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한 권의 일기장이 아름다운 그림책이 되기까지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한 권의 일기장이 아름다운 그림책이 되기까지
 

팔십 년의 세월을 머금은 일기장이 한 권의 그림책이 되었습니다.
지난여름 이 그림책의 폴란드어 판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저희는 줄곧 설레는 마음으로 국내 출간을 준비해 왔어요. 아름다운 그림책을 얼른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편집자든, 역자든, 독자든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마련했습니다. 처음의 일기장이 책이 되기까지,
그림책 한 권의 히스토리를 공개합니다.
 
*인터뷰이_출판사 드비에 시오스트리의 대표 야드비가 옌드리아스, 편집장 미하우 빌리니악, 화가 알라 반크로프트
*인터뷰 번역_이지원 / *인터뷰 정리_사계절출판사 그림책 편집부

 

한 권의 일기장이 책이 되었습니다. 이 책의 ‘출발’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우리 출판사는 여러 세대가 사는 큰 주택의 한 집에 입주해 있어요. 같은 층에 다른 집이 하나 더 있는데, 세 명의 가족이 살아요. 어느 날 그 집에 사는 이웃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며 저희 문을 두드렸어요. 그리고는 별거 없어 보이는 낡은 옛날 공책을 가져왔어요. 자기 삼촌(이 책의 작가 미하우 스키빈스키)이 어릴 때 쓰던 공책인데, 이미 나이가 많이 드신 삼촌이 가족 중 젊은 세대 대표로 조카 손녀(지금은 십대가 된)에게 물려주었다는 거예요.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허락과 함께요. 우리는 이웃 사람이 옆에 서 있는 채로 그 공책을 읽으면서 바로, 아주 귀한 기록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걸로 꼭 책을 만들어야겠다, 진짜 좋은 책을 말이죠.
 


공책은 어땠나요? 실제 공책의 모습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공책은 처음에 보기에는 별거 없어 보였어요. 우리가 어릴 때, 아직 폴란드가 사회주의 시절이었을 때 쓰던 바로 그런 공책이었죠. (한 90년대 초반부터 공책 표지들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거든요. 색색의 표지로 인기를 끌 만한 그림이 실리는 것처럼요. 옛날에는 모든 공책들이 다 똑같았어요. 파란 표지나 노란 표지, 그리고 이름과 학년과 과목명 쓰는 란 정도가 있었어요.) 바로 바스라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공책, 이미 오래되어 접힌 부분이 삭고 있었어요. 공책의 책장이 다 떨어지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서 봐야 했죠. 공책에 쓰인 글씨체 역시 형편없었어요. 여덟 살 아이의 글씨가 보통 그렇듯이요. 하지만 내용은 아주 특별했어요. 오늘날의 시점에서 다시 읽었을 때 소름이 돋으면서 엄청난 감동이 일었지요.
 
공책을 보고 바로 이런 형태의 그림책을 떠올렸나요? 책의 구체적인 상을 잡아가기까지, 연출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우리는 처음부터 이 책을 그림책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이 책에, 햇빛 찬란한, 아무 근심 걱정 없는 여름날의 풍경 일러스트레이션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책을 만들기 시작한, 초반에 떠오른 아이디어였어요. 하지만 책의 완성까지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며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어떻게 이 원고를 책으로 만들지, 그림은 어떻게 그려야 할지, 원래 공책의 모습을 일러스트레이션과 어떻게 합칠 것인지, 전체적으로 그림책의 모습을 갖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는 이 책을 단순한 다큐멘터리나 기록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책이 두 개의 완전히 다른 부분으로, 다큐멘터리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분리되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과적으로 우리는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미하우 스키빈스키 작가님께 이 책은 매우 특별할 것 같습니다. 팔십 년간 간직해 온 일기장이 조카에게 전해졌고, 이웃 출판사의 눈에 들어오게 된 거죠. 영화의 한 장면 같거든요.
 
미하우 스키빈스키 작가님은 은퇴한 신부님으로, 바르샤바 근교에 있는 성직자의 집에 살고 있어요. 우리도 스키빈스키 신부님을 책이 나오고서야 처음 만났어요. 나온 책을 가지고 그를 방문했지요. 감동적인 순간이었어요. 스키빈스키 신부님은 노후의 조용함과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아주 겸손한 분이에요. 이 책과 관련한 대부분의 계약 사항은 그래서 가족과 함께 마무리했어요.
 
이 책은 1939년 7월에서 9월까지 폴란드의 여름을 담고 있습니다. 폴란드 사람들에게 1939년은 지금, 어떤 의미인가요?
 
폴란드 역사에서 1939년 9월 1일은 굉장히 중요한 날이에요. 모든 폴란드 사람이, 세대에 상관없이 이 날은 기억하고 있죠. 학교에서도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로 배워요, 폴란드의 역사뿐 아니라 전 세계의 역사에서도요. 이날 폴란드를 침략하면서 세계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으니까요. 역사의 흐름은 이날을, 또한 이후에 있었던 수많은 비극적인 사건과 엄청난 드라마와 함께 기억하게 해요. 폴란드 인들에게 1939년은 독일군이 빠르게 진격해오며 폴란드 군대들을 대패시켰던 것뿐 아니라, 당시 폴란드와 연합을 이루어 전쟁이 일어나면 도와주기로 협정을 맺었던 영국이나 프랑스가 폴란드를 홀로 내버려두었던 충격으로 기억되는 해예요. 더욱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독일과의 밀약을 맺었던 소비에트 군대가 폴란드를 동쪽으로부터 치고 들어와 폴란드를 독일과 함께 점령했던 것이죠.
이후에 더욱더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일어났어요. 독일군의 점령, 폴란드 땅에서 자행되었던 나치의 홀로코스트, 폴란드 지하 정부의 저항, 바르샤바 봉기, 그리고 그 봉기의 결과로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는 폭격을 받아 폐허가 되었어요. 그 전쟁 이후 폴란드를 손에 넣은 공산주의 세력에 50년 지배를 받으며, 폴란드 사람들은 자유가 없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살았던 거예요. 이 모든 것이 1939년에 일어났던 일들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어요. 폴란드 역사에서는 정말 중요한 해이지요.
폴란드 인들은 역사에 굉장히 집착하는 민족이고, 역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요. 가끔은 그 정도가 지나치기도 해요.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때 일어났던 사건들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이제 알라 반크로프트 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저희는 요즘도 그림을 보고 또 보고 해요. 한국의 독자들도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서 그림에 대한 감동을 전해 오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의 독자 분들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인터뷰 요청만으로도 큰 상을 받은 기분이에요.
 


한 줄의 문장만으로 어떤 장면을 그릴지 떠올리는 것이 힘든 일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공책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충격을 받았어요. 어린이의 단순한 세계, 방학의 기록이 곧 발발할 전쟁을 예고하는 날짜들과 부딪치고 있었으니까요... 공책을 읽었을 때 뱃속이 졸아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일기의 문장들은 또한 어린이의 아름다운 세계를 그냥 묘사하고 있기도 했어요. 제 눈앞에는 어린 시절 제가 보냈던 방학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고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더운 여름날의 아름다움,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이 일기를 읽는 우리는 알고 있지만 주인공 어린이는 전혀 모르고 있는 전쟁의 환영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아무런 잘못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의 모습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어린 미하우는 그런 비극이 생길지 몰랐으니까요.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풍경에서 어떤 시선과 감정들이 느껴져요.
 
그냥 있는 걸 그대로 그리는 건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리는 데 사실 굉장히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게, 매우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었지만, 무얼 그릴지 생각하고 그리는 작업은 재미있었어요. 기억하고 있는 아름다움, 추억, 여름, 방학을 되새기는 것이 좋았어요. 담담하고 평범한 문장을 위한 무대를 만드는 기분으로, 어떤 배경에서 그런 문장이 나왔을지 상상해야 했죠.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그리지 말아야 하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무엇을 쓰여진 그대로 보여주고, 무엇을 말하지 않은 채 남겨놔야 하는지도요. 모두들 의견이 일치했던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이 책은 약간의 비밀에 싸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참고로 한 실제 장소나 배경이 있나요?
 
어떤 부분은 실제 장소이고, 어떤 부분은 약간만 참고했어요. 저는 이 어린이의 세상에 어떤 매혹적인 것을 불어넣길 원했고, 제 깊은 곳에서 여름의 기억을 끌어내고 싶었어요. 이런 종류의 문장으로 그날 하루를 결론지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의 기억을요. 제가 기억해내고 그리고 싶었던 풍경은 바르샤바 외곽에 사는 할머니의 주말농장에서 지냈을 때예요. 하지만 바르샤바의 공원과 근교의 풍경도 많이 참고했어요.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저에게는 어떤 구체적인 장소지만,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이 그것을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 기억이 너무 많이 섞여 있거든요.
 
텍스트는 단 한 줄,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빵집에 갔다”고 합니다. 그림의 시선은 바깥에서 빵집의 창문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선이 특별하다고 생각했어요. 끝까지 일관성 있게 이어지고 있고요.
 
우리 모두는 기억 속에 아름다운 순간들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기쁨은 모든 감각을 통해 기록되지만, 기쁨의 순간에는 그저 우리를 실제로 둘러싸고 있는 것들만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면서 그 풍경을 기억하고, 그때 우리를 채웠던 모든 감정을 그 풍경과 함께 묶어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단맛을 느끼지만, 그때 또한 햇볕이 쏟아지는 거리를 보고 있었고, 벽 위에 드리워진 나무들의 그림자와 아이스크림 집의 색색의 유리창을 보고 있었고... 아이스크림의 단맛과 함께, 가까운 사람과 함께 했던 기쁨을 그 풍경에 부여해요.
간단해 보이는 이 책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저는 그런 것을, 우리의 기억과 무엇이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떤 것은 일어나는 사건들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 사건의 무대를 채우고 있는 것들이죠. 그냥 그 사건으로 인도만 하는 그림들. 왜냐하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그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만의 것이니까요. 그에게는 매우 구체적이지만, 다른 이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할 수밖에 없어요. 끝까지 비밀로 남아있는 것이죠. 이 그림들은 그런 비밀의 흔적들이에요. 저는 그것을 잡으려고 애썼어요. 회상 속의 풍경들, 제가 안개 속에서 본 것처럼 기억하는, 사건의 그러한 배경들. 그리고 한여름의 분위기. 명료한 태양빛과 비밀스러운 그림자. 모든 아이들이 그런 풍경에 자신의 즐거운 방학의 기억을 입힐 수 있을 거예요. 누구에게나 그런 그림은 무언가를 의미할 수 있을 거예요. 무언가 개인적인 것을요. 그런 것들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어요.
 
빛과 그림자가 명료하게 드러나는 재료를 택하셨어요.
 
저는 화가라 빛과 색을 그렇게 이용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또한 이 책의 배경은 한여름인데, 모든 것이 따뜻하고도 강한 빛에 휩싸여 있는 시기죠. 대낮이 강렬한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보여지고, 태양빛에는 눈이 따갑고, 그늘이 숨을 돌릴 여유를 주는 여름. 저는 그런 여름날을 그리는 것이 이 책의 사건들을 묘사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어요. 아름다운 방학과, 이 책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적처럼 나타나는, 하지만 멀리서 그림자를 드리우는, 어둠으로 나타나거나 폭풍우처럼 오는 전쟁의 위협을요. 곧 그 위협이 모든 것을 사로잡고, 모든 것을 휩싸겠죠. 밤이나 폭풍우는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 앞에서는 도망칠 수밖에,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어린이가 전쟁에서 할 수 있는 것도 그게 다이고요.
 
끝으로, 이번 볼로냐 라가치 오페라 프리마 멘션 수상 축하드려요. 작가의 첫 작품에 주는 상이잖아요. 특별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신가요?
 
이런 큰 상을 받았으니 이제 일러스트레이션을 계속할 생각이에요. 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을 해야 하는 힘든 때라, 최근 반년은 거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어요. 졸업을 하면,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계속하려고 해요. 앞으로도 크기가 큰 그림도 계속하고 싶고, 다음에 무슨 책의 일러스트레이션을 하고 싶은지도 찾아보는 중이에요. 다음에는 다른 기법으로 책을 만들고 싶은데, 아직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어요.

 

심미숙 2020-06-16 16:36:09 0

정말 아름답고,,, 그림책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독자서평 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