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일제강점기에 거기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여주 안골에서 가난하게 살던 일곱 살 수남이는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라는 천진난만한 제안을 한다. 그러나 수남이가 선택한 거기는 엄청난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다. 수남이가 거기에서 겪은 일들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은 비극적 사건들이다. 작가는 수남이를 통해서 일제강점기에 거기에서 일어난 일들을 고발한다. 이 작품은 친일 앞잡이 윤형만 자작이 일제강점기에 어떤 만행을 부리며 살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집안은 어떻게 몰락해 갔으며, 해방 후 그들의 후손들은 또 어떻게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안골에서 벗어나 거기에서 살게 된 수남이의 삶은 비록 개인의 삶일 뿐이지만, 그녀의 삶은 윤형만 자작 집안을 둘러싼 일들과 거기에서 일어난 일들과 함께 우리 민족이 겪은 역사 속에 놓여 있다. 친일 행위로 부자가 된 윤형만 자작의 집 몸종으로 들어가는 수남이의 운명이나, 일제와 친일 앞잡이들의 술책에 의해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하는 우리 민족의 운명이나, 개인과 국가라는 점만 다를 뿐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수남이의 비극적 운명과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을 동일한 선상에 놓고 바라본다. 일제강점기에 친일 지주의 아이들과 이름을 바꾸어서 황군여자위문대에 대신 끌려가야 했던 수남이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수남이의 운명은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백성이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의 운명이기도 하다. 수남이는 미국에서 자작의 딸로 대학 졸업장을 받았으면서도 자신의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해방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친일 자작의 딸에게 자신의 졸업장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친일 반역자들이 친일 행위를 해서 돈을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재산을 빼앗지 못하고, 다시 돌려줄 수밖에 없었던 모순된 우리의 근대사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수남이가 그것을 마치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듯이, 대부분의 사람들도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을 역사적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일제 잔재 청산의 문제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수남이가 선택한 거기의 삶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작가는 거기를 통해서 여기의 의미를 말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남이는 거기에서 몸종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끝없이 여기를 찾아가고 있다. 수남이가 자작의 딸을 대신해서 황군여자위문대에 끌려가서 목격하는 장면은 인간 사회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참혹한 비극의 현장인 거기를 탈출해서 수남이가 찾아간 곳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여기도 그러한 상황은 이어지고 있지만, 그곳은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을 찾아가는 험난한 길을 통해서 수남이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수남이는 하얼빈으로만 여겼던 여기가 어쩌면 단순히 지역을 뜻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2161)고 생각한다. 그곳은 새로운 희망이 싹트는 곳이다.

여기는 참혹한 상황을 물리치기 위해서 일제와 싸우고 있는 광복군이 있는 곳이고, 수남이가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곳이다. ‘여기는 사랑의 꽃이 피어나는 곳이고, 마음의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여기는 우리 민족의 시원이 자리 잡고 있는 바이칼 호수이기도 하며, 두 사람의 사랑이 영그는 곳이기도 하다. 굳이 광복이니, 해방이니 하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여기는 인류가 지향하는 마지막 희망의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여기는 작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자유와 평화의 공간이다. 작가는 수남이의 말을 빌려서 여기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제가 경험자이기에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 잘못 없는 일본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는 건 옳지 않아요. 저는 미국이 그 강한 힘을 인종과…… 종교, 신분과 남녀 차별을 없애고…… 온 인류의 평화와 자유와 평등을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2권 170쪽)
수남이가 원하는 여기는 인종과 종교, 신분과 남녀의 차별이 없는 곳이다. 그녀는 황군여자위문대에서 겪었던 일본군의 엄청난 만행을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미국에 있는 일본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는 것은 옳지 않으며, 강한 국가의 힘은 온 인류의 평화를 위해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대승(大乘)의 입장에서 인류의 평화와 자유와 평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주장에서 우리는 어둠의 거기에서 희망의 여기를 찾아가는 수남이의 길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평화를 찾아가는 길임을 확인할 수 있다.
| 황선열(문학평론가)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2
저자 이금이
출판 사계절
발매 2016.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