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염원하는 웅혼한 목소리

그동안 침잠하고 있던 엄청난 덩치의 대륙 중국이 요즘 자꾸 요동친다. 바닷길을 막아 자신을 대륙에 묶어 놓고 조여 드는 막강 상대 미국에 맞서려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가까운 나라들과 사사건건 다툼을 벌이고 있다. 국경지대 섬들을 둘러싼 한중일간의 영토분쟁들은 그저 단순한 애국주의 조장 수준의 사소한 다툼이 아니다.
이런 신경전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태롭게 다시 보게 한다. 이념갈등으로 인한 내전으로 갈라져 60년 넘게 분단 상태를 이어가고 있는, 지구에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은 정작 하루하루의 일상에 쫓겨 전쟁을 일시 중단하고 있을 뿐인 이곳의 평화에 대해 참으로 무심하다. 아니 무신경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조그만 땅이 다시 화약고로 돌변하지 않을 거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금세라도 맞붙어 싸울 듯 태세를 갖춰 가는 주변국들의 이해 다툼 속에서 우리는 어떡하든 올바로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 삶의 터전을 지키며 전쟁이 아닌 평화의 길을 기필코 찾아야만 한다.
 
 
 
 
미묘한 갈등이 날로 고조되고 있는 중일 두 나라의 작가들이 차와 담소를 나누며 그 긴장을 누그러뜨려 보자고 조촐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아주 미약한 노력이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길을 밝히는 작은 등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몫이란 그런 것 아닐까.
한중일 평화그림책 공동작업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한중일이 공동으로 기획해 펴내는 그 평화그림책 시리즈 중의 한 권이다. 오래지 않은 지난 역사에서 전쟁으로 다 같이 큰 상처를 입었던 한중일 세 나라가 평화로 새로이 관계 맺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림 작가들이 뜻을 모아 만들어 내고 있는 작업들이다. 
이렇게 자꾸 만나야 한다. 그래서 함께 막아내야 한다. 전쟁을. 그리고 평화를 지켜야 한다.
우리나라의 참여 작가들, 권윤덕, 이억배, 김환영, 정승각, 중일의 참여 작가들, 그리고 이 책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를 쓰고 그린 칠십 대의 청년 다시마 세이조 화가 할아버지, 이 분들의 역할이 작지 않다.
 
 
 
 
그분들 가운데서 가장 나이가 많으며 가장 개구쟁이 같고 조금도 친절하지 않은 다시마 세이조 할아버지. 분노와 증오만이 가득 찬 전쟁터의 난장질에 거친 붓질로 분노하는 화가. 화가의 붓선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굽힘 없는 눈빛,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전쟁은 안 돼! 평화여야 해!”
 
잔소리하지 않는 그림들. 그럼에도 분명하게 말하는 그림들. 평화를 염원하는 목소리는 이래야 하는 것 아닐까.
『뛰어라 메뚜기』에서 보여 준 생명의 도약과 분출, 그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 힘찬 붓선을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거기에 더해 몸 힘으로 그리며 살아온 노작가가 건네는 평화 염원의 웅혼한 목소리를 여기서 듣는다. 내지르지 않고 있으나 그 목소리에 담긴 분노는 깊고 눈동자는 불이 인다. 그만 둬! 전쟁은 오직 죽음일 뿐이야! 결코 안 돼! 
그 목소리는 이렇게 조용히 외치고 있다. 그 어떤 고함보다 비명보다 더 큰 우레의 울림소리로.
 
 

글- 임어진 (동화작가. 월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