱀파이어라는 단어를 들으면 흰 피부와 긴 송곳니부터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아재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어떤 공통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보통 중년 남성을 일컫는 ‘아저씨’와는 사뭇 다르다. 완연한 중년 남성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중간에 걸쳐 있는 느낌이다. 젊은이들의 문화와 ‘꼰대’의 문화 중간 어디에선가 표류한다. 현존의 문화를 향유해 보려 하지만 적응은 못 하고, 꼰대는 싫다고 말하면서도 시시때때로 꼰대질을 시도한다. 그리고 자신의 젊었던 시절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그 가치를 설파하고 그것들을 표면으로 끌어올리려 애쓴다. 그들은 보수적 주체가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보수성과는 완전히 작별하지 못한다. 그렇다. 어딘가 어설프다.
 

 
 
  하지만 이 아재는 어느 날 갑자기 새롭게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다. 누군가 하나의 캐릭터로 구축한 뒤 세상에 발표한 형상이 아니다. 아재는 언제나 우리의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고, 이제야 불릴 이름을 얻은 것이다. 전작 『메이드 인 경상도』를 통해 경상도라는 지역에서 성장해 온 자신을 고백한 김수박이 『아재라서』를 집필한 것은 나름의 맥락이 있다. ‘아재’는 언어적으로 세 개의 의미소, ‘중년’과 ‘남성’ 그리고 ‘경상도’로 구성된다. 그리고 『메이드 인 경상도』가 이미 경상도라는 아이덴티티에 대해 해명하였기에 『아재라서』의 미션은 중년과 남성으로 좁혀진다.
 
  작가의 고등학교 시절, 1991년부터 1992년 말까지 약 2년간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아재라서』는 이른바 아재라는 캐릭터의 탄생 비화―오리진을 그리고 있다. 물론 그것은 어째서 아재라는 이름을 획득했는가의 전사가 아니다. 이미 아재가 된 자신이 아재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토로하는 또 다른 고백이다. 이 안에서 김수박은 10대 시절 겪었던 폭력의 역사를 전시한다. 오직 남성들로만 구성된 남자 고등학교라는 환경과 그 안에서 ‘서열화’하는 주된 에너지가 무엇인가를 토로하는 것이다. 약 50~60명 정도의 청소년이 모인 이 공간에서 힘의 논리 이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무시되거나 제거된다.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누가 가장 강한가’가 판단되며, 그 후에는 그 ‘최강자’와의 친숙도를 통해 모든 인간이 서열화된다. 하위 서열의 인간은 상위 서열의 인간에게 착취당하며 그 구조에 대한 저항은 거의 다 제압된다. 그리고 저항을 포기한 이들은 함구한다.

  이야기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함구하는 측에 섰던 갑효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그는 바닥의 계급에서 시작하지만 몇 가지 인연을 통해 상위 그룹과 조우하게 된다. 그가 자신을 희롱한 재현을 공격하려 했을 때, 다른 아이들이 서열의 변화를 측정하고 있던 장면은 아이러니의 극단이다.
 
  다만 『아재라서』는 이러한 환경만이 아재를 만들었다고 논하지는 않음으로써 이 이야기를 ‘동물의 왕국’으로 고착화하지 않는다. 작품은 주기적으로 이 뒤에 더 커다란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넌지시 던진다. 그것은 바로 이들과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그 어떠한 작용점이 되지 않는 ‘중년 남성’들이다. 아이들의 아버지들은 ‘싸워서 되찾아 와야 남자답다’라고 말하며 착취의 결과를 긍정한다. 선생님들은 이들이 고백하는 폭력의 성질에서 아무런 악도 발견하지 못하고, 폭력 자체는 악이 될 수 없음을 긍정한다. 기존의 역사와 환경을 만들어 온 이들이 마초적인 세계를 긍정함으로써 그 안의 폭력적 위계는 더욱더 공고해진다. 단순히 교육 주체로서의 무관심과는 결이 다르다. 무책임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결국 이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레토릭을 쓸 수밖에 없다. ‘아재가 꼰대가 되어 다시 아재를 만들었다’고. 그 이전의 역사 또한 그랬을 것이다. 선대의 그들이 긍정하고 증명했으며 구축한 세계가 다음 세대로 이전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아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태어났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보다 더 그럴싸한 대답이 존재할 수 없다. 아재라書는 과연 어떤 서(書)인가에 대한 결론이다. 아재라書는 백서도 예언서도 교과서도 아닌, 역사서였다. 답습되어 온 역사의 일부를 떼어서 현미경으로 조망한 저서였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재라서』는 역사의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담고 있는 역사서다. 계류되어 온 폭력의 역사가, 아재가 꼰대가 되는 역사가 일순 끊기는 순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갑효의 친구인 영도 역시 갑효와 함께 계급의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하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계급의 전복에 도전하며 결국 성공에 이른다. 후반에 밝혀지는 진실에서, 이 성공적 혁명의 배경에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피착취자들의 연대와 악에 함구하지 않으려는 강인한 의지가 있었음이 밝혀진다. 물론 이들의 성공은 하나의 교실을 바꾼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교실 또한 ‘아재의 역사’ 중 일부이며 답습되어 시류에 쓸려 갈 예정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역사의 거류를 거슬러 오른 시도로 치환해도 무방하다.

  40대가 된 갑효와 대면한 영도는 “아재가 추억에 집착하고, 강요하면 꼰대된대이!”라며 소탈하게 던진다. 아재가 꼰대가 되지 않는 것, 그러니까 꼰대들이 만든 세상의 장 안에서 연대하며 의지를 잃지 않는 것이 아재의 역사를 끊고 그 궤도를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아재라書는 다시 교과서가 된다. 그리고 만약 그 역사를 완전히 끊어 낸 세계가 도래한다면 이는 예언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