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을 돌려다오!

우리 또래가 학교 다닐 때 ‘문교부’ 발행 고등학교 국어 국정 교과서에는 민태원의 「청춘 예찬」이 실려 있었다. 그 대목을 배울 땐 누구나 마음껏 청춘의 꿈을 펼치겠다고 벼른다. 그러나 이내 곧 현실과 교과서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고 청춘이라는 말을 들먹이는 것조차 포기해 버린다. 교과서 안에서는 ‘청춘이라는 말은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고, 청춘의 피는 끓는다’며 잔뜩 청춘을 예찬하지만 학교나 사회에서는 어떻게 하든 그토록 ‘설레고, 뜨거운’ 청춘을 누리지 못하도록 애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태풍』은 바로 그러한 청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야기 머리에 아예 「청춘 예찬」을 들먹이고 들어간다. 이 작품을 통해 ‘불온시되었던’ 모든 청춘을 마음먹고 복원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나는 가끔씩 악몽을 꾼다. 두 번 다시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일들이 1년이면 두세 차례씩 꿈속에 나타나는 것이다. 내가 꾸고 싶지 않은 꿈은 셋이다. 하나는 고등학교 때의 것으로 몽둥이를 든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칠판 앞에 서서 미분적분 따위의 문제를 풀며 긴장해야 했던 수학 시간과 훈련 거부 하다가 플라스틱총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던 교련 시간. 또 하나는 몇 월 며칠까지 군대 가야 한다는 영장이 다시 나올 때의 절망스런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주 5·18때의 아슬아슬하고 끔찍한 모습. 이런 꿈을 꾸는 밤엔 등골에 땀이 배며 잠을 깬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미 지나간 일로 꿈이어서 참 다행이라는. 이 꿈 가운데 나중 둘은 그렇다 치고 30년이나 지난 고등학교 시절이 들어 있다는 건 더욱 싫다. 한창 청춘의 발랄함을 누려야 할 시기에 그러지 못해서 그런지 좀 체 그 시절 일이 털어 내지지 않는다.
 
많은 학생이 수학을 싫어했지만 사실 나는 수학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단지 공식을 무조건 외워서 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걸 싫어했다. 나는 수학조차도 언어로 이해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미분이라면 왜 미분이라 하는지, 한자로는 어떻게 쓰는지 등을 따져서 이해가 되어야 문제 풀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절대로 언어적 의미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수학은 언어 영역의 학문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공식을 바로 적용해서 칠판 앞에 나가 쓱쓱 문제를 풀어야 하는 건 체질상 맞지 않을 수밖에. 더구나 저승사자같이 생긴 선생님이 몽둥이(절대로 회초리가 아니었다. 몽둥이였다!)를 들고 노려보고 있는데 어떻게 차분히 문제를 풀 수 있었겠는가? 그처럼 심약한 성격인데도 나는 교련 행사를 치르다 교련 선생님께 반기를 들고 친구 몇이서 함께 달아나 버린 적이 있다. 그러자 믿었던 국사 선생님까지 나서서 우리를 나라의 ‘역적’ 같은 놈들로 몰아붙였고, 교련실로 끌려가 교련 선생님의 손에 들린 총의 개머리판에 저마다 엉덩이를 맡겨야 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더 있었는지는 굳이 더 얘기할 것이 없으리라.
 
『내 마음의 태풍』은 결코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의 기록이다. 지나간 날은 늘 아름답게 미화되지만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미화되지 않을 유신 시절의 고교생 이야기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듬뿍 들어 있어 사실감이 많이 느껴진다. 작가는 어쩌자고 30여 년 전의 ‘그때 그 시절’을 아직도 못 잊고 있을까? 그건 그때의 일이 바로 작가 자신의 오늘과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한경민과 김민기와 김정희와 윤재국은 동인 문집 하나 만들려고 온갖 간섭과 폭력을 무릅쓰고 고투를 벌인다. 그들의 문집 <태풍>이 나오자마자 넷 가운데에 하나가 죽기까지 한다. 굳이 죽는 상황까지 몰고 가야 했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에 붙들리면 앞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태풍>을 안고 태풍을 재워 버리고 싶었을 소년 시인 한경민. 그는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을 붙들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 조숙했다. 숨막히는 학교가 그를 조숙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는 청춘을 이미 훌쩍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청춘을 청춘으로 못 느끼고 지나가야 한다는 건 어찌 보면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그때를 산 한경민만 그랬을까? 내 보기엔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다. 지금 당장 거리에 나가 아무 소년이나 붙들고 물어 보라. 그러면 입을 모아 대답할 것이다. ‘내 청춘을 돌려다오!’ 라고.
 
『내 마음의 태풍』은 가슴속에 태풍을 품고 있는 소년들이 읽을 작품이다. 정치 상황은 달라졌지만 학교 생활은 30년 너머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소년들이여, 이 작품을 읽으며 가끔씩 회오리치는 태풍 앞에 가슴속 태풍을 내뿜으며 당당히 맞서 보시라. 그러나 나처럼 악몽은 꾸지 마시라. 악몽조차 꿀 필요 없도록 더욱 더 당당해지시라!
 
 
 

글 · 박상률 (시인, 소설가)
 
 
 
1318북리뷰 2004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