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뒤안길, 그 길에 우리가 있네

나는 『장다리꽃』의 작가 문선희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우편물 사고로 다시 보내온 책을 손에 들었을 때도 작품 읽기의 장애를 염려해 책표지 안쪽의 작가 약력마저 아예 보지 않았다. 작품 외적인 사항에 의한 그 어떤 선입견도 갖지 않은 채 책을 읽어야 그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장다리꽃』은 아는 길 찾아가듯 별 어려움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작품이다.
일제 말 송라 마을의 영아와 복실이가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영아와 복실이의 주변을 서성이는 민석이, 상식이의 거동이 수상쩍다. 양조장을 경영하는 영아 아버지 이태진은 독립운동에 나선 복실이 아버지를 돕는 등 가진 자로서의 양심을 지키고 살지만 동생 이성진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일본 순사가 된다. 김성식과 함께 독립 운동을 하던 민석의 아버지 떡쇠는 공산주의자가 되어 해방이 된 뒤에도 고향에 돌아오지 않는다.
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이 땅은 좌와 우의 이념 대립에 의해 남과 북으로 갈라진다. 전쟁이 터지면서 송라 마을 사람들의 삶도 송두리째 흔들리는 풍파를 겪는다.
전쟁이 끝난 뒤 영아의 오빠 영민은 다리 한쪽을 잃은 채 폐허가 된 마을에 돌아온다. 피난 중에 헤어진 복실이와 영아는 전혀 다른 인생 길을 걷는다. 영아네 집에서 더부살이로 큰 복실이는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지만, 황부자네 딸네집의 천덕꾸러기 가정부로 전락한 영아는 갖은 고초를 견디다 못해 연탄가스 자살 미수에까지 이른다.
그 동안 교회 전도사가 된 민석은 고향 마을에 모습을 나타낸다. 영아도 열아홉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고향 마을에 돌아온다.
비록 어려운 세월을 보냈지만 그네들은 붓꽃을 심던 어린 시절의 꿈을 잃지 않은 채 고향 송라 마을에 생명력이 강한 장다리꽃을 새로이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소설을 읽었다기보다 우리의 기구하고 험난한 현대사의 어두운 뒤안길을 돌아보고 나온 느낌이다. 기억의 환기 혹은 사라졌거나 훼손된 것을 원형과 닮게 복원해 내는 일에도 크게 기여한다는 소설의 정의에도 가깝다. 한 편의 소설이 백 권의 역사책보다 그 시대를 증언하는 개연적 진실 보여주기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것을 『장다리꽃』을 통해서도 확인화게 된다.
 
 
『장다리꽃』의 영아와 복실이는 우리의 어머니, 누이이며 바로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얼굴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그늘이며 때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희망과 의지의 상징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잊고 살기 때문에 오늘의 삶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지난 일에 대한 각성과 과거사 청산의 당위를 이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장다리꽃』은 성인소설이라기보다 동화에 가까운 서술형태를 취하고 있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유년시절을 다루는 작품의 전반부는 그 서술톤이 어찌나 해맑고 따사로운지 그것이 오히려 긴장을 유도한다. 작품의 중간에 이르러 빠른 속도의 상황 변화를 처리하는 서술방법이나 끝까지 따뜻한 인정의 세계를 보여 주는 작품의 서정성, 우리 모두가 잘못된 역사의 희생자라는, 감춰진 교훈성 등이 동화의 전범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해방 직전부터 50년대까지 격동의 우리나라 역사를 한 개인의 성장 과정을 통해 리얼하게 증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화의 영역을 넘어선다.
 

『장다리꽃』의 서사구조 또한 탄탄하다. 화자를 장마다 각기 달리 하면서 펼쳐 가는 여러 개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는 가운데 15년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나름의 매력으로 작품의 형상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 책 『장다리꽃』이 잘 읽히는 것은 군더더기 없이 상큼하고 단아한 문장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아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되도록 헤픈 감상과 넋두리를 자제한, 작가의 절제된 감정 처리가 이야기의 객관성 및 독자의 몫 챙기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소설 읽기의 즐거움 중 하나는 자신이 읽고 있는 소설의 내용과 그것을 쓴 작가의 실제 상황이 얼마나 닮았는가 하는 것의 확인이다. 나는 『장다리꽃』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의 약력을 살펴보았다. 작가의 직접 체험과 거리가 있다는 것의 확인이다.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꾸며 내어 읽는 이들을 사로 잡은 작가의 능청과 시치미떼기에 경의를 표한다. 이제 비로서 『장다리꽃』의 작가 문선희를 조금 안 느낌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글 · 전상국 (소설가, 강원대 국문학과 교수)
 
 
1318북리뷰 200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