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내 이름은 엘라' 시리즈 - 겨울 방학 땐 이런 책이지

겨울방학 땐 이런 책이지.

 
김선정(초등학교 교사, 동화 작가)

 
  방학 하면 겨울방학이 먼저 생각난다. 찬바람이 씽씽 불거나 눈이 펑펑 내리거나 베란다 유리창 안쪽에 낀 성에가 얼어 버리는 통에 문을 못 열 정도가 되면 겨울방학을 한 보람은 두 배 세 배가 된다. 보일러는 꺼 두고 전기장판은 틀어 놓고 수면 양말을 신고 이불 위에 동화책을 올려 두면 비로소 방학이 완성되는 기분이다. 어깨랑 코는 살짝 시린 게 좋고 손에 잡히는 곳에 과자나 귤, 코코아 같은 것이 놓여 있으면 더욱 좋다.

 

 
  ‘내 이름은 엘라’ 시리즈는 이럴 때 읽기 딱 좋은 동화다. 그래서 다른 날도 아닌 방학 첫날, 일부러 커튼을 닫고 벽난로 소리 어플을 틀어 놓고 스탠드를 켜 놓은 채로 읽었다. 첫 권(『엘라의 엉뚱 발칙 유쾌한 학교』)을 읽고 한숨이 나왔다. 비록 방학 첫날이지만 나는 학생이 아니다. 나는 엘라와 페카, 미카 같은 어린이가 아니라 이 아이들의 말썽 덕에 끝없이 고통을 당하는 불쌍한 담임 선생님이다. 자꾸만 선생님에게 마음이 가서 아이들을 보며 깔깔깔 웃게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아니 이 사람이…….’ 싶다. 이 선생님, 알고 보니 아이들과 똑같은 사람이잖아? 교장 선생님이 안 나오는 동안 임시 교장 노릇을 하며 온갖 말썽을 부리고 곤경에 처하면 사회적 위치고 어른의 체면이고 다 내려놓고 막무가내로 떼를 쓴다. 은근히 아이들의 말썽에 묻어가며 슬쩍 재미를 보기도 하고 한숨 쉬고 소리 지르면서도 아이들 데리고 하는 일에는 욕심이 이만저만 아니다. 동전 몇 개 때문에 아이들의 말썽을 슬그머니 눈감아 주기도 하고 무사히 아이들을 비행기에 탑승시키려고 날아가려는 비행기에 달라붙는 괴력까지 발휘하는, 아이들보다 한 술 더 뜨는 선생님이다.

  마침 딱 이런 동화가 쓰고 싶어서 몸과 마음이 근질근질하던 차다. 현실에 짓눌려서 어른이 다 되어 버린, 생기라곤 찾아보기 힘든, 몸만 어린이인 그런 아이들 이야기 말고 아이들이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그런 동화. 경험한 세상이 적기에 상상력은 끝 간 데를 모르고 까치발을 하고 초조하게 미래를 바라보지 않기에 한없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그런 아이들. 영하 20도의 추운 날씨에도 나무에 올라가고 뛰어다니고 산타 마을에서 썰매를 타고 친구와 손을 잡고 지치도록 놀고 다투는 그런 아이들 이야기.

  야무진 엘라와 조숙한 페카, 울보 미카와 부루퉁한 람보……. 이 책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연극을 무사히 끝내기, 학교 올림픽 우승하기, 현장 학습 가기, 협박범으로부터 선생님 구하기, 새로 전학 온 외계인 물리치기, 학교 야영 쟁취하기, 산타 요정 마을 지키기 등 온갖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한시도 쉴 틈이 없다. 그리고 아이들 옆에는 잠시라도 아이들을 가만있게 하려고 ‘뿌리내린 나무가 되었다고 생각하라’는 주문을 걸고, 학교 야영을 안 하고 싶어서 기괴한 노래를 계속 불러 대고 온갖 소동 속에서 투덜대지만 결국에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지키느라 분주한 선생님과 다정한 어른들이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배경은 핀란드다. 코가 떨어지게 추운 날씨, 산타와 요정이 있는 곳, 키를 넘겨서 눈이 쌓여 있어서 아무리 자빠져도 다치지 않는 겨울 나라. 나는 비록 추운 바깥을 넘어다보며 베란다 안쪽에 앉아 살금살금 이 책을 읽고 있지만 아이들은 지치도록 밖에서 놀다가 들어와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따뜻하게 사우나를 하고 읽으면 좋겠다. 자기 전에 주황색 스탠드 불빛 아래서 다정한 어른이 읽어 줘도 좋겠다. 하루에 다 읽지 말고 자기 전에 조금씩 읽고 자면 자는 동안 아주 즐거운 꿈을 꿀 수도 있겠다.

  나도 이렇게 신나는 책을 쓰고 싶다. 어쨌든 겨울방학엔…… 엘라와 함께 즐거운 모험을.